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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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 아무것도 없이, 대기를 좀 해야 하는 병원에 가는 길에 이 책을 꺼내 들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책 고르는 손에 무슨 신이라도 붙은게 아닐까 싶다. ㅋㅋ

병원 비리에 대한, 그 안의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두어시간을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며 읽고 있자니 현장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무주는 병원 비리에 안일하게 대처하다 지방 병원으로 밀려난 병원 행정직원이다. 그 안에서 새로 태어나려는 시도?로 비리를 고발하지만, 무주에게 돌아온 것은 동료들의 비웃음과 외면이다. 일면 사회가 그런 곳이라고 병원이라는 배경을 통해 이야기한다. 비정하고 낙관이 없는 사회를 산업의 몰락으로 유령화되어가는 도시위에 그렸다.
이런 시스템의 대표 명사로 불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또 한번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거대한 거미줄에서 어떤 거미와도 공존하길 거부하는 한마리의 거미같은 존재들.
비난일까 생각했지만, 연민이라고 느껴졌다.

편혜영. 애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다. :)

이석은 언제나 의사에 대해 혹평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믿을 수 없는 건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만큼 악랄한 인간은 없어. 희망으로 병이 낫나. 절망에 빠진 사람한테 돈이나 계속 쏟아부으란 얘기지. 잘 들어둬. 그런 인간한테 속으면 안 돼. - 15

할 수 있는 한 모조리 다시 시작할 작정이었다. 선한 의지로 우정을 쌓아가고 순간적인 충동에 굴복하지 않고 신념과 신의를 지키고 동료와 신뢰를 만들어가고 함께 미래로 나아갈 가족과 사랑을 나누고 나날의 삶을 좀 더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소소한 웃음과 농담과 잡담을 나눌 작정이었다. - 55

관행만큼 편하고 안전한 건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면 ‘관행’이 비난받을 것이었다. - 75

무주는 그 모든 가능성을 지닌 아이를 잃었다. 질서와 명분을 잃었다. 선하고 바르려는 의지를 잃었다. 이석도 아이를 잃었다. 삶을 다 바쳐 살리려던 아이를 잃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병원은 차라리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 가족을 잃게 되리라는 소식을 듣는 곳이었다. 사무장 말이 맞았다. 병원에서는 누군가 죽기 마련이었다. - 93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 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 140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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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죽음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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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주의 작품들은 내 경우 읽을 당시 컨디션이 평가에 매우 영향을 미치는데, 금빛 죽음을 읽으면서 묘한 흥분에 압도당했다.

이 대책없는 방탕과 향락은 어느 시대에 옮겨다 두어도 불가해할 그야말로 어떤 지점을 지나쳐버렸는데, 이 대책없음이 흥미를 이끌어내는게 아닐까 한다. 그것이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읽는 이유도 될 것이다.

아름다운 인어에 매혹된 귀공자와, 위험한 마술사에 매혹되는 사람들, 빈부의 차가 현격한 동급생과의 인생을 아우르는 미에 대한 추구.....

그 와중에 작가가 완전한 인간미의 표상이라고 표현하는 각 인종들의 장점과 미를 취한 이국적 인간은 어쩐지 비인간에 근접하지 않을까. 혼혈에 이국적인 마술사나, 이국의 인어, 금박이 온 몸에 뒤덮여 죽음을 맞이하는 오카무라.
현란한 수사를 동원해 그려내는 극치의 화려함은 발리우드 영화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을 이렇게 즐겁게 읽은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다 문득 레싱의 라오콘에 대해 토론하는 부분이 호감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돈이 많다는 것은 물론 행복한 일이지만 자칫하면 도리어 불행한 결과를 낳게 돼. 부는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마는 거야.
아니 그럴 걱정은 없어. 부자가 타락하는 것은 그 재산을 더 불려 보겠다고 사업에 뛰어들 때뿐이지. 돈이 많은 자는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항상 행복해. - 89, 금빛 죽음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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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 개정판
크누트 함순 지음, 우종길 옮김 / 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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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이 가장 강한 동기이고 변명이다.

하찮은 젊은이의 굶주림을 통해 뭘 보여주는건가 라고 생각하며 읽다보니 순식간이라고 할 만하게 한숨에 이 책을 다 읽었다.

