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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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감 넘치는 하드보일드, 그 짜릿한 느낌의 초기 정유정이 조금 느껴졌다.

제목이 너무 평범해서 아쉬운 면도 있다.
재밌게 읽었지만 돌아서면 희미해지는 평이한 제목이랄까.
온갖 책의 제목 같은 느낌.

영원한 삶이 영위된다면 과연 인간은 행복할 확률이 높아지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홀로 남아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추억을 소환하면서 살거나, 프로그래밍된 상황 속에서 게임하듯 살아가는 삶.
장담할 수는 없지만, 허무와 공허가 무한대로 확장되는 삶 아닐까.

최근작들에 실망을 좀 해서 이젠 그 정유정의 작품은 없는 걸까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은 그 기대감을 조금 더 충족시켜 준다.

-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승주를 조금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를 집 안에 가둔 건 승주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이나 슬픔이 아니었다. 삶의 불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도 아니었다. 불공평한 운명에 대한 분노 역시 아니었다. 그런 건 살고 싶어 할 때에나 생기는 감정이었다. 살려는 마음이 사라지면 평화가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화, 아무 생각도 없는 평화, 아무 감정도 일지 않는 평화. 새로운 평화주의 자아는 내게 밖으로 나가라는 훈계를 하지 않았다. 집 안에 갇힌 나는 한없이 평화로웠다. - 45

- "알고 받아들이기와 모르고 지나치기는 다르지 않겠어요?"
베토벤은 코웃음으로 내 말을 받았다.
"넌 네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싶냐? 나는 모르고 싶다."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나도 모르고 싶을 것 같았다. 다 안다면 과연 열렬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열렬하게 산다는 건 내가 인생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 273

- "네 말이 다 사실이라 치자. 그래도 난 이해를 못하겠네. 과학이 왜 인간한테 그런 짓을 해?"
"과학은 후진이 불가능해. 그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 도착한 것 뿐이야." - 320

- "저쪽 세상에서 살 때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고 생각했어요. 사는 게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살다 보면 나아질 거라 믿었고. 결국 그런 믿음은 허상이었어요. 내가 왜 사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 거죠."
"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삶을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요."
내가 되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롤라에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도망친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성급하게. 이곳에 와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이해할 만한 실마리라도 찾지 않았을까." - 389

-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삶의 가치라 여기는 것에 대한 추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나는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종종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 자체를 조롱하거나, 가치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흐름이 읽히기도 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요인도 분명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나,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개별적 존재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는 내 삶의 실행자인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쪼록 기억해주시기를. 우리의 유전자에 태초의 야성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 삶의 소중한 무기라는 것을. - 작가의 말 중

2024. sep.

#영원한천국 #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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