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통이다. 읽을수록 쇼펜하우어, 니체와 공명하는 헤세의 성찰은 삶과 자신을 자연과 예술로 승화시켜 나가려는 몸부림이었다. 헤세는 고통을 고통으로 쓰는 대신 아름다운 것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스스로 감내한다.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를 읽는 것은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 녹아든 정신을 엿보는 순간이다.
삶이 힘겨울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정신적 이상적인 것들에 대해 개인들이 저마다 맺고 있는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 헤르만 헤세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헤르만 헤세의 글을 가리켜 ‘폭풍 이는 밤을 비추는 등대의 불빛’이라 칭송하였다. 온갖 고난과 우울 속에서도 희망과 깨달음이 번뜩이는 헤세의 글들은 우리에게 인생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 주었다. 삶 그 자체를 긍정하는 실존의 경이로움은 헤르만 헤세를 만나며 느껴야 할 목적지이다.
헤르만 헤세는 바뀌어가는 시대 속에서 인간성을 짓밟아 버리는 공업과 과학이 바꾸어 놓은 문명의 변화를 염려한다. 게으르고 시간을 허비하는 인간을 실격 처리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을 부셔낸다. 몇 푼 안되는 임금으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질병, 황폐함을 연민한다.
훼손된 인간성을 치유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본다. 상업적인 예술이 결코 아니다. 이를테면 장인 정신이 물씬 깃든 예술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샘을 끌어올리는 사람들의 은둔과 고독을 헤세는 사랑한다.
헤르만 헤세가 톨스토이(1828~1910)에 대해 남긴 글을 보며 자기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을 통해 그 역시 위로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헤르만 헤세(1877~1962)는 기계적인 생산성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예술가의 삶을 직접 살아간다.
잘 쓰인 작품을 읽는 기쁨, 절제를 통한 작은 기쁨, 아름다운 것에서 느끼는 경이로움, 무용한 것을 사랑하는 동안 회복되고 치유되는 경험이 헤르만 헤세를 자주 만나고 싶게 한다.
(언제나 어떤 경로로나 추천드립니다.)
예술가의 종착지이자 목적지는 이제 더 이상 예술 행위나 작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고 단념하는 것, 그리고 영혼의 평온함을 누리며 기품 있게 존재하기 위하여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늘 고뇌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아를 희생하는 것이다.
❤️ 내 안의 것들을 살아내며 나로 존재하는 삶에 대해 가르쳐 준 스승인 헤르만 헤세, 정신에 깃드는 좋은 양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