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모비 딕>을 읽는 순간, 나는 문득 내 뇌리에 새겨진 어느 밴드이름이 생각났다. 그룹이름은 Led Zeppelin, 즉 납으로 만든 비행선인 레드 제플린이다. 브리티쉬 하드락으로 불세출의 뮤지션으로 남은 살아있는 전설인 그 밴드를 말이다. 소설 <모비 딕>으로 말해보자면, 그 늙은이들의 흰머리는 마치 흰 머리를 가진 자 큰 고래가 마치 성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그 성난 이빨의 엄니를 모든 색을 빨아들일 수 있는 괴물이지. 제 아무리 노아의 방주가 와도 그들을 데리고 타나토스의 궁전에 있는 하데스에게 찾아가, 하데스가 미소 짓는 저 표정마저 전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가브리엘의 전사지!

 

이런 말투를 사용했다면 어떠한가? 레드 제플린은 1970년대 브리티쉬 하드락으로 세계를 강타하고,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를 강타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나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들이 내뿜는 사운드는 마치 향유고래가 숨구멍에서 뿜어 나오는 거친 분수와 같으리라! 그들의 머리를 새하얗게 물들어간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는 새하얀 태양으로 변한다. 태양이 되어버린 그들의 광채, 마치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기에 귀로서 그들을 느낀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투박하게 들리는 목소리, 터질 것 같은 드럼 소리, 뱃사람들을 파도로 데리고 갈 것 같은 사이렌의 소리를 담은 베이스, 이 모든 것이 레드 제플린일 것이다.

 

소설 <모비 딕>을 읽으면서 레드 제플린을 들어야 제 맛인 이유는 레드 제플린 2집에는 오로지 드러머 존 본햄을 위한 곡 <Moby dick>이 있다. 하지만 앨범이 아니라 이것은 인터넷으로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라이브 연주를 봐야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죽어 세상에 육체조차 존재할 수 없을 드러머의 연주가 오직 영상 안에 살아있다. 인간은 육체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게 된다. 왜냐고? 저 미친 흰 고래인 모비 딕이 바다에서 난폭한 군주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모비 딕이 존재하는 한, 포경선을 탄 모험가는 죽음이 무섭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채 죽어간다.

 

그래서 죽음으로 이끌어 내는 모비 딕을 찾기 위해 바다로 들어가는 피쿼드호처럼 이미 존재하지 않은 드러머의 소리를 듣기 위해 나도 모비 딕을 듣는다. 모비 딕을 듣는 순간 포경선이 노를 펼치면 거친 파도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바다에서 나의 적, 너의 적, 우리의 적 그 녀석을 만났어. 바로 그녀석인 모비 딕이야. 이 게으름뱅이들아! 어서 닻을 내리고 보트를 내리고, 그 망할 엉덩이를 나무 바닥에 붙여! 너희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보토 위에 있는 작살과 보트 노가 되어 그냥 저기로 가는 거야.

 

모비 딕이 큰 입을 벌리고, 우리 앞에 동굴처럼 만들고 있어. 녀석도 우리를 반기는 거야. 오늘 바다에 있는 붉은 색은 우리의 피지. 아니 성자, 성령, 성부께서도 내린다는 그 포도주가 지금 바다 위에 흘러가는 것이지. 아니면 어떠하니? 모비 딕의 입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신이 살고 있는 세계지. 제우스조차도 그 녀석에게 상대되지 않아! 왜냐고? 모비 딕이야말로 바다의 제왕이고, 포세이돈의 맞수이지! 그래 우리는 지금 바다의 왕을 죽이고, 바다의 신 제우스 형제의 맞수를 잡으러 가는 것이지.

 

하지만 레드 제플린의 모비 딕을 들어본다면 여전히 모비 딕의 싸움은 모비 딕의 일방적인 공격이다. 드러머의 거친 드럼 솔로는 마치 고래가 자신의 주변에 오는 배를 무참하게 박살내고, 숨구멍에서 분수가 튀어나와 마치 그 자리에 폭풍이 오는 것처럼 보여준다. 꼬리는 파초선처럼 강력한 바람과 바스티유를 노리는 대포처럼 모든 것을 가르고 가른다. 인간이든 나무든 아니라면 신이든 말이다. 육지와 바다를 비교하면 지구의 2/3이 바다로 이루어져있고, 세계의 물 대부분 거의라고 말할 수 있는 물이 바다에 있다. 심지어 우리 인간이 마실 수 있는 얼음덩어리가 극지방에 분포하여 바다 위의 빙산처럼 존재하지 않은가?

