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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의 연습
나야 마리 아이트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평점 :
학대의 연대기.
한숨이 나지만 전 지구적 여성에 대한 폭력을 또 한 번 느낀다.
정도의 차만 있지 하나같이 동일한 흐름으로 알게 되고 알 수 있는.
생략이 많은 듯한 시적 묘사, 희미하지만 확실히 보이는 희망의 기운이
독서 행위 자체를 독려하는 요인이다.
그리고 그린란드 작가는 아마도 처음 본 게 아닌가 싶은데,
뭐랄까 묘하게 눈, 차가운 바람, 그러나 강렬한 햇살의 냄새가 난달까.
- 나는 겁을 내기 때문에 어두움을 연습한다. 어두운 곳에 머무르는 연습을 하지만 또한 어두움 밖으로 나가는 연습도 한다. PTSD 씨와 하는 세션의 목적은 내가 어두움 밖으로 발을 디디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어두운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어둡다고 무서워하지 마."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말했다. "빛만 없을 뿐 똑같은 세상이야." - 22
- 나는 정말로 정상인가? 나도 바람처럼 강한 것 아닐까? 그렇지. 내가 그렇게 느끼지 못할지라도 나는 강하다. 로세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매주 버스를 타고 PTSD 씨를 찾아가지 않나. 나는 언제나처럼 나 자신의 치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게 무리였기 때문에 나는 병이 들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로세의 집을 떠나 우리 집을 향해 어두운 거리를 걷는다. 이게 현실이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다. - 41
- 벚나무는 움이 텄나 보다. 몇 주일째 꽃이 핀다. 나는 뜬금없이 노력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노력을 한다는 단어. 나는 노력하지 않겠다. 나 자신을 쥐어짜 변화시키지는, 나 자신을 바꾸지는, 지금과는 다른 무엇으로 바꾸지는 않겠다. 다른 사람이 나를 훌륭하다고 생각하도록 나 자신을 쥐어짜 변화시키지는 않겠다. 나는 노력하지 않고, 훌륭해지지 않겠다. 혹시 할 수 있다면 나는 꼼꼼해지고 싶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싶다. 나는 내 감정이건 남의 감정이건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사의 지배도 안 받고 싶다. 나는 식물원을 돌아보고 꽃이 피는 나무들에 감탄한다. 그리고 아니, 이제 되었으니 그만하라고 생각한다. - 58
- 몸은 평화를 누리고 싶어 한다. 이제야 평화를. 성병도 어설픈 관계도 없고, 내가 만족시키거나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대상도 없다. 임신의 두려움도 임신도 없고, 출산도 없다. 외부로부터 몸을 볼 일도 더 이상 없고, 이제 내 몸에는 내가 산다. 몸이 할 수 있고 이 세상에 살아 있고자 하는 동안. 몸에 대한 요구는 남에게서 건 나에게서 건 이제 끝이다. 마침내 자유, 몸은 자유다. 몸은 나이를 먹고, 몸은 살아난다. - 60
- 아, 내 안에 우리 엄마가 있구나. 깊은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지 말자. 너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는 말아.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한다.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야. 지난 일을 바꿀 수는 없지. 그렇게 나는 억지로 나 자신에게 큰 소리로 말하고, 중얼거리고 되풀이하면서 욕실 거울의 나 자신을 바라본다. 내가 하는 말을 나도 믿지 않는다.
어쩌면 아무 책임도 없이 - 113
- 나는 9월이 좋아. 어머니가 말한다.
나는 묻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게 많지만 하지 않는다. 우리는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마주 앉아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손을 탁자 위로 내밀어 내 손 위에 얹는다.
너는 좋은 애다.
나는 울음이 터진다.
울 거 없어. 엄마가 말하고 다시 손을 치운다. 칭찬인데. - 126
- PTSD 씨와 작별. 내가 알던 것보다 나에게 더 많이 도움이 된 사람이다. 나는 연약하지만 지구에 사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약하지는 않다. 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만큼 강하다. 나는 약하면서도 강하고, 그래서 괜찮다. - 217
2025. aug.
#어두움의연습 #나야마리아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