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글씨로 쓰는 것 민음의 시 232
김준현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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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이고 구도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관조적.

좀 흑백 같달까, 시인의 연령대에 비해 고풍스러운 느낌도.

- 나는 먼저 머리를 내밀었지,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나올 때의 마음을 나누자
머리칼을 넘기는 바람과 빛이 되었지 - 둘의 언어 중

- 말이 씨가 되면
어디에 묻어야 하는지
사람을 묻는 일은 여기서도
현실의 일이에요 - 현실의 일 중

< 먼 산을 바라보았다 >

내가 심지 않은 식물이 자랐다

봉숭아라고 생각하자 봉숭아가 된 식물이었다

모든 건 발목 아래부터 변심했고
나는 양말을 신었다 신발을 신었다 신발을 벗었다 양말을 벗고
흙 묻은 발을 씻었다

가고 싶은 곳과 가야 하는 곳이 다 다르고

뿌리는 긴장된 상태로
아무것도 쥐지 않기 위해
꽉 쥔 주먹처럼

죽기 전까지 펴지 않은 손에는
남은 손톱의 흔적이
절취선처럼 남아 있다

죽었다고 생각하자 죽은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이
어제 먹은 저녁의 흔적이 잇몸에
끼여 있고 저녁을 다 먹고도
저녁은 죽은 사람의 이와 이의 간격에 남아 있다

묘지마다 누군가가 들어 있고
누군가가 자랐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아는
누군가처럼 보일 때까지
자랄 때까지

다 피우지 않고 버린 담배처럼
나는 가위에 눌렸다
(전문)

-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는 말과 좋은 곳이 없었던 몸 사이에서
나는 적당히 존재했다 - 적당한 존재 중

- 어둠을 일곱 번 접으면 밤이 되고 어둠을 열 번 접으면 불법이니
어둠을 있는 대로 구기면 내가 될 것이다
뜨거워진 나방들이 아침마다 몸을 내려놓고 태양 속으로 숨는 것처럼
죽을 힘을 다해 죽는 것과
온 힘을 다해 사는 것이
다르지 않은 것처럼 몸을 뒤척이자 - 연옥의 시 중

2024. nov.

#흰글씨로쓰는것 #김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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