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45
윌라 캐더 지음, 윤명옥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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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리 라투르. 35살의 사제.
새로운 교구에 새로운 사제로 임명되어 일생을 헌신한 사람에 대한 기록.

역사적인 기록으로서의 가치.
순수하고 잔혹한 시대상의 기록.

솔직히 재미는 별로 없다. 대주교의 행적을 따라 순례하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잔잔하다고 할 법하다.

민중을 압제하는 이들은 탐욕스러운 개척자일수도, 신의 뒤에 숨어 잇속을 채우는 사제일 수도 있었던 어지러운 시절.
개척정신에 대한 윌라 캐더의 작업이 진지하고 신실하다.

- 추기경님, 만일 그곳 출신의 사제를 임명한다면 대단히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포교 일을 결코 잘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 교구 사제는 늙었습니다. 새로운 교구에 새로 임명되는 사제는 체력이 튼튼해야 하고, 열성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똑똑하고 젊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야만적이고 무지한 사람들을 다룰 수 있고, 방종한 사제들과 정책적으로 음모를 꾀하는 자들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질서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 13

- 세상의 이런 지역에서는 우편배달이라는 것이 없었다. 두랑고에 있는 신부와 연락을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직접 그를 찾아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타페에 도착하기 위해 거의 일 년을 여행한 라투르 신부는 몇 주 후 그곳을 떠나 홀로 말을 타고 올드멕시코로 되돌아 가는, 꼬박 3천 마일이 되는 여행을 다시 하게 된 것이었다. - 30

- 마티네즈 신부의 이런 열변을 듣고도 주교는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며, 그가 여기 온 목적은 이곳 사람들의 종료를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이곳 교구의 사제들 몇몇이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그들의 지위를 박탈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167

- 베르나르, 산타페로 말을 타고 나서 내 대신 대주교를 만나 봐줄 수 있겠니? 내가 그 집에 있는 내 서재로 돌아가서 잠시 쉬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봐 줘. 난 산타페에서 죽고 싶어.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얘야, 난 감기로 죽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보람으로 죽을 거야. - 300

2023. jan.

#대주교에게죽음이오다 #윌라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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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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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 유리는 어느날 불현듯 세상을 등져버려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지치고 무감각한 캐릭터다. 그런 그가 주변인들의 느슨한 연대에 힘으로 세상에 감각을 조금씩 열어가는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인다.
일생을 할머니 한분 단촐한 인연으로 조금은 애틋하게 조금은 안쓰럽게 살아오던 사람에게 그런 집요하지는 않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시대인가.

너를 처절하게 혼자인 상태가 되게 하진 않을께. 라는 마음이 전해져서 무척 좋았다.

-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 9

-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합리적이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이상한 일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걸 보면. - 21

- 좋은 일이다. 우리는 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를 해 먹고 공원으로 갔다. 수많은 사람, 개, 자전거 속에 섞여 지금 이곳을 이루는 수많은 것 중 하나가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걸었다. 다가오는 것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비켜 가면서. - 33

- 언니와 골목에서 헤어진 뒤에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이럴 때면 기나간 불행이 줄어드는 것 같다. - 47

- 집이 나와 같은 방향인 듯, 나는 꽤 긴 거리를 그의 뒤에서 걷고 있었다. 그가 세 번째 멈춰 섰을 때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손톱달이었다. 그의 시선 끝에 손톱달이 떠 있었다. 달을 보려고 멈춰 서는 사람이라니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도 봤네요. - 75

2023. feb.

#어느날의나 #이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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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185
장옥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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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에 대한 진술. 그게 너무 선뜩했다.


