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생각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6
천양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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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후회와 덧없음.

- 오늘따라
생각으로 찢는 것이
시의 마땅한 일이란 것을 절감하게 된다 - 시인의 말 중

<그때가 절정이다>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맞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산까치가 울면 영락없이 비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우산도 없이 바람 속에 얼굴을 묻던
그때를 생각했다
매미는 울음소리로 저를 알리고
지렁이도 심장이 있어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슬픔에 비길 만한 진실이 없다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했다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살고
무명초는 씨앗으로 이름값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가난을 생각하며 '살다'에 밑줄 긋던
그때를 생각했다
제 그림자 밟지 않으려고
햇빛 마주 보며 걸어갔던 시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걸 알았을 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그때를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절정이다
(전문)

- 인생은 무슨 이유로
환상은 짧고 환멸은 긴지
모를 일이다 - 모를 일 중

- 가난한 백석에게
시인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백석은 말했다네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면 안 될까요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면 안 될까요 - 그러면 안 될까요 중

- 애매하고 모호한 것이
속수이며 무책인 것이
안절과 부절 사이에서 헤맬 때
심사하고 숙고한 단 하나의 진정한 시는
다른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뜨는 것
내일의 불확실한 그것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 것
이 말들은 던져진 운명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 시작법 중

2024. jan.

#새벽에생각하다 #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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