 

빙산은 하얀 향유고래 모비 딕의 성처럼 인간의 배를 박살낸다. 모비 딕은 바다를 누비며 배들을 박살낸다. 모비 딕은 과연 존 본햄의 드럼처럼 마지막에는 비명 크게 지르고 그냥 사라진다. <모비 딕>이 왜 3대 비극이 되어야 했는가? 그것은 모든 것을 삼키는 고래 모비 딕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잡을 수 없는 고래, 작살을 아무리 던져도 마치 자신에게 영광의 훈장인양 달고 다니는 고래, 그러면서 최후에는 보트와 포경선까지 박살내어 버리는 고래!

 

<모비 딕>을 읽으면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가 싶다. 우리가 흔히 뱃사람이라고 불리는 거친 남자들은 왠지 다른 세계에 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인간 이하인 자들, 그 많은 인간이하인 자들이 모비 딕을 잡기 위해 피쿼드호에 탑승한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 주인공 이슈메일, 그는 평범한 뱃사람이나 고래의 아름다움에 반했는지 아니면 고래라는 죽음이 이끌려서 그런지 몰라도 그는 식인종 왕자 퀴퀘그와 형제의 맹세를 나눈다.

 

피도 같지 않고, 피부와 머리 색, 심지어 옷차림까지 모두 다른 퀴퀘그, 용감한 전사의 아들로 태어난 퀴퀘그, 그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용사로서 제일 먼저 바다에서 위용을 떨친다. 마치 페르세우스가 바다에서 안드로메다를 구하기 위해 바다괴물을 죽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세상에서 버려진 인간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처럼 보이는 것은 괴물처럼 보이는 식인왕자 퀴퀘그일 것이다. 자신이 포획한 인간의 머리를 잘라내어 그것을 암시장에 파는 무법의 살인자를 말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위대한 용사다. 실사 그뿐이랴? 살인자에 의해 가족을 잃은 목수, 흑인 겁쟁이 소년 핍, 다리를 하나 잃어 16달러의 금화를 포상으로 준다는 에이해브 선장까지 말이다.

 

이들은 모두 세상에서 버린 받은 호모 사케르 같은 존재다. 오로지 자신들을 받아줄 곳은 저 넓은 바다에서 가장 강한 고래일 뿐이다. 그 강한 고래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 왜 고래로 그들로 적수를 왜 거대한 향유고래로 해야 하는가? 그들은 모두가 꺼리기에, 모두가 꺼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추방되어 바다에서 고래를 잡는 사나이들, 그들은 모비 딕의 유령에 씌워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작가인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는 순간, 이 책은 마치 니체의 서적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 안에는 모든 진리를 깨기 위한 진리로 가득한가? 고래라는 동물은 상당히 위험하고 포악하며 무서운 동물이다. 지금의 포경산업에서 과학기술과 첨단무기로 무장한 배가 고래를 잡아 유유히 항구로 돌아오겠지만, 적어도 <모비 딕>의 포경선은 나무로 만든 배고, 그 배에는 고래와 키스를 나누는 것으로 공중제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바다로 간다.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그들이 있어야 할 공간은 무엇인가? 포경선은 한 번 나가면 1년이 아니라 3년이 기본이고, 그들이 먹는 음식은 육군 보병사단의 1달 식량만큼 많을 터이다. 그들의 배에는 풍족한 술과 고기로 가득하다. 그런 배에만 풍족함이 있기에 그들이 원래 있던 곳에는 풍족함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비참한 노래만이 흐른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처럼 비참함을 가진 도시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구로 모인다. 더 비참한 세계로 흘러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모비 딕>에서 모든 이야기는 허먼 멜빌이 만드나, 그 안의 선원들과 고래에 대한 노래는 마치 철학자의 노래와 같다.

 

인간의 비참한 세계, 자기만의 유령을 찾아 떠나는 미치광이 에이해브 선장, 어떻게 보면 비참한 인간들에겐 자신의 목표란 없다. 목표 없는 인간은 육체는 존재해도 정신은 유령처럼 돌아다닌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망령이 될 자를 골라 바다로 이끌려간다. 삶과 죽음은 하나의 경계에 있는 서로를 보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모비 딕>에서 보이는 인간의 존재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끈질기게 투쟁하는 존재다. 처음부터 <모비 딕>은 인간을 자연 앞에서 나약하지만, 그 나약함을 버리고 싸우는 존재로 그린다. 그래도 최후의 승자는 자연이었다.