- 손차양하고
눈앞에 펼쳐진 먼지의 길을 바라본다
아득하다
알지 못할 그곳은 아직도 멀다 - 시인의 말

- <항아리>
항아리를 들고 서 있는데 누가 말을 걸어왔다 입이 없는 사람이었다

둥근 배가 슬펐다 항아리처럼 슬픈 얼굴이었다 항아리인 줄 알았는데 네 얼굴이었다

안을 수도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웃는 듯 우는 듯 금간 얼굴에 물비린내가 슬쩍 묻어났다 (전문)

-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늙었다
그젠 삼십 년 입은 바지를 버렸다
옷을 버리는 일은 슬프다
버리고 버림받는 일은 유정한 일이다 - 일요일이다 중

- 하루를 비스듬히 걸었다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했다 그리운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강ㄹ이었다 슬픔이 우니 기쁨도 따라 울었다 감정이 안개처럼 퍼져 모든 게 모호했다 - 비스듬히 다만 비스듬히 중

- 생
그 한마디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 어안이 벙벙하다 중

2023. feb.

#사람이없었다고한다 #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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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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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단편 SF.

역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이 드는 단편들이다. 유사한 소재의 다른 소설들과의 차별점은 역시 미야베 미유키 인가 싶다.
SF지만 인간의 감성적 측면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뭐 다른 SF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임은 마찬가지지만.

심리 메커니즘에 입각한 마더법이 적용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엄마의 법률>
오랜시간 함께 해온 로봇과의 마지막 인사를 담은 <안녕의 의식>
죽음의 경위로 사람을 분류해 다시 살려낸 세상의 이야기 <보안관의 내일>

이 세편이 가장 흥미로웠다.

- 나라는 인간을 좌우하는 요소는 ‘누가 낳아줬나’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누가 키웠나’다. - 55, 엄마의 법률

- “..... 뭐라던가요?”
왜 내가 이런 걸 물을까. 아무래도 좋은 일 아닌가.
“언제나 그렇게, 수화로 하먼과 이야기했나요?”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을, 왜 나는 물을까.
“그만 돌아가래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여자애는 손등으로 뺨을 닦았다.
“그 말뿐이에요?”
대답이 없었다. 하먼을 바라본 채 새로 흐르는 눈물로 뺨을 적시면서 여자애가 말했다. “기초기억 보존은 포기하겠어요. 이제, 하먼을 보내주세요.”
“왜 또 갑자기?”
“본인이 그걸 원하니까요.”
여자애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고 양손을 움직여, 조금 전 하먼이 했던 동작을 그대로 해 보였다.
“하먼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를, 죽게, 해주세요.”
...... 나를 죽게 해주세요. - 187, 안녕의 의식

- 이 세계에서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면 좋겠다.
이 세계에는 인간보다 로봇이 어울린다. 아니라면 다들 저렇게, 저 여자애처럼, 로봇을 위해 울고 로봇을 걱정하며 로봇과 마음을 나누려 할 리 없다.
로봇을 하나 조립할 때마다 나는 인간에게서 멀어져간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아무리 해도, 로봇은 되지 못한다. 그것이 답답해서, 원통해서......
나는 때때로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로봇은 결코 하지 않는 행위지만. - 194, 안녕의 의식

- 이곳에 신은 없지만, 기도는 할 수 있다. - 447, 보안관의 내일

2023. feb.

#안녕의의식 #미야베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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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개의 힘 1~2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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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목줄에라도 매인듯 멱살잡혀 마지막까지 내달리게 하는 이야기다.

마약 범죄 스릴러라는 것에 딱히 매력을 못느끼지만,
재미가 탁월하다는 추천을 받아 사두었던 책.

어쨌거나 해피엔딩이 되기 힘들 마약 전쟁이야기라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이 쫄깃한 심장을 부여잡게 된다.

아트 켈러, 아단 바레라, 칼란, 노라 헤이든 주요 캐릭터 네명의 시작부터가 극적이어서 클라이막스가 쭉 이어져 가는 기분이었달까.
애정을 갖게되는 캐릭터들의 생사여부에 감정의 기복이 널을 뛰었다.

초반에는 인명표를 확인하며 읽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만, 이야기속 너무나도 잘 녹아들어있는 캐릭터라 금방 몰입할 수 있다.

