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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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강렬한 커튼콜이란.

바닥에 곤두박질 직전의 아슬아슬함이 문장의 마지막까지 전해져온다.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된 천재 배우의 추락.

단순한 재능의 소진이 아닌, 이제껏 자신을 지탱해오던 단단한 지지와 자기 존재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3장으로 구성된(연극의 3막과 같은 느낌:)) 흔적도 없이, 변신, 마지막 연기가 마치 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는 느낌을 준다.

볼륨은 150 페이지로 얼마 되지 않지만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듯 몰입해서 끝까지 정신없이 읽게 된다.

거장은 역시 랄까. 일흔 여섯해의 공력이랄까.

뭐 그런 것이 느껴지는 짧고 강렬한 이야기다.

2015. Jun.

액슬러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대신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몰락은 엄청났다. 최악은 그가 자신의 연기를 바라보듯 자신의 몰락을 바라본 것이었다. 고통이 정말 극심 했는데도 그는 그것이 진짜인지 의심했고, 그때문에 상황은 한층 더 악화 되었다. 그는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다. 밤에도 두세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고, 거의 먹지도 않았으며, 매일 다락방에 있는 총으로 자살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게 일종의 연기, 아주 엉터리인 연기처럼 보였다. 무너져내리는 인물을 연기할 때 거기엔 체계와 질서가 있다. 그러나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지켜보는 건, 자신의 종말을 연기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일이다. - p.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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