 

죽음의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진리로 갈 수 있다는 것처럼 고래이야기와 고래 뼈로 만든 모든 사물들은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문명의 탄생이고, 경건함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향유고래에서 나오는 기름과 향수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며, 고래의 수염과 꼬리는 여자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이것이 모두 바다 최고의 폭군 고래에 의해서다. 그런 공간에서 죽음과 삶이 희비하기에 선원들이 내뱉는 말투는 욕도 아니고 때로는 농담도 아닌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때로는 절대적 관념을 추구하는 플라톤주의자들을 비웃듯 그들은 고래로서 그들을 비웃는다.

 

넓은 바다에 엄청난 덩치의 고래가 거기에서 나오는 것들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이다. 실제 신화에서 본 무서운 바다동물들은 고래인 것이고, 고래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 고래를 말하는 것만큼 웃기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모비 딕>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래에서 불처럼 뻗어 나오는 분수를 페티시즘에 걸린 환자처럼 집착한다. 에이해브 선장이 모비 딕에게 사로잡혔는지 아니면 모비 딕이 에이해브 선정에게 사로잡혔는지 서로 모른 채 계속 누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이 항해는 계속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은 분명히 에로스라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처럼 유령 같은 얼굴로 유령처럼 선실에 박혀 있다가, 악령에 붙잡힌 미치광이처럼 선실 밖으로 튀어나와 밤낮으로 비가와도 모비 딕을 찾아 나선다. 얼굴에는 분노로 일그러진 지옥의 사냥개처럼 죽음조차 가소롭게 여긴다. 죽음의 위기로부터 돌아온 그가 오히려 죽음의 세계에 있는 자연이란 거대한 세계에 몸을 던지는 이유는 인간은 에로스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분노와 저주, 광란과 착란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한쪽 다리가 고래에게 먹혀, 이제는 외발이 선장처럼 돌아다니나, 그의 영혼에서는 한 쪽 발의 아픔은 여전히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며, 형이상학적 세계에서는 고래에 대한 악몽과 보복심리만이 춤을 춘다. 인간이란 삶의 원동력을 어디서 얻는 것일까? 희망조차 보이지 않은 이들에게 오히려 분노의 작살이야 말로 삶의 원동력인가? 작가 허먼 멜빌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처음 항구로 가서 심각한 불평등을 겪는다. 허무한 자신의 삶에서 에이브해 선장처럼 허먼 멜빌은 자신의 <모비 딕>을 어디에 정착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따라서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는 것은 레드 제플린의 <모비 딕>을 듣고, 또 다시 모비 딕에 끌려가는 에이해브 선장을 만들고 같이 끌려가는 허먼 멜빌과 같은 것이다. 어디에 안주할 수 없는 운명의 방랑자, 그래서 어디에 안주할 수 없기에 절대적인 집착을 보여주고 있다. <모비 딕>을 읽은 고래에 대한 이야기, 에이브해 선장은 모비 딕에 대한 이야기만 나온다. 주인공인 이슈메일은 그런 자신의 눈으로 미쳐버린 선장이 오히려 인생종착지가 있는 피쿼드호에서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다. 인간이 아주 철저하게 냉정하고 판단적인 이유는 진심으로 그가 어디에 미쳐있거나 빠져있어야 가능하다. 그의 이성은 오로지 감성적 폭발로 인해 채워진 그릇일 테니 말이다.

 

모든 것을 잃어도 없어져도 결국은 다시 찾아가고 또 찾아간다. 이슈메일이 왜 추후에 모든 기록을 기록하는 지질학자가 되어야 할까? 레이첼호에서 잃어버린 고아 대신 이슈메일이 고아의 대체물이 되어버렸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분노하여 몸을 날리는 피쿼드호의 선원들, 모비 딕이란 결국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존재다. 보이는 것은 분명하나 왠지 손에 닿을 수 없을 만큼 과격하고 위험한 존재다. 그러나 그것은 이슈메일과 그 동료들을 좀을 먹고 있는 존재이나, 이슈메일 일행들의 존재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존재 그 자체이다. 하지만 안타까울 이유는 없다. 이슈메일이 다른 동료와 헤어져도 새로운 이슈메일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밤 2014-08-0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만화애니비평님, 이렇게 귀 쟁쟁한 리뷰라니요. 먼 바다와 허먼 멜빌의 난동하는 문체를 리뷰로 다시 봅니다. 생각을 힘차게 끌어 긴 마침표를 찍는 것 또한 모비 딕의 이해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8-06 08:32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8-0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난 이거 아무래도 청소년용으로 읽은 거 같습니다. 스무살 무렵에 읽었는데 청소년용이라고 해도 엄청나게 두껍더라고요... 이 영화는 제 인생의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만화애니비평 2014-08-06 10:47   좋아요 0 | URL
어라 모비딕건으로 오늘 사람들이 덧글을 남기는데, 뭔가 떴나요? 곰발님 읽어보세요. 정신이 산란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