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음악 말들의 흐름 10
이제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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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이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사고를 당한 시인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에세이.

타국에서 불안 가득한 병원생활을 하는 시인에게 목덜미에 "꽃"이라는 단어를 새긴 고려인 소녀와의 만남이 얼마나 시인에게 위안을 주었을까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만남이 있어 퍽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 적막한 새벽과 음악의 이미지를 담았겠거니 했는데,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뭔가 툭터져나와 한참을 먹먹했다. 조금 울기도 했다.

지난 11월 아빠를 떠나보내고 이제 부모가 없는 성인 고아가 되어서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죽음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많이 찾아 읽게 된다.

시인의 새벽은 좀 쓸쓸하고 여러 마이너한 감정을 불러들이는 그런 새벽이다.

플레이리스트 큐알 코드가 있는데 퍽 취향이었다. 자주 플레이할것 같은 그런 음악들이다.

다만... 시력이 많이 떨어진 독자에게 노란색 활자 몹시 가독성 떨어진다. 모르는걸까 출판사는....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그리고 종이 그 자체인 표지도 예쁘긴 하지만 혹 뭐라도 묻을까 습기라도 먹을까 조심하게 되는거 불편함.
그러나 이쁨... 아이러니.


- 아픈 허리를 하고 앉아 이제야 그 시절에 대해 쓰고 있다. 무언가로부터 멀어지려고, 멀리 가려고, 발버둥치는 시간들을 온전히 겪어야만 또 다른 무언가를 제대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한은 누군가 무언가가 너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시간을 요구한다고. 저 멀리 극단까지 극한까지 가라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게 밀어붙이고 있음을 느끼면서. - 18

- 시의 몸을 입은 언어가. 시의 혼이 흐르는 언어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오래된 의미의 그늘을 지워내고. 한없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추론의 언어로 다시 움직여가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새로운 봄이고 새로운 꽃이다. 언제까지나 어리둥절한 채로.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바라보면서. 오늘 나는 다시 봄을 모른다. 오늘 나는 다시 꽃을 모른다. 그리하여 어느 날 다시. 꽃의 또 다른 이름 앞에서 문득 울게 될 때까지. - 20

- 엄마는 새벽에 돌아가셨다. 새벽 한 시 사십오 분.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식구들 모두 엄마 침대 발치에 걸린 벽시계를 바라보았던 것이 생각난다. 우리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그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마침내 도착하게 된, 한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두 눈 가득 담아두고 싶었던 것일까. 마침내 그 지난한 고통이, 우리 모두의 고통이, 끝났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했던 것일까. - 29

- 시간 속에서 지치다 보면 사람들을 놓치기도 하고, 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고. 기대를 품은 응원의 말을 해줄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오지 않는 희망과 잡을 수 없는 소망 앞에서는 다들 지치니까. 주위에 그런 굳건한 지원군이 없다면 자기 자신을 가장 든든한 친구로 만들면 된다. - 54

- 한 편의 시는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것일 수 없는, 개별적인 사건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어떤 시를 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현재의 너와 나를 마음 깊이 돌보고 돌아보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시는 언제나 바로 곁에 있었지만 결정적인 상황을 겪은 뒤에야 혹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사건을 마주했을 때에야 비로소 불현듯 뒤늦게 찾아드는 무엇이라 여겨집니다. - 167

- 조금만 더 울어도 좋다고, 조금만 더 절망해도 좋다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만 더 울리고 했다. 조금만 더 절망하기로 했다. 조금만 더 나아가기 위해서. 조금만 더 날아가기 위해서. - 218

- 말이 표현하는 힘이 사라진 곳, 바로 거기에서 음악이 시작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음악을 만들죠. 그림자에서 나온 듯한 낌새가 있는 그것이 있던 곳으로 순식간에 돌아가는 그런 음악. 언제나 삼가듯이 처신하는 사람 같은 그런 음악을 쓰고 싶습니다. - 시이나 료스케, [에릭 사티,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 북노마드

2024. feb.

#이제니 #새벽과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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