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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평점 :
하루키의 심층 인터뷰집이라고 하니 안 읽을 이유가 없었다.
주로 작업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한 세대 차이가 나는 인터뷰어 가와카미 미에코의 성실한 선행학습?이 깊이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하루키는 여전히 사오십대 아저씨 같은 느낌이 있어서 새삼 나이를 확인하게 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곤 하는데, 아무래도 러너의 이미지가 그를 젊게 기억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인터뷰 중 도스토옙스키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는 부분에서 놀라긴 했다.
시종일관 진지하게 진행되지만, 인터뷰어의 고난도(작품분석)질문에 내가 그렇게 썼냐?고 되묻는 일이 종종 있어 웃음포인트가 되었다. 쓰고 잊는다는 주의인데, 전작에 집착하는 스타일보다는 훨씬 쿨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충분한 시간을 들인 여러번의 인터뷰여서 작품속 여성관에 대한 이야기도 진지한 무엇인가를 기대했었는데, ‘제가 그쪽은 잘 몰라서, 뭔가 부적절했다면 미안합니다만....’이라는 태도는 역시 어쩔수 없는 그 세대 남성의 기운인가 싶기도 하다.
호의적 분위기의 인터뷰에서 종주먹들이대며 따지기도 부적절하겠지만... 아쉬운 태도랄까. 일본 내의 여성에 대한 관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하루키를 더 알고 싶다면, 물론 재미있다.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고베 지진이 일어나고,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원전 문제가 생겼죠. 전 그런 시련을 통해 일본이 좀더 세련된 국가로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명백하게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그게 제가 위기감을 느낀 이유이고, 어떤게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64
-그럼 기사단장과 이데아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기사단장은 자신을 이데아라고 말하며 ‘나’의 앞에 나타납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악의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아요. 이데아란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니까요.
무라카미 몰랐는데요.
-서, 설마요. 저 이 인터뷰를 위해 플라톤의 향연과 국가를 대충이나마 훑어 보고 왔는데요.....
무라카미 맙소사. 대단하군요.
- 그도 그럴 게, 부제를 보세요! 이데아와 메타포가 나오고..... 교양수업에서 플라톤주의를 배우긴 했지만, 이야기가 나오면 따라갈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아서요. 글자가 깨알만해서 힘들었는데, 어쨌거나 이데아는 모두 선하다, 악의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플라톤도 동굴의 비유를 하는데요.
무라카미 아, 그건 알아요. 유명한 비유죠. 내용은 잘 모르지만.
- 무라카미 씨...... 저기 말이죠. 소설을 쓰면서 이데아라는 단어를 무라카미 씨가 타이필한다고 쳐요. 키보드로 이렇게, ‘이, 데, 아’라고. 이데아는 워낙 유명한 개념이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이데아에 대해 좀 알아두자, 정리해두자’라는 생각이 안 드시나요?
무라카미 전혀 안 들어요.
- 정말로요?
무라카미 네. 정말로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전 그저 그것에 ‘이데아’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고, 진짜 이데아, 플라톤의 이데아와는 관계 없습니다. 그냥 이데아라는 말을 빌려온 거죠. 어감이 좋아서. 게다가 기사단장이 ‘나는 이데아다’라고 자기소개를 했을 뿐, 그가 진짜 이데아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른바 플라톤에서 시작된 이데아 개념과 ‘기사단장 죽이기’의 이데아가 관계없다니,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이데아하면 보통 그 이데아를 떠올리잖아요. 전 예습까지 해왔는데......
무라카미 이런,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 162
2018. a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