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소설 전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
이상 지음, 권영민 엮음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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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고 있던 소설 두어 편은 아무래도 잘 읽혔다.

처음 접한 소설들은.... 문장과 문단을 읽고 지나가면 그 사이의 구조들이 모조리 해체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달까.

전반적으로 하루하루 살이의 서사들이고, 결핍, 빈곤, 체념, 무력감이 느껴지는 관조적인 시대의 시선.
논리라는 지점과는 거리가 있는 듯 무질서하다는 감각이 지배적이었다.
아무래도 근대 문학에는 취약한 독자의 어려움이 있다고나 할지.
파편화 되어 있는 심리의 반영일지도.
당시의 모던보이라는 번드르르한 계층의 허점 같기도.

시대상의 관찰이 유효하긴 하나, 그 지점도 한 성별 한 계층의 시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이라는 작가의 아우라 출중함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묘한 기분.

- 그저한없이게으른 - 사람노릇을하는체대체어디얼마나기껏게으를수있나좀해보자. - 게으르자.-그저한없이게으르지. - 시끄러워도그저모른체하고게으르기만하면다된다. 살고게으르고죽고 - 가로대사는것이라면떡먹기다. 오후네시. 다른시간은다어디갔나. 대수냐. - 60, 지주회시

- 18가구에 각기 별러 든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가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지붕 밑 볕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 아니 그 꽃에 매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 87, 날개

-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 91, 날개

- 나는 조소도 고소도 홍소도 아닌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는 방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 95, 날개

- 나는 또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 114, 날개

-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ㅓ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 115, 날개

-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운운. - 127, 봉별기

- '사람이 유희적으로 살 수가 있담?'
결국 나는 때때로 허무 두 자를 입 밖에 헤뜨리며 거리를 왕래하는 한 개 조그마한 경멸할 니힐리스트였던 것일세. 생을 찾다가, 생을 부정했다가 드디어 처음으로 귀의하여야만 할 나의 과정은 - 나는 허무에 귀의하기 전에 벌써 생을 부정하였어야 될 터인데- 어느 때에 내가 나의 생을 부정했던가...... (...)
그동안에 나는 생을 부정해야만 할 아무런 이유도 가지지 않았던가? 생을 부정할 아무 이유도 없이 앙감질로 허탄히 허무를 질질 흘려 왔다는 그 희롱적 나의 과거가 부끄럽고 꾸지람하고 싶은 것일세. 회한을 느끼는 것일세.
'생을 부정할 아무 이유도 없다. 허무를 운운할 아무 이유도 없다. 힘차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
재생한 뒤의 나는 나의 몸과 마음에 채찍질하여 온 것일세. 누구는 말하였지.
"신에게 대한 최후의 복수는 내 몸을 사바로부터 사라뜨리는 데 있다."고. 그러나 나는 '신에게 대한 최후의 복수는 부정되려는 생을 줄기차게 살아가는 데 있다.' 이렇게...... - 270, 십이월 십이 일

- 너는 또 어느 암로를 한번 걸어 보려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일찍이 이곳을 떠나려는가. 그렇다. 그 모닥불이 다 꺼지고 그리고 맹렬한 추위가 너를 엄습할 때에는 너는 아마 일찌감치 행복의 세계를 향하여 떠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 395, 십이월 십이 일

2025.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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