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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러시아의 근대사를 바탕으로 잘 구축된 이야기.
모처럼 즐거운 독서.
호텔에 연금 된 백작의 소소한 일상이 초반에는 조금 지루했지만, 그 내면의 폭풍과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조화로 견고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자라나는 게 선명하게 보이는 이야기였다.
한 사람의 인생이 역사의 휘말려 흐르고 또 흐르는 모습은, 찬란한 생을 음미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도 한다.
후반부에는 쇼팽의 녹턴 이번을 계속 반복해 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가 서서히 조성된다.
˝인생은 모른다.˝ 그런 정조의 이야기라서 마음이 차분했다가도 두근두근 했다. 돌풍 같은 시대의 이야기다.
작가의 다른 책도 당장 주문했다.
- 직업을 갖는 건 신사의 일이 아닙니다.- 14
- 하지만 모든 시기는 나름대로 미덕이 있다. 혼란에 시대라 할지라도...... -48
- 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뿐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194
- 우리 인간은 결국에는 철학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이다.-236
- 역사학도로서, 그리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상황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 내몰리는 것과 상황을 잘 감수해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338
- ˝소피야, 내가 너한테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두렵구나. 네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난 너를 이 건물의 사방 벽 내부로 한정된 삶으로 너를 끌어들였어. 우리 모두가 그런 거야. 마리나, 안드레이, 에밀, 나, 우리 모두가. 우린 이 호텔이 진짜 세상처럼 넓고 멋진 곳으로 보이도록 만들려고 애를 썼어. 네가 이 안에서 우리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네 엄마 말이 정확하게 맞았어. 사람은 금박으로 장식된 홀에서 <셰에라자드>를 들음으로써, 혹은 자기만의 동굴에 갇혀 <오디세이>를 읽음으로써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실현하는게 아냐. 사람은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디딤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거야. 중국 땅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나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항해에 나섰던 콜롬버스처럼 말이야.˝
소피야가 이해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이 얘기를 계속 했다.
˝내겐 너를 자랑스러워 할 이유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단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음악원 경연대회가 열렸던 밤이었어. 하지만 정작 내가 최고의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안나와 네가 우승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가 아니야. 그것은 바로 그날 저녁, 경연을 몇 시간 앞두고 네가 경연장으로 가기 위해 호텔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만약 제가 파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면,˝ 잠시 뒤 소피야가 말했다. ˝전 아빠가 청중석에 앉아서 제 연주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얘야, 나는 장담할 수 있어. 네가 달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 하더라도 나는 네가 연주하는 음 하나 하나를 모두 다 들을 거야.˝ -608
2021. Nov.
#모스크바의신사 #에이모토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