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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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에 기반한 과학과 인류의 복잡한 줄다리기 이야기를 본 기분.

사실 초중반까지 뭐 그냥저냥 읽었달까, 그런데 잠자리에 들어 누워 읽으면서 졸음은 몰려오는데도 왜인지 책을 덮지 못하고 끝까지 내달리듯 읽게 된다.

과학적 성취에 대한 열망 앞에 전 지구적 재난이 될 연구를 멈추지 않는 광기랄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일이 자명한데도 그 욕망은 과연 무엇인지...

그러다 막바지에 인간과 AI의 대결, 알파고와 이세돌의 이야기는 당시 그 대국을 지켜본 입장으로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이 재밌는가에 대한 것은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겠다. 읽기를 멈출 수 없기는 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드: 핵무기와 냉전> 1화에 2차대전 정세와 핵의 등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에는 언급이 없어 몰랐는데 라스엘라모스의 첫 원폭실험 피해자가 있었다. 60여 킬로미터 근처에서 여학생들의 댄스캠프가 열렸고, 밝게 빛나는 밤하늘에서 뜨거운 눈이 내렸고, 한 명을 제외한 열댓명의 소녀들과 캠프관계자가 30세 이전에 모두 사망했다. 근방 200여 킬로미터 반경에는 50만명의 뉴멕시코, 텍사스, 멕시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 아! 내가 뭘 얼마나 바꿀 수 있었겠는가? 불장난을 하던 게 야노시뿐이 아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의 세대 전체가 지옥의 사냥개들을 풀어놓았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그의 첫 스승이어서다. (...) 수학이란 신의 정신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숭배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수학에는 진정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그 힘은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 그 힘은 오직 인간만이 소유한 능력에서 탄생했는데, 은혜로운 우리의 신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과 발톱 대신에, 그만큼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힘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 그가 가진 능력이란 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워서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았지만, 다른 것도 보았다. 우리 모두를 묶어두는 자제력을 상실한, 사악하고 기계 같은 지성. 그런데 왜 침묵했느냐고? 그가 너무 우월했으니까. 나보다도, 우리 모두보다도. - 110

- 대개 수학자들은 자신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폰 노이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증명한다. - 115

- 조니는 내가 미국을 경멸한 만큼이나 미국을 사랑했다. 그 나라가 그에게 무슨 짓인가를 한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실성한 듯 무모한 낙관주의와 잔인함을 뒤에 감춘 천진난만함이 조니 내면에서 최악의 모습을 끄집어냈다. 잠들어 있던 악마를, 그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악몽이 속삭이던 은밀한 욕망을. 그는 유럽에 있을 때와 달라졌다. - 155

-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간이란 존재는 완벽한 포커 플레이어가 아니다. 대단히 비합리적이기도, 의욕만 앞서기도, 감정에 좌우되어 온갖 모순에 종속되기도 한다. 사방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유발되는 것은 바로 그래서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성의 광기 어린 꿈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자비이자 이상한 천사이다. - 177

- 그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이후에 그는 말했다. ˝알파고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사람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무력감과 공포감을 느꼈던 거다.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나도 나약해 보였으니까. 이 승리는 우리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증거다. 시간이 지나면 AI를 이기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승리......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한 번으로 충분했다.˝ - 390

- 데이비드 실버는 알파고 시스템으로 대국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 이세돌과 알파고의 수를 다시 놓으면서 ‘신의 한 수‘를 가치망과 정책망이 과연 어떻게 평가할지 보자고 했다. ˝거기까지 돌려봤어?˝ 컴퓨터가 무한한 연산 능력을 가동해 끝없는 확률의 선을 살피는 동안 데이비드 실버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그 수가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된대?˝
˝0.0001.˝ 주니어 연구원이 대답했다.
침묵이 흘렀다. 만분의 일. 두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획기적인 37수를 두며 바둑계에 존재감을 알렸을 때 자신의 수에 부여한 확률과 정확히 똑같았다. 결국엔 알파고 네트워크도 중국 프로 기사 구리가 이세돌의 수에 붙인 이름을 인정한 셈이었다. 그것은 실로 신들린 움직임. 신의 손길이 닿은 한 수였다. 인간은 만 명 중에 단 한 명만이 떠올릴 수 있었던 수, 이세돌의 끼움 수에 알파고가 허둥댄 것은 그래서였다. 인간의 경험치를 훌쩍 뛰어 넘은 것은 물론, 알파고의 무한해 보이는 능력조차 초월한 수였으므로. - 392

2024. mar.

#매니악 #벵하민라바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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