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박 페이지터너스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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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횡령 자금을 빌려주기 위해 가볍게 생각하고 뛰어든 도박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자만한 자의 심리가 한밤의 도박판에서 어떻게 흘러가고, 비극의 최후를 맞이하는지 보여주는 소극.

몇 번이나 도박판을 벗어날 기회가 있었지만, 하찮은 호승심과 욕심이 인간을 어떤 모습으로 잠식해가는지 잘 보여준다.

애초에 반성과 성찰이 없는 가볍고 속물적인 인물인 소위는 결국 망하겠다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돈을 모두 잃고 전날 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고나서도 수치심을 못 느끼지만, 이제는 돈 많은 숙모가 된 레오폴디네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금전적 도움을 바라고 그것이 결국 몸을 파는 일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굴욕과 수치심을 느끼는 지점이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돌아보면 과거에 자신의 행동을 그대로 돌려받았을 뿐인데.

세상살이에 자만하는 어리석은 젊은 남자의 전형을 주인공 삼아 몰락을 그린 이야기.


- 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돈을 펑펑 쓰는 희열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빌리, 조심해라. 조심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노름에서 딴 돈을 전부 베팅하지 않고 절반 정도만 걸기로 굳게 결심했다. - 45

- 이겼다. 이런 멍청이! 잃은 돈을 전부 되찾을 기회였는데! 빌리는 대범하게 베팅하지 못한 것을 몸서리치게 후회했다.
"다시 이거 전부 올려!" 이번에도 그가 졌다.
"다시 한번 이거 다 걸어!"
빌리가 큰 금액을 계속 베팅하자, 영사가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카스다 소위,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야?" 군의관이 큰 소리로 외쳤다.
빌리는 크게 웃었지만,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코냑을 마신 탓에 판단력이 흐려졌나? 맞다. 그는 당연히 실수했다. 1천 굴덴이나 2천 굴덴의 큰돈을 단번에 베팅하는 건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영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는......"
그런데 영사가 빌리의 말을 가로채며 이렇게 말했다.
"얼마를 베팅했는지 몰랐다면 베팅 취소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빌리가 이렇게 대꾸했다. " 받아들인다고요? 한번 베팅했으면 그만이지 물릴 수는 없지요."
이렇게 말한 사람이 정말 나였나? 내 목소리가 맞나? - 52

- "그만 중단하지 그래." 빔머 중위가 빌리에게 다시 경고했으며, 이젠 거의 명령하는 말투였다.
군의관도 끼어들었다. "본전은 찾은 듯하군."
군의관의 말에 빌리는 화가 났다. 본전은 찾았다니! 이걸 본전이라고 하다니! 15분 전만 해도 나는 부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알거지가 됐어. 이런 걸 두고 본전이라고! - 56

- "너무 적어? 얼마를 더 줘야 하는 건데? 1천 굴덴이나 줬잖아! 옛날에 너는 나에게 고작 10굴덴 줬어. 기억 안 나니?"
빌리가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레오폴디네는 여전히 차분한 모습으로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갑자기 1천 굴덴 지폐를 집어 들어 와락 구긴 빌리는 구겨진 지폐를 그녀의 발밑에다 던져버리겠다는 듯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자 방문 손잡이를 놓고 빌리에게 다가온 레오폴디네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지난 일을 두고 당신을 탓하진 않겠어. 그 당시에 난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지 못했어. 10굴덴......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 오히려 많다고 생각했지."
빌리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더ㅓ 정확하게 말하자면, 10굴덴 받은 것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레오폴디네를 바라보던 빌리가 눈길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는 그제야 감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걸 몰랐네." 그의 입에서 힘없이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레오폴디네가 말했다. "이제야 알았구나.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건데." - 136

2024. mar.

#한밤의도박 #아르투어슈니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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