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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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뭐라고에서의 고약한 할머니 사노 요코는

세트처럼 나온 이 책에는 거의 그 모습이 드러나질 않았다.

죽음을 얘기하다보니 그리된 걸까.

유쾌한 냉소가 한뭉터기 도려내진 고약한 할머니 사노 요코만 남아 있다.

그래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긴 하는데..

사는게 뭐라고를 재밌게 읽었다고 이 책도 재밌겠지 싶은 사람은 의외의 면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정말 기운차게 죽고 싶었던 사노씨도 고통과 막연한 마지막 순간에 대한 두려움을 채 지우지 못한 것 같다.

하긴.. 내가 뭐라고.

당사자도 아니면서 이런 말은 우습기도 하지만......

2015. Dec.

사람은 죽을 때까지는 살아있다. - 말머리 중

단지 숨을 쉬기만 하면 좋은 걸까요. 인생의 질이라는 문제도 있잖아요. 무엇보다도 목숨이 소중하다는 건 이상 해요. - p. 91

그 날 저녁 여덟 시 정각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가도 돼요?"라며 그녀가 왔다. 매일 밤 이렇게 그녀가 놀러 와준다면 좋을 텐데. 나는 내 방에서 손님을 맞이하는게 좋았다.
"잠깐 괜찮아요?"
그녀는 한 번 더 묻고는 침대 곁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가망이 없대요."
가망이 없다니 무슨 말인가.
"4개월 남았대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저를 위해서 선생님이 네 번이나 좌선해주셨는데, 선생님이 구원받을 거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역시 부처님이라도 구원 할 수 없는게 있나봐요. 운명이라는 게 있나 봐요."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 앞 50센티미터 거리에 있었다.
그녀는 우리 집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요한 표정이었다.
그때 나는 머리 뒤로 무언가 쓱 들어온 듯 깨달음을 얻었다.
"아, 알겠다. 당신은 이미 구원받았던 거예요. 부처님이 구원한 건 몸이 아니었어요. 영혼이 구원받았던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괴롭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평소랑 똑같이 지낼수 있었던 거예요."
하느님도 부처님도 믿지 않는 내가 말했다.
그녀는 내 침대 위의 전등 쪽을 바라보고 있었따. 눈동자가 동그랗고 새까맸다.
"아, 그렇군요."
그녀가 말했다.
그때 검은 눈동자가 스윽 하고 투명한 갈색으로 변했다. 한 순간 그녀가 흰색인지 은색인지 모를 색으로 빛났다. 나는 질겁했다.
투명한 갈색 눈동자에 흘러넘칠 듯 물이 가득 고였다.
이내 빛은 사라졌다. 눈동자는 점점 까맣게 변했다.
"그런 거였군요."
다시 한 번 그녀가 말했다.
"아아, 방금 정말로기뻤어요. 그렇죠, 그런 거였네요. 고마워요. 그 말을 안 해주셨다면 전 모를 뻔 했어요."
빛의 여운이 남아 있는 달걀 모양의 뺨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빛은 그녀에게만 쏟아졌다.
그때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나에게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인지 부처님인지의 법열을 맛본 사람을 목격했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p.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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