미국인은 멕시코의 작전에 조언자로 참가할 뿐이라고 여기던 풋내기 수사관 아트 켈러가 이 모든 마약의 굴레가 힘의 논리, 돈의 논리, 사상의 논리로 조직되는 거대한 음모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알고는 있지만 현실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고 마음이 답답하다.
결국 악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달리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지...
작은 정의의 실현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것인지...

주요 인물 네명을 제외하고 가장 애정한 캐릭터는, 후안 신부와 라모스였다.

-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 정작 문제 되는 것은 점잖지 못한 세상에서 점잖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 망할 놈의 전쟁.
빌어먹을 개망나니 같은 전쟁. - 26

- 그날 밤 두 사람은 맹렬하게 논쟁했다. 스카키가 베트콩 암살을 ‘하느님의 일’로 여기는 모습을 보고 아트는 오싹해졌다. 공산주의는 교회를 파괴하고 싶어 하는 무신론이라고 스카키는 되풀이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교회를 지키는 일이라 죄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의무라고 해명했다.- 41

-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저 아단 바레라가 ‘좋은 녀석’이었다는 사실뿐이다. 아단은 정말 좋은 녀석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 속에 무엇이 잠재되어 있었든......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흐른 뒤 아트는 가끔 생각했다.
확실히 아트의 내면에도 잠재되어 있었다.
개의 힘. - 55

- 아트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후안 신부에게 건넸다. 지난달 봉급이었다.
“약 사는 데 보태세요.”
“주님의 은총이 있을 것이네.”
“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상관없어. 신은 자네를 믿거든.”
아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신은 어리석군요.’ - 106

- 소식통 추파르가 아트에게 넘겨준 정보는 국경 업무를 보는 모든 법집행 정부기관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아트에게 정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하지만 모두 아트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했다. 신세? 맙소사. 그들은 아트를 ‘사랑’했다. 마약 단속국은 지역 협조 없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협조를 바란다면 아트 켈러와 잘 지내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다.
아니, 아트 켈러는 급속히 ‘인토카블레’가 되고 있었다. - 239

- 칼란은 신화를 들으며 자랐다.
쿠컬린,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울프 톤, 로디 맥콜리, 패드릭 피어스, 제임스 코널리, 숀 사우스, 숀 배리, 존 케네디, 바비 케네디, 블러디 선데이.
그 신화들은 모두 피투성이로 잔혹하게 끝났다. - 442

- 저의 주요 관심사는 복음이 지금 현재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굶어 죽은 다음이 아니고요. - 57

- 칼란은 처음에 에스코바르와 다른 코카인 왕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 카르텔의 회원들이 엄청난 코카인 돈을 부동산과 대목장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일부 좌파들 때문에 토지 분포 계획이 뒤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 158

- 후안 신부는 하나를 꺼내 절반쯤 들어봤다.
줄담배를 피우며 테이프를 듣고 서류들을 훑어보았다. 회의 메모들, 세로의 쪽지들, 이름, 날짜, 장소. 15년 동안의 부정부패 기록이었다. 아니, 단순한 부정부패가 아니었다. 부정부패가 통탄할 수준일 뿐이라면 이 사건은 엄청났다. 엄청나다는 말로도 모자란 일이었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들이 저지른 일은, 한마디로 말해서 ‘마약 밀매자들에게 나라를 팔아치운’일이었다. - 186

- NAFTA. 북미자유(마약)무역협정이다.
신이 자유무역을 베풀었다. - 314

- 언젠가 당신에게 세상 모든 것이 정치로 보일 때가 올 것이오. 그리고 행동이 당신의 주머니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올 것이오. - 333

2023. feb.

#개의힘 #돈윈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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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2-11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엔딩크레딧, 재밌게 읽었어요. (책 더 사고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샘 솟아요) 이제 개의 힘, 파워 오브 도그 (동제이서?) 따라 읽을래요.

hellas 2023-02-11 14:17   좋아요 0 | URL
멱살 잡혀 끌려가실거예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