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존, 디어 폴
폴 오스터.J. M. 쿳시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과거의 최애 작가군에 서서히 자리잡고 있는 폴 오스터.

이 책은 책장에서 꽤 시간을 보낸 책인데, 어느날 문득 책등이 눈에 확 들어와서 골랐다.

과거의 최애 작가가 그렇듯, 이제 기대감은 조금 줄어들어 조금은 심드렁한 기분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 깔려있어 그랬는지, 생각보다 재밌다.

요즘 같은 시대에 메일도 아닌 팩스로 전송되는 편지라는 것도, 두서없이 주고 받는 다양한 작가 주변의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조금은 구식이라고 여겼던 방식의 대화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환기시켜주는 톡톡한 역할을 했다.

제가 보기에는 1970년대 말이나 1980년대 초 예술이 우리의 내면생활에서 점한 주도적인 역할을 내준 결과, 뭔가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치적인 혹은 경제적인, 아니면 심지어 세계사적인 성격을 지닌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 진단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작가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도전에 저항하는 데 전반적으로 실패했으면, 그 실패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가 더 빈약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 2009.10.14. 준 쿳시

이번 한 번 만큼은 당신이 저를 잘못 보셨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대단한 믿음 따위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쓰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갈 딱 그만큼의 믿음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믿음이건 충분할지도 모를 믿음이건, 맹목적인 믿음이건 편협한 믿음이건. 눈앞의 프로젝트에 충분한 시간과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굴러갈>것이고 뚜렷한 실패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믿음이랄지 희망은 딱 거기까지만입니다. 제 작품을 계속해서 지탱할 만큼 많은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군주들의 대리석도, 도금한 기념비도, 이 막강한 시보다 오래 살아남지는 못하리라> 진정한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저는 이런 믿음을 되풀이하지 못합니다. - 2010.3.29. 존 쿳시

더 나은 교사들을 어떻게 구할까요? 변호사, 의사, 투자 은행가들과 같은 봉급을 주면 갑자기 제일 영리한 학생들이 교직을 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쓸모없는 무기 프로젝트의 숫자 X를 없애는 것으로, 군사 예산을 삭감하는 것으로, 쉽사리 이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겠지요.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곳과 닮은 세상에서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불행 속에서 계속 뒹굴고 있습니다. - 2010.4.7. 폴 오스터.

인정하기는 싫지만, 지금이 서구 세계에서 특별히 끔찍한 시기는 아닙니다. 우스꽝스러운 시대, 어쩌면 좌절스러운 시대일지도 모릅니다만 최악의 시대는 절대 아닙니다. 마녀들이 말뚝에 묶여 불타고 있지는 않습니다. 프랑스 가톨릭 신자들과 프로테스탄트들이 서로의 목을 찢고 있지도 않고요, 미국이 내전을 벌이고 있지도 않습니다. 수백만 명의 유럽인들이 진흙으로 가득 찬 참호나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히틀러는 죽었고, 스탈린도 죽었고, 프랑코도 죽었습니다. 20세기 괴물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난쟁이들이 지금 서구권 전체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것같지만, 잔혹한 독재자들을 피해 몸을 움츠리기보다는 난쟁이들을 비웃어 주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 슬픈 곳입니다.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앞으로 2년간 그에 대해 손도 쓰지 못할 것이며, 문제들은 더 악화되기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투가 다시 시작되겠지요. 그러는 동안 저는 여기 브루클린에 앉아서 우리의 공공 생활이 되어버린 거대한 우행의 카니발을 구경하며, 추가 결국은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기만을 바라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 2010.11.12, 폴 오스터


2017.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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