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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ㅣ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완독.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어렵다고도 할 수 없는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생각할 것이 많아서 였다.
그레고리우스가 삶의 흔적을 쫓는 프라도.
그는 일면 염세적이고 우울한 철학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기에
그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증언과 그의 수많은 편지와 저서를 통해 드러나는
삶과 그 삶에 대한 고찰이 매우 진중하고 의미있다.
그에 더하여 포르투갈의 역사적인 암흑기를 거쳐온 사람들의 상처...
그 상처들이 머나먼 이국의 어느 시절의 이야기로만 다가오지않는 것은 이 나라도 비슷한 시절을 멀지 않은 과거에 격어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평온하게 그저 숨만 쉬면 굴러가는 일상을 뒤로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으로 떠난 다는 것.
그 결단이 비록 우발적인 한 사건에 의해서라지만,
아마도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도는 어쩔수 없는 운명의 끈같은것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28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프라도의 저서 중 이 짧은 한 문장이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게 만들었던 것.
이미 평화로운 시절을 맞이 했기에 그다지 험난할 것은 없는 여정이지만, 프라도의 삶에 깊이 발을 담글수록 묘한 긴장감이 더해간다.
몇 주에 걸쳐 드문드문 읽었지만, 가볍게 읽지는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그 때 형태가 잡히지 않은 채 우리 앞에 놓여 있던 그 열린 시간에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을 해야 했을까. 자유로워 깃털처럼 가벼웠고, 불확실하여 납처럼 무거웠던 그 시간에. -p. 75
현재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다. 시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 모든 것을 안다는 신이 왜 이것은 모르는가? 견딜 수 없는 단조로움을 의미하는 무한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난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유리창의 반짝임과 서늘한 고요함과 명령을 내리는 듯한 정적이, 오르간의 물결과 기도하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미사가, 말씀의 신성함과 위대한 시의 숭고함이 필요하니까. 나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자유와 모든 잔혹함에 대항할 적대감도 필요하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무의미하다. 아무도 나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말기를. - p. 220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 p. 279
난 언제나 이른바 `성숙`이라는 걸 거부하던 사람이오. 싫어해. 난 사람들이 말하는 성숙이란 걸 낙관주의나 완벽한 권태라고 생각하오. - p. 291
자신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사람은, 쉬지 말고 광신적으로 실망을 수집해야 한다. 실망스러운 경험의 수집이란 그에게 중독과도 같을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독. 그에게는 실망이 뜨겁게 파괴하는 독이 아니라 서늘하게 긴장을 풀어주는 향유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의 진정한 윤곽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해주는 향유... - p. 293
우스꽝스러운 무대. 우리가 중요하고 슬프고 우습고 아무 의미도 없는 드라마를 상연하기를 기다리는 무대로서의 세계. 이런 생각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매혹적인가. 그리고 얼마나 불가피한가! - p. 307
고통이나 외로움, 죽음처럼 사람이 견디기에 너무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장엄함, 행복도 우리에게는 너무 큰 개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위해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잃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렇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들은 여전히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거나, 여전히 우리에 비해 너무나 위대합니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개인적인 삶의 시입니다. 시가 우리를 지탱해줄 만큼 강할까요? - p. 539
2015.J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