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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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맞이한 생일날 거의 이백년의 타임워프를 한 주인공.

게다가 노예제가 서슬퍼런 시절의 남부 농장으로 내동댕이 쳐진 흑인 여성의 이야기.

온 몸에 새겨진 흉터와 끝내 잃어버린 왼팔같은건 어쩌면 아주 작은 상실.

시대라는 지층이 쌓이는 과정에서 인간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들을 잃어버린다는 당연한 사실의 환기.

스타일이라면 스타일, 옥타비아 버틀러의 이야기는 작가의 정체성과 역사와 뗄수 없는 그 무엇인것 같다.

블러드 차일드도 읽어야 겠다는 자극이 됨.


케빈은 나를 흘긋 보았다. ˝당신이 어떤 기분인지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어. 나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당신 말마따나, 당신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 이미 일어난 일이지. 우리는 역사 속에 있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역사가 아니야. 혹시 뭔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우리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할지도 몰라.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어.˝
˝그럴지도.˝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아버릴 수 없어.˝
케빈은 생각에 잠겨 얼굴을 찌푸렸다. ˝볼 것이 이렇게 없다는 사실이 놀라워. 와일린은 노예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일은 척척 돌아가니 말이지.˝
˝와일린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구나. 아무도 채찍질을 지켜보라고 당신을 부르지는 않으니까 그렇겠지.˝
˝채찍질을 얼마나 많이 하지?˝
˝나는 한 번 봤어. 한 번만으로도 욕 나오게 많아!˝
˝그래, 한 번도 너무 많지. 하지만 내가 상상한 모습은 아니야. 감독관도 없고,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시키지도 않고......˝
나는 케빈의 말을 잘랐다. ˝제대로 된 숙소도 없고, 흙바닥에서 자야하고, 음식은 부족해서 쉴 시간에 텃밭을 가꾸고 세라가 눈감아줄 때 부엌채에서 뭐라도 훔치지 않으면 모조리 몸져누울 지경이지. 권리는 하나도 없고 언제든, 아무 이유도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가족에게서 떨어져 팔려나갈 수 있어. 케빈, 사람들을 때려야만 잔인한 건 아니야.˝
˝잠깐만. 이곳엣 일어나는 잘못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니야. 난 그저......˝
˝아니, 그러고 있어. 그럴 의도는 없겠지만 그러고 있다고.˝ - 188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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