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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사소한(사실은 전혀 사소하지 않은 중요한 문제) 것을 지나치지 않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
타인의 불행을 그저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해버리면 우리의 삶은 단순하고 가뿐할지도 모르지만, 그 불행과 불운을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있지는 않은지 한번 더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선의의 노력을 굳이 위선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갑갑한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펄롱은 조용히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며 그저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그들이 불운하지 않은 인생이길 기대하는 소시민이지만 우연히 접한 한 수녀원의 적절치 못한 관행과 그 안의 젊은 여성들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아내인 아일린도 심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펄롱의 그런 유약한( 정 많은) 모습을 철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수녀원 시설의 강제 노역에 관련된 사실을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다.
- "화요일 날 시노트가 술에 취해서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걸 봤어."
"불쌍한 사람. 뭐가 그렇게 괴로울까." 펄롱이 말했다.
"술 때문에 괴로운 거야. 눈곱만큼이라도 자기 애들 생각을 한다면 그러고 돌아다니진 않겠지. 딱 끊고 정신 차렸겠지."
"그러고 싶어도 못 그럴 수도 있어."
"그렇겠지." 아일린이 손을 뻗고 한숨을 쉬며 불을 껐다.
"어디든 운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까." - 21
- 그날 밤 침대에 누웠을 때 펄롱은 수녀원에서 본 것을 아일린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다가 어쩌다 말을 하게 됐는데, 아일린은 몸을 일으켜 꼿꼿하게 앉더니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거기 있는 여자애들도 누구나 그렇듯 몸을 덥히려면 땔감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리고 수녀들은 줄 돈을 늘 제 때 주지 않냐, 항상 외상을 달라고 하고 돈을 갚으라고 쪼기 전에는 절대 안 주고 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 않냐고 했다.
긴 연설이었다.
"뭐 아는 거 있어?" 펄롱이 물었다.
"아니 없어, 내가 한 얘기 말고는." 아일린이 대답했다.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우리 딸들? 이 얘기가 우리 딸들하고 무슨 상관이야?" 펄롱이 물었다.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일린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아일린은 초조한 듯 잠옷의 자개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 54
- 일요일이 너무나 공허하고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왜 펄롱은 다른 남자들처럼 미사 마치고 맥주 한두 잔 마시면서 쉬고 즐기고 저녁 배부르게 먹고 불가에서 신문을 보다가 잠들 수 없는걸까? - 93
- "이제 거의 다 왔어." 펄롱이 기운을 돋웠다. "조금만 가면 집이야."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119
2024. apr.
#이처럼사소한것들 #클레어키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