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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4 - 4부 2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식자들의 탁상공론이 당시 시대상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그게 참... 못 봐주겠는 꼴값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는 점.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한 명희가 오히려 삶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당시 여성이 관습을 벗어나면 어떤 어려움에 처하는지 잘 보여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교육받고 계몽된 신여성들이 느끼던 자괴감이 느껴진다. 현실과 내면의 자존감의 격차가 어쩌면 오히려 신분의 하락의 감각으로 다가왔을 것만 같은 좌절.
적국이라는 외면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인실과 오가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도 시대의 어려움.
후반부의 빌런으로 부상한 두만은 그 아집과 자격지심으로 한계까지 망가지고 있고...
아직 독립은 요원한 시절이고... 여전히 암울.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이 없는 시절.
- 그리움이란! 완성할 수 없는 인실과의 사랑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것이 오가다를 불행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인실은 일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나 오가다는 결혼 아니 할 것을 맹세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는 자신의 생애가 방랑으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였다. 불꽃과 인내의 여자 유인실. 뜨거움과 폐부를 찌르듯 싸늘하게 들이대는 칼날의 여자. 불꽃도 그의 진실이요 인내도 그의 진실. 그 여자는 위대하지 않았고 오가다가 갈 길을 비춰주는 등불도 아니었다. 오히려 험한 길 괴로움의 길로 자신을 내몰아버린 여자인지 모른다. - 65
- 우월감 그 자체가 열등감이란 생각을 안 해보셨습니까? 사실 우리가 다 좋은 것도 아니며 조선이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조선이 다 좋은 것도 아니며 우리가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일등국민이다, 일등국민이다, 구두선처럼 뇐다는 그 자체부터 일등국민이 아닌 어릿광대지요. 개인에게도 품위가 있듯, 민족이나 국가에도 품위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단히 훌륭한 신사가 민족이나 국가에 관해서는 사리에 안 맞는 언사, 억지, 편견, 심지어는 살인자까지 된다는 것 어떻게 설명이 돼야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자부심 아니겠습니까? 자기 존엄과 우월감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 75
- 새로운 오백 섬지기의 토지, 그러니까 최서희로부터 나온 것인데 연학은 그 경위를 설명하지 않았다. 연학이 자신도 갑자기 땅을 내놓는 서희의 진의까지는 헤아리지 못하였고. 삼십 년 전 오백 섬지기의 땅은 할머니 윤씨가, 지금 또다시 오백 섬지기의 땅은 그의 손녀 최서희가, 그러나 실정을 말한다면 그 땅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최 참판댁과는 무관의 중생들이다. 대의를 위하여 내놓은 땅도 아니었으며, 한 사람의 비극적인 인연으로 인하여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 인한 인연의 줄은 거미줄같이 얽히고 설켜, 대의를 위함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최 참판댁의 수난과 이 나라 백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동질적인 것. 원했든 아니했든 간에 이들은 어느덧 한배를 타게 된 것이며, 이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강토탈환이라는 희망봉을 향해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음을 부인 못한다. - 117
- 나라가 망하는 그 틈새 일부 여자들은 달음박질로 새 교육을 받았는데 명희 너도 나도 그 부류에 속하지만 세상의 인식이 달라지기도 전에 남자가 여자의 인격을 인정하기도 전에 이런 새로운 여자들이 나왔다는 것은, 소위 신여성들인데 공중에 휭 떠버린 상태가 될밖에 없었지. 서울의 강선혜 같은 여자가 그 대표적인 거라 할 수 있겠지. 명문거족의 딸들은 기왕의 누려온 그 특권으로 해서 새로운 학문도 시집가는 혼수같이 되어 전과 다름없는 며느리 아내로 낙착이 되었지만 그럴 수 없는 계층의 여자들은 오히려 신분이 떨어져버린 느낌이야. 남의 소실 후처댁이 심지어는 광대 취급이고 소수가 사회 일각에서는 뭔가 해보겠다고 가시밭길을 걷는데 말로는 존경한다 하기도 하지만,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교육받은 여자라는 것이 보탬이 되기보다 남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는 거지. 호기심의 대상으론 시골이라고 다를 게 없어. 더했음 더했지.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을,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우쭐해서 좋아하는 속빈 신여성도 많긴 많았지만 예부터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은 천한 거였어. 넌 줄곧 온실에서만 살아왔으니까, 글쎄 어느 정도 견디어낼는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담을 쌓아도 제발 내 앞만 가리는 이기주의자만은 되지 말아라. 노처녀나 이혼녀나 과부나 편협하고 옹골차고 물기 없이 말라서 자기 둘레만 깨끗이 하고 자기 식량만을 챙기는 그런 습성은 밖에서 오는 핍박 때문에 자연 그렇게 된 것이지만 그것을 이겨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 초라해져. 우리도 살아 있다는,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거야. 명희야, 우리 물기 빠진 나무는 되지 말자. - 212
2024.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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