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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헛소리에 대한 저자의 집요한 탐구랄까.
하나의 현상, 한개의 단어에 대해 공들여 생각하고 그 현상과 원인과 전개되는 방식에 대해 쓴 글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가볍게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지만, 결코 가벼워 보이지는 않으려는 책의 판형도 마음에 든다.(물론 분량이 가벼우니 적절한 책값 형성을 위해선 논문제본 방식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본문을 소화하고 역자 후기를 읽다 멈칫하게 되었다.
- 개소리는 정치의 영역을 넘어 확산된다. 재벌들의 사회공헌 기업광고를 보라. ‘사람이 미래다‘라고 캠페인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입사원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좌우파를 막론한 시민사회도 숨은 의도가 있는 조어들을 생산해낸다. 자유민주주의자를 ‘빨갱이‘, ‘종북‘으로 낙인찍기는 낡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시선강간‘이라는 용어를 보라. 촌철살인과 개소리의 경계 선상에 놓인 말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누가누가 더 개소리를 잘 만들어내는지, 누가 더 뛰어난 개소리 예술가인지 장기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에서 말하는 프레임론과 마케팅에서 말하는 포지셔닝론 모두 개소리의 기술에 관한 이론이다. 모두가 말의 진릿값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숨은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언어조작에 전념한다. - 75, 옮긴이의 글 중
숨은 의도가 있는 언어조작의 예로 이야기를 하던 역자는 최근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시선 강간‘이라는 용어를 예로 든다. 남성들의 시선을 받는 정도로 강간이라는 범죄용어를 사용하다니 남성들을 가해자로 낙인찍으려는 의도, 라는 뜻일까?
애초에 왜 시선 강간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에 대한 고찰없이 그런 말을 만들어내다니 이것은 개소리다. 라는 말인가?
시선 강간이라는 말이 왜 개소리일까? 굴욕적이고 불쾌한 시선을 받은 여성들이 자신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시선과 그 행위에 따라오는 가해시선의 얕잡아보는 표정과 행위 동조자들과 나누는 원치않는 평가의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불쾌한 성추행을 멈추라고 요구하면 하는대로, 차마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아무말도 못하고 무시하면 하는대로, 여성의 내면은 그로 인한 막대한 피해가 야기된다. 그것은 강간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의 피해라는 의미의 조어를 왜 개소리라고 치부하는 말을 남의 글을 번역해 놓고 역자 후기랍시고 쓰는걸까.
번역의 수고에 이 정도의 말은 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책의 저자에게 민폐가 되는 말은 아무리 번역자라도 안하는게 낫지 않을까.
-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개소리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정도의 지각은 갖추고 있다고 꽤 자만하고 있다. 그래서 개소리와 관련된 현상은 진지한 검토의 대상으로 부각되지 않았고, 지속적인 탐구의 주제가 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개소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왜 그토록 개소리가 많은지, 또는 개소리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개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밝혀낸 올바른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달리 말해서 우리에게는 개소리에 관한 이론이 없다. 나는 몇 가지 가설적이고 예비적인 철학적 분석을 제공함으로써 개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론을 발전시켜 보고자 한다. 개소리의 수사학적 이용 및 악용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내 목적은 개소리의 본질이 무엇이고, 개소리가 아닌 것과 개소리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개소리의 개념 구조를 개략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 7
- ‘똥shit‘이라는 말은 분명히 그렇다는 걸 암시한다. 대변은 설계되거나 수공예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냥 싸거나 누는 것이다. 그것은 다소 엉겨 붙은 모양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공들여 만든 것은 아니다. - 26
- 개소리쟁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효다. 그는 진리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정직한 사람의 눈과 거짓말쟁이의 눈은 사실을 향해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개소리를 들키지 않고 잘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사실들이 그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안는다. 그는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 58
- 개소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말하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 기회나 의무들이 화자가 가진 그 주제와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식을 넘어설 때마다 개소리의 생산은 활발해진다. - 65
2021. a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