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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시그리드 누네즈. 꾸준히 출간되는 족족 읽고 있다.
이번 작품은 팬데믹 시절의 이야기다. 단절이 디폴트인 세계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
많은 수의 문학의 거장들을 인용하고 사유하는데 지적이 욕구를 채우는데 아주 적절한 텍스트라는 점, 그것에 팬데믹의 서사가 덧붙었다는 점, 삶을 갈구하는 소극적이고 정적인 모습들을 찾을 수 있다는 점 등이 흥미로운 요소.
재미...라는 지점은 조금 미뤄두고 읽으면 좋다.
- 모든 것들의 이면에는......
우리가 슬픔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속성이 존재한다. - 제임스 손더스
- 이제 나는 중요한 것이 책에 서술된 허구의 사건들보다는 독성 중의 체험, 책 속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정 상태,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들이라는 진실을 안다. - 9
- 무언가 빠져 있어. 무언가를 잃어버렸어. 나는 이런 생각이 내가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한동안 나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건 그해 봄의 많은 불확실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아는 작가 중에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이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지 알고 싶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도무지 사라지려 하질 않는다. - 19
-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결국 남는 건 슬픔과 무력감, 그 일을 떨쳐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잠시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어. 장례식이 도피처가 되다니, 참 심각한 상황이지. - 63
-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해낼 자신이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 104
- 나는 인간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자연과 생명에 대한 본능적 사랑)를 믿는다.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친밀감, 그들과 가까이하고 연결되고 싶은 갈망,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우리 DNA에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세상을 점점 더 흉물스럽게 만들고 종내는 완전히 망쳐 버리려는 인간의 욕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17
- 내 인생 이야기는 네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좋은 시간들, 나쁜 시간들. - 185
- 나는 사람들이 악보다 선을 더 많이 가졌다고 믿는다. 오바마가 한 이 말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한 말을 되풀이한 것일 뿐이다. 약간 다른 버전으로는, 나는 세상에 악한 사람들보다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반드시 선이 승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ㅏ. 우리가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 할 점은, 특정 상황에서는 악이 선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만들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특정 목적 - 이를테면 전쟁에서의 승리 - 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앤 디디온은, 시위가 인간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플래너리 오코너에 따르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따라서 나는 희망을 가져야만 한다.
말이 되나? - 219
- 솔직히 말하면, 난 도무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대학원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아요. 돈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내가 특권층 백인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일 이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나에게 주어진 유망한 기회는 역사적으로 소외된 집단에 속한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두는 것이 나의 도덕적 의무가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시기에 누가 장기적인 계획이란 걸 세울 수 있겠어요? 지구 자체의 운명이 이렇게 불확실한데 어떻게 미래를 생각할 수 있냐고요.- 272
2025. apr.
#그해봄의불확실성 #시그리드누네즈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