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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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장르를 읽을 때마다 밀려드는 아득한 난감함이 있다.
이야기에 이입해 나라면 그 지난하고 고단한 여정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높은 확률로 그냥 지레 포기하고 칩거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
굳이 고난과 비이성과 상황에 의해 일깨워지는 야만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이 이야기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다행히도 이야기 속 세계는 끝간데까지 망가지진 않은 이성이 조금은 남아 있는 그런 세상이라 너무 괴롭지 않게 읽었다.

빨간 눈이 내리는 세상을 떠올리니 얼마 전 읽은 매니악에서의 핵실험 장면이 떠올랐고, 그 때 알게 된 실험지역 근처에 캠핑을 하던 사람들의 경험담이 떠오른다.
눈이 내린다고 생각해 신나하며 핵폭발 재를 만지고 먹어보고 했다던...
끔찍하다.

죽은 이 탄생보다 흔한 일이 되고 있다는 문장에 정작 다가오는 아포칼립스는 엄청난 재난, 위기가 아니라 더 이상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게 되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즈음 차이를 발견해 구별하고 차별한다는 건 성가신 일이 되어 있었다. 그 해골은 죽은 후에도 남는 것이니, 사람이란 결국 해골로 태어나 해골이랑 살다 해골을 간직하며 죽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삶이라는 얇고 불안한 표피를 덧입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 11

- 그게 온다고 한다.
그 말이 정말 현실로 닥쳐올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나는 간곡히 그 문장을 의심하고 싶어졌다. 아니,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어떤 악마의 얼굴을 하고 찾아올까. 전쟁처럼 올까, 전염병처럼 올까. 혹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로 벌써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앉아 있었던 건 아닐까. - 23

- 혹시 그게 오려는 것일까. 그게 지금인 걸까. 저건 경고음일까, 예비음일까. 바라건대 지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못다 한 말과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 많이 남아서 우리는 떠나지 않았다. - 60

- 인생이 한 권의 소설이라면 우리의 페이지는 작가의 말을 읽는 중일까, 아니면 쓰는 중일까. 작가의 말이 없는 소설은 작가의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독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가짜로 지어낸 소설의 첫 페이지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해 낸 작가의 마지막 페이지, 작가의 말이라는 진짜 속생각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어 가는 거라고. 소설과 작가의 한 시절과 창작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끝 페이지. 지금이 마지막이라면 우리의 페이지는 가장 솔직해야 하는 순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었다. - 151

2024. mar.

#날짜없음 #장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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