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 스펙트럼
신시아 오직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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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이라는 것이 남지 않은 사람들.
로사가 와 있는 곳에는 어떠한 연민도 남지 않았다.
마그다의 숄에 사로잡힌 채 남은 인생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로사.
그녀에게 고모의 삶을 살라고 다그치는 스텔라.

둘의 관계성과 입장이 충분히 이해돼서 그 상실감에 공감할 수 있다.

평범한 전차가 평범한 선로를 따라 바르샤바의 한 구역을 관통해 지나는데도, 그들이 몇 번씩이나 목격하던 유대인 구역의 비참함을 모두가 외면했듯, 위험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온 이들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부재와 상실을 핀트 나간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반복해서 일어난다.
그것이 세상이 무탈한 척 돌아가는 이치일까 생각한다.


- 내가 스스로를 가둔 이곳은 지옥이야. 한때 나는 최악은 그야말로 최악이니, 그 후로는 최악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 알겠구나. 최악이 지나갔어도 더 많은 최악이 있다는 것을. - 25

- "내가 거들지요." 노인이 말했다. 그는 신문을 내려놓고 엉킨 빨래 푸는 걸 도왔다. "생각해 보세요. 바르샤바에서 온 두 사람이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서 만나다니. 1910년에 나는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는 꿈도 못 꾸었다오."
"저의 바르샤바는 아저씨의 바르샤바와 달라요." 로사가 말했다. - 32

- 그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두려운 거요? 여기는 나치도 없고, 하다못해 큐클럭스클랜 단원들도 없어요. 대체 댁은 어떤 사람이기에 아직도 두려워하는 거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로사가 말을 받았다. "아저씨가 보고 계시잖아요. 39년 전에는 다른 사람이었지만요." - 33

- "바래다주리다."
"아니, 아니에요. 사람은 가끔 혼자 있을 필요가 있죠."
"너무 많이 혼자 있다는 건, 너무 생각이 많다는 거요."퍼스키가 말했다.
"삶이 없는 사람은," 로사가 대답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데서 사는 거죠. 가진 게 생각뿐이라면, 생각 속에서 사는 거고요." 로사가 대꾸했다.
"댁의 삶이 없다고?"
"도둑들이 빼앗아갔어요." - 45

- 질병, 질병이란다! 인도주의 맥락, 이건 무슨 뜻일까?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흥분. 그들의 입에 침이 고이고 있다. 미국에서 염증으로 피 흘리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니, 무슨 쓰레기 같은 소리인가. 그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단어 또한 생각해 보라. 생존자. 무언가 참신하다. 그들이 인간을 말할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과거엔 난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존재는 없다. 더 이상 난민은 없고 생존자만 있다. 번호와 다름없는 이름 - 평범한 무리와는 따로 셈해지는 존재. 팔에 찍힌 파란 숫자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들은 어쨌거나 당신을 가리켜 여자라고 하지 않는다. 생존자라 한다. 심지어 당신의 뼈가 흙먼지 속으로 녹아들 때도 여전히, 그들은 인간을 잊고 있을 것이다. 생존자와 생존자 그리고 생존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생존자. 누가 그런 단어를 지어냈을까, 고통의 목구멍에 붙은 기생충 같은 단어를! - 59

- 내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가게를 열어 운영했을 때, 나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어 - 우리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까지 하고 싶었지. 그런데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더구나. 그것이 놀랍기만 했어, 불과 얼마 전에 벌어졌던 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이 기억하지 못한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었어. 그러니까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들을 몰랐던 거야. - 104



2024. apr.

#숄 #신시아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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