굶주림이 죄과를 치르는 것이고 그것은 하느님의 독단이라 한다. 이 얼마나 거대하고 유치한 자아 비대일까.
불행함으로 표상되는 빈곤으로부터 우연의 힘으로 간신히 한발짝 두발짝 멀어졌다가 맥없이 되돌아오는 반복은 체념을 나에게 까지 전해준다.
생에 대한 어떤 강렬한 욕망이 없고, 욕구도 없다. 그 모든 없음의 상태는 불안정하지만 어쩐지 허망한 달콤함도 제공한다.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만큼 허약해진 육체로도 크리스티아나의 사랑을 (어쩌면 연민을) 얻을 수 있다는 배웠으나 운이 따르지 않는 남성의 알량한 자존감이 가득했다. 빈약한 지성에 대해 생각해보니 무기력하고 유약했던 개화기 지식인들이 생각나기도한다.
어쨌든 그리고 그는 마침내 문득 마주친 선원을 따라 배를 타고 현실에서 도망쳐 버린다.

이토록 허무한 서사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한참동안이나 생각했다.

남겨진 어떤 의미는 잠시 미뤄두고 한달음에 읽는 맛을 오랫만에 느껴서 책을 덮으며 좋다..라고 느꼈을까.


다시금 정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기분인가. 내 빈 주머니는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빈털터리가 되고 보니 즐거웠다. 잘 생각해 보면, 그 돈은 사실 내게 남모르는 많은 근심을 안겨주었다. 나는 실제로 그것을 생각하며 여러 번이나 몸을 떨곤 했다. 나는 냉혹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내 정직한 천성이 완벽하게 비천한 짓에 저항을 한 것이다. - 187

하지만 거기에는 장점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했으니까. 가난하면서 똑똑한 사람은 부자이면서 똑똑한 사람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사물을 관찰한다. 가난한 사람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주변을 살펴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의심쩍게 관찰한다. 한발 한발을 내디딜 때마다 의무와 임무를 생각하고 느낀다. 그런 사람은 귀가 예민하다. 감수성이 강하다. 경험이 풍부하다. 그의 영혼에는 불꽃이 깃들여져 있다...... - 229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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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fi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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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죽은이의 자취를 쫓는다.
어떤 세계를 지칭해서 말하고 있지 않는 듯 해서 온 세상을 말하는 것도 같았다.
한번 다시 짚어보니 처음 읽을 때보다 훨씬 좋았다.

인적 없는 밤길
둘에 하나는 고장 난 가로등
갸우뚱했지만 남자는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가는 눈길을 겨우 헤치고 나아간다
어디선가 살아 있는 것이 낑낑거리는 소릴 들었지
눈 속에 파묻힌 개를 끌어 올려 품에 안고
작은 개야, 오늘 밤은 나와 함께 가자
다시 컴컴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 밝은 미래 중

이상하게도 그가 삶을 포기하고 나면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 카프카의 잠 중

두려워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면
죽음이 무슨 소용인가요
가수는 노래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죽고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 노래하고 - 계면 중

혼자 동물원에 가는 여자
눈이 내릴 땐 죽고 싶은 여자
불가능과 불가해와 영원이라는 말을 늘 생각하는 여자
파도가 검은빛으로 변하는 걸 지켜보는 여자
죽은 아이를 업고 다니면서도
왜 몸이 무거운지 모르는 여자 - ghost 중

내가 받을 축복과 저주의 무게를 달아보았다 한밤중 눈은 계절과 무관하게 내렸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끌고 왔다 사람은 한 번만 죽는 게 아니라고 백 번도 넘게 죽을 수 있다고 너는 말했다 영원히 사는 사람들의 밤에 대해서도 고요히 쌓이는 눈에 대해서도 말했다 - 나의 나 된 것 중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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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율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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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단편들.

딱히 마음에 남는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미미여사의 장편이 더 좋다.

선의라고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내는 함정은 좀 싸하다. (지하도의 비)

사소하게 묘사되는 범죄들도 마찬가지...

아마 읽는 당시 기분이 별로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2018.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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