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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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자의 안경을 너무 오래 쓴 탓에 아예 남자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54)

라고 말하는 저자의 영화 읽기.

안타깝지만 너무나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한 문장.

이제 더 이상은 예전과 같이 티비 드라마, 영화, 예능, 음악, 문학을 접할 수 없게 되고,

과거의 인연들을 돌아보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게 되며,

어떤 이슈가 터져나오든 그와 손톱만큼의 연관성만 있다면 예고도 없이 과거의 흑역사와 찌질함들이 소환되어 혼자 조용히 낯을 붉히게 되기도 한다.

내가 쓰고 있던 남자의 눈이 걷힌 이후로 일어나는 불쾌한 순간들이다.

그 불쾌감이 싫지 않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여성의 눈이 무척 반갑다.

무척 비슷하고 조금은 다른 이런 시선들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길 바란다.



이 영화에서 수배자의 여자로 나오는 전도연은 신분을 숨기고 접근한 경찰과 도주 중인 연인 사이에서 모든 것을 잃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남길은 전도연에게 강박적으로 말한다. “(너는 이용당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용한 게 아냐, (나는 경찰로서) 내 일을 했을 뿐이야!” 두 사람은 한때 사랑했으므로, 이 대사는 변명이 아니라 죄의식의 표현이다. 내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은 아름답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에서 “내 일을 했을 뿐”으로 정당화되는 일은 없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데, 이런 말은 인간을 혼자 살게 내버려 둔다. 이 말에 ‘나의 전도연’은 깊게 상처받았을 것이다. 나도 상처받았다. 그녀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나는 울었다. 나는 외로움을 원하지, 외로움을 ‘당하고 싶지 않다’. - 22

세계 최고 수준의 젠더 극우주의자들이 우글거리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검열과, 그 검열을 남자들의 기대 이상으로 초과 달성하려는 검열이 과잉 내면화된 이 땅의 여자들은 남자가 원하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자기 경험은 말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궤도를 이탈한 여자에게 어떠한 추방과 사회적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나혜석 처럼 살고 싶지만 나혜석처럼 죽고 싶은 여자는 없는 것이다. - 52

가해자가 피해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말 무식해서이고(대게 젠더 문제), 다른 하나는 지나친 방어 심리 때문에 상황을 분간하지 못하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당연히 대화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대화는 기본적으로 적대 행위라는, 대화의 의미를 만만하게 보지 않는 겸손한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 대화를 제안하기 전에 상대가 왜 대화를 꺼리는지, 왜 대화가 불가능한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약자에게 대화는 어려운 일이고, 강자에게는 귀찮은 일이다. 가해자가 대화를 먼저 요구할 때는 자기 필요에 의해서이고, 피해자가 대화를 청할 때는 “나한테 왜 그랬나요?”라고 묻기 위해서이다. (......) 피해자에게 도움까지 주겠다는 가해자의 팽창된 자아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찌질하고 비겁하면서도 동시에 배려와 시혜의 주체가 되려는 이들. 이들은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자기의 잘못을 알고 있는 타인이 지치기를 바란다. 증인 살해. 군 위안부 문제가 그렇고, 세월호가 그렇다. 약자의 투쟁에 시간 끌기로 대처하는 것이다. 끔찍한 정상성이다. - 124

남성이 인생에서 진정한 절망을 경험할 수 있을까? 가장 낮은 계급의 남자보다, 가장 모욕당한 남자보다, 더 타자로 존재하는 여성은 항상 남아 있다. - 151

2018.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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