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1914년생 작가. 보다 앞선 시기의 작가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밀란 쿤데라가 연상되는 작가다.

웨이터라는 직업으로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14세 소년의 성장사고, 그 정체성이 부딪힐만한 세상사, 인간사가 펼쳐진다.
다만 그 마주치는 현재의 윤리관으론 좀 고루하고 부적절하지만, 지난 시절의 낭만들이라고 포장하고 바라보자라는 합의를 종용하는 듯도 하다. 성 인식도 형편없고,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등의 저어하는 지점들이 있긴 하지만..... 화려하고 적당히 속되고, 적당히 귀족적인 풍토가 남아있는 마지막 시절의 단편들이라고 생각하면 어찌저찌 참아진달까.

체코 청년의 친독 행적이라는 건 우리로 치면 친일 같은 걸까? 이야기가 후반부에 커브를 튼다는 생각을 했다.

프라하 호텔에 도착하니 사장이 내 왼쪽 귀를 잡아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넌 이곳 견습 웨이터다. 그러니 명심해라! 넌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복창한다!" 난 이곳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고 따라했다. 이번엔 사장이 내 오른쪽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하지만 또 명심해라! 넌 모든 걸 봐야 하며 모든 걸 들어야 한다! 복창한다!" 난 얼떨떨한 채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들을 거란 말을 반복했다. 이렇게 나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 7

바로 그다음 날부터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돈이 내게 라이스키로 가는 문만이 아니라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문도 열어주었다. 입구에 있던 라이스키 부인이 이백 코루나를 공중에 집어던지는 내 손을 향해 입맞춤이라도 할 듯이 달려들던 모습이 생각났다. 처음엔 그녀가 몇 시인지 알고 싶어서 차고 있지도 않은 내 손목시계를 보려고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입맞춤은 황금 프라하 견습 웨이터인 나를 향한 게 아니라, 바로 두 장의 백 코루나 지폐를 향한 것이었다. - 21

난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며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지, 몇 푼 안 되는 동전 몇 개를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곧바로 알게 되었다. - 23

여기 호텔 티호타에서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었다. 노동은 고귀하다, 라는 주장이 다름 아닌 우리 호텔에서 예쁜 아가씨들을 무릎에 앉히고 밤새 마시고 먹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바로 어린아이들처럼 행복할 수 있는 부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전에 나는 부자들이란 형편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소박한 오두막집과 작은 방들 그리고 시큼한 양배추와 감자, 이런 것이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안을 주는 것이지 돈이 많은 것은 저주받은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가만보니 가난한 오두막집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이야기도 다름 아닌 우리 호텔 손님 같은 부자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 그때 옆에 앉은 다른 사람은 장작을 패고 있는 우리 호텔 포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저런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지' 하는 몽상에 잠겨 노동을 하고 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자들은 노동을 찬양하긴 했지만 그들 스스로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노동을 해야한다면 슬퍼하며 불행해할 것이다. - 102

독일 명예-혈통 보호청이 내가 독일 혈통의 아리안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도장을 힘 있게 찍어 결혼허가서를 건네주었다. 반면에 체코 애국자들은 같은 도장을 그렇게 꾹 눌러 사형에 처해졌다. - 206

기차역에서 플랫폼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스스로 낯선 사람인 것처럼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직업과 관심과 병을 가진 독일인들을 쳐다보았을 때처럼 -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셨고, 또한 영국 왕을 모셨던 지배인 스크르지바네크 씨에게서 교육받았던 나는 그들의 차이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예리한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니...... 체코 애국자들이 처형당하고 있는 동안 나치 의사들에게 독일 여자 체육 교사와 성교할 능력이 있는지 검사를 받고 있었으며, 독일인들이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했을 때 결혼식을 올리고 군가 <대열을 바싹 좁혀라!>를 부르고 있었고, 고향에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독일 호텔에서 독일 군인들과 에스에스 대원들의 시중을 들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쟁이 끝나면 프라하로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아니 나 스스로 첫 번째 가로등에서 목을 매다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고, 나 자신에게 십 년형 이상을 언도했다. - 224

에스에스 대원들이 나를 그곳에 밀어 처넣으며 혐오스럽다는 듯이 "이 더러운 볼셰비키 종자!" 하고 소리쳤는데, 그 호칭이 내 귀에는 달콤한 음악처럼, 구애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것은 내가 프라하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입장권이자 차표가 될 것이며, 독일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게르만-아리안 여자와 성교할 능력이 있는지 성기 검사를 하며 헤프의 나치의사 앞에 서 있었던 내 인생의 얼룩을 없애줄 유일한 약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시계를 봤다는 이유로 얼굴이 다뭉그러진 것이 내게 정당성을 부여해 어느 날 조사를 받고 반나치 전사가 되어 다시 프라하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239

그런데도 나는 호텔 사장들에게서 굴욕감을 느꼈다. 여전히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들과 같은 신분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들을 능가하고 싶었는데...... - 265

종종 나는 도로를 정비하는 일을 내 인생의 길을 정비하는 것과 비교해보았다. 인생을 돌아보니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인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의 인생 전체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한 편의 소설이며 내 인생이란 책의 열쇠는 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유일한 증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 328

술집에 앉아서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본질이 사실은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때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음, 죽음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은 영원과 불멸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인 것이다. 이때 자신의 인생 여정의 무의미를 맛보며 어차피 지소되지 못할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 바로 그것이 벌써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의 시작인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맛보고 경험하는 일은 인간을 비통하게 만들지만 또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주기도 한다. - 331

2025. feb.

#영국왕을모셨지 #보후밀흐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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