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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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과 해솔의 사랑은 저주일까.
돌고 돌아 시간이 한참을 흘러도 끊기지 않는 인연이란 사실 너무 징그럽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연의 이야기는 수목 드라마 같은 이미지를 그려보게 된다.
어린 연인의 분노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저주가 되고,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연 성장인가?) 이야기.

- “아무 생각도 없어?”
도담은 답답해하며 짜증을 냈다.
“넌 뭐, 무슨 생각이 있는데?”
해솔이 맞받아쳤다. 짙은 물안개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벌을 주자.”
도담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어떤 말은 혀를 통해 입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의식을 붙들어 매고 돌이킬 수 없는 힘을 가진다. 자욱해진 물안개 너머로 가파른 산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고 댐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물을 토해 내고 있었다. - 59

-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 100

- 두 사람 사이를 너울거리는 파도에 서로의 얼굴이 보이다 말다 하며 어른거렸다. 도담은 해솔에게 가까이 가닿고 싶었다. 그때 조류에 밀려나 두 사람이 멀어졌다. 둘은 물결을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해솔과 도담은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 296

2023. jan.

#급류 #정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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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본 이야기
구병모 외 지음 / 미디어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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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솔로지가 넘쳐나니 예전처럼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들어 그래서인지 다수의 작가들의 문집은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이 책은 구병모, 권여선 작가라서 선택했었던 것 같다.

- 조금의 과장도 없이 호흡 한 번을 놏히면 줄 위에서의 삶은 끝장이라는 걸, 올라간 자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무결점을 추구하는 동시에 끝장에의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는 것이 쇼의 본질이자 즐거움의 원천이다. - 11, 소여, 구병모

- 우리는 밤을 통과한다. 그러나 밤이 우리를 통제한다. 우리는 강과 언덕, 산과 호수를 지나 한 번 안개를 지나쳤고, 다시 한번 안개를 지나친다. 드물게 선 가로등 불빛에 안개가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스포트라이트처럼 희끗희끗 드러난다. 안개는 우리를 비추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관객이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유형의 밤을 겪어왔다. 차가운 밤, 칠흑과도 같은 밤, 끈끈한 밤, 더운 밤, 투명한 밤, 위험한 밤, 위협적인 밤. 우리는 자동차 소음을 음악으로 덮고, 음악이 시작하거나 끝날 때, 각자 갖고 있는 밤의 목록을 공유한다. 두려운 밤, 덮치는 밤, 부딪히는 밤, 갇힌 밤, 취한 밤, 도망치던 밤, 이불로 머리를 완전히 덮던 밤, 초침 수를 헤아리던 밤, 밝은 밤, 희망찬 밤, 별의 폭발을 지켜보던 밤, 시간이 없던 밤, 손에 땀을 쥐던 밤, 오랜 시간 기다렸으나 하나의 유성도 보지 못한 밤, 추월하는 밤, 가속하는 밤. 그 밤들에 무슨 일이 있었지? 그리고 밤과 밤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지? 우리는 밤과 함께 흘러간다. 곡선 도로에서 무심코 속도를 높이다 당황하지 않고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다. 밤의 정지. 검은 얼음처럼 단단하던 밤의 밀도가 흐트러진다. - 150, 헤엄치는 밤, 한유주

2023. jan.

#들어본이야기 #구병모 #권여선 #듀나 #박솔뫼 #한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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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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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재밌다는 추천으로 쓰네카와 고타로를 처음 읽은게 [멸망의 정원]이었고, 대실망하였으나.

[야시]는 정말 재밌게 읽었다는 지인의 말에 다시 도전해봤다.

이세계와 만나는 설정의 두 편의 이야기는 확실히 재밌고,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호러소설 대상작다운 음울한 결말들도 마음에 든다.

야구선수를 희망하다 농구 만화가 유행하고... 라는 부분에서 요즘의 슬램덩크 신드롬이 떠올라 살짝 웃었다.

야시라는 공간은,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 짝패로서 예언을 해주지. 네 인생이 나빠지는 일은 절대 없을거야.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축복받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아. 바깥 세계의 어느 누구보다도 말이야.
머나먼 미래에 네 몸은 거목이 되고 네 영혼은 고도를 벗어나 세계를 넘나드는 바람이 될 것이다.
그때 다시 만나자꾸나. - 89, 바람의 도시

- 어떤 기적을 만나든 간에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닙니까? 그 시작부터 끝까지 각오와 희생이 필요하지요. - 119, 바람의 도시

- 이것은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변화도 없고 극복도 하지 않는다.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 나간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미아처럼 혼자 걷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끝없는 미로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 124, 바람의 도시

2023, feb.

#야시 #눈을감으면다른세상이열린다 #쓰네카와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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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눈빛
박솔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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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않고 한 호흡으로 쭉 리듬감있게 읽게 되는 글.

전에는 이런 흐름이나 구조도 좋아했는데, 취향이 변했는지 리드미컬하기보단, 좀 지루하게 늘어진다 느껴진다.

겨울의 눈빛이 가장 좋았다.

-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위로하고 다독여줍니다. - 16,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 나는 지금 일어나는 그 사건, 바로 그 일을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피로와 기만을 느꼈다. - 103, 겨울의 눈빛

- 나는 길 위에 서있고 여전히 이름들을 불러보고 있으며 계속해서 가고 있다. - 작가노트

2023. feb.

#겨울의눈빛 #박솔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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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민음의 시 299
문정희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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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 떠날 때..

처음 읽을 때도,
되돌아가 다시 읽을 때도.

맥없이 빠져들어가는 시.

좋다 :)

- 늘 새로 태어나기 바빠
해가 기울어 간 것도 몰랐다.
살과 뼈
들끓는 나로 시를 살았다.
미완성으로 완성이다. - 시인의 말

- 명성은 매끄러운 비누의 모습으로
모래 위를 돌처럼 바다거북처럼 굴러다니다가
가뭇없이 바닷물에 쓸려 간다 - 비누 중

- 나는 울다가 눈을 떴다
그래 이대로 절뚝이며 살아라
나 또한 헛짓하며 즐거웠다
나는 시들을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 망각을 위하여 중

- 어지러운 밤, 고백하건대
사랑은 한 가지 냄새가 아니다
사랑은 가뭇없이 몸을 바꾸고
사라지고사라지고...... 그것만이
뜻밖에도 그것만이 사랑이다 - 네가 준 향수 중

- 요즘 내겐 슬픔이 없어
무엇으로 사랑을 하고 시를 쓰지?
슬픔? 그 귀한 것이 남아 있을 리 없지
창가에 걸어 두고 흐린 달처럼
조금씩 흐느끼며 살려고 했는데
슬픔이 더 이상 나를 안아 주질 않아 - 망한 사랑 노래 중


2023. jan.

#오늘은좀추운사랑도좋아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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