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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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너무 좋아하는 단편집이다.

오랜만의 앤드루 포터.

작가의 나이가 든 만큼 그려내는 인물들도 자연스레 나이를 먹은 느낌의 단편들.

그래서인지 전작에 대한 기대로 읽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재미가 덜하다고 느꼈는데, 독서 진도가 나갈수록 캐릭터들에 녹아들게 되는 자연스러운 에이징의 단계를 밟는 기분이 들었다.
최은영 소설가의 추천사 ' 자기 발견의 기쁨과 고통'이라는 말이 아... 그런 건가 싶달까.

젊음과 함께 이제는 사라져버린 사소한 기억들, 전과 같지 않은 신체와 인간관계들...

중년이 겪을 수 있는 상실에 대해 등장인물들과 함께 되짚어 보다 보면 삶의 우울이 개인적인 문제지만 보편성이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그려낸다.

전작에서 희미하게나마 그려지던 희망적인 부분이 조금 말라 비틀어진채 표현된 느낌.

-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익숙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지만 -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심야의 윤리적 딜레마, 그것도 우리 중 하나가 아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 나는 그들에게 호응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 정당화가 되느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두 인간과 그들 각각의 가족에게 일어난 아주 슬픈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 말고는 그다지 할 얘기가 없다. - 오스틴, 14

-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 - 담배, 26

-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 첼로, 92

- 모두가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얼마나 추운지 보여주려고 입김을 불고 있고, 우리의 숨결은 안개처럼 공기 중에 서린 채 멈춰 있다. 그 사진의 재미있는 점은 맥두걸 스트리트의 그 오래된 아파트가 겨울에 얼마나 추웠는지는 기억이 나지만 - 난방장치가 늘 고장났다 - 그날이 언제였는지, 그 사진을 누가 찍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진다ㅏ.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을지,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버렸을지. - 라인벡, 126

2024. feb.

#사라진것들 #앤드루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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