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 오늘의 젊은 작가 35
정지돈 지음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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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많은 부분 설명된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뭔가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그저 무표정의 등장인물들이 진지하게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익숙한 느낌 뭐지? 하고 생각하다 웹툰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생각났다.

의미가 있는 문장들이 수시로 튀어나오는데, 이야기 자체의 의미는 없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재미다.

정말이지 그렇다.

이래서 정지돈 작가의 글을 계속 읽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 사람들은 생략을 어려움 없이 이해한다. 프랜은 반대였다. 아무것도 생략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생략해선 안된다. 아무것도 생략할 수 없다. - 14

- 가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몽상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 곧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선유도에서 난지 공원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탔고 UN 평화 공원 벤치에 앉아 인공 호수를 바라보며 새해 다짐 따위를 중얼거렸다. 두고 봐라. 내가 되고 만다. 그러나 여전히 뭐가 되어야 할지 어떻게 되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18

- 지우는 이런 종류의 모든 유행이 한심했다. 4차 산업혁명, 통섭, 공유 경제, 가상 경제, 디지털, 미디어 철학, 기술 철학,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머니즘, 사이퍼펑크, 암호 화폐, 게임 이론...... 특히 실리콘밸리나 스타트업은 최악이고 유사한 측면에서 미디어 아트나 아트 테크니 하는 것들도 비호감이었다. 그런 것들은 눈속임에 불과했고 실체가 없었다. 변화, 새로움, 혁신은 언제나 부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곳에 진짜 변화는 없다. - 51

- 그러나 역시 문제는 대부분의 음모가 상상된다는 것이며 상상된 음모, 곧 음모론이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현실이 된다는 말과 다름없다. - 61

- 유진이 프랜에게 말했다. 뭘 받고 싶은지 프랜이 묻자 그건 그때 생각하자고 했다. 그때 생각하자...... 좋은 말이지만 프랜은 지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욕망은 달라질 거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변하고 약속이나 다짐, 상상이나 꿈은 헌책처럼 창고에 처박힐 것이다. 그러니 지금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구체적인 건 무엇이나 현실이니까. 미래는 시간이 아니라 꿈속에 있다. - 70

- 프랜은 단지 말들을 떠돌게 하고 싶었다. 대단한 예술 작품, 베스트셀러, 히트작, 영원불멸의 클래식 따위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생각, 아이디어, 논평, 꿈, 일상, 작은 이야기, 사소한 논쟁 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슬프게 스치고 사라졌으면 했다. - 71

- 생각이 범죄라면 진정한 범죄자는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다. - 113

- 유치장 안에는 대령과 교사, 인턴으로 불리는 세 명의 사람이 있다. 한 철창에 정해진 인원은 넷인데 침대는 세 개다. 침대가 왜 세 개인지 아냐고 간수가 묻는다. 글쎄. 일종의 고문인가? 간수는 웃는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유란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허용하면 다른 모든 것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 135

- 우울은 과거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불안은 미래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 136

- 프랜은 생각했다.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절대 그 속사정을 알 수 없다고. 안다 해도 되돌리거나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인다 해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그것이 때로 우리를 절망하게 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작고 표면적인 일을 통제하고 실천하는 것에 만족하며 살 거라고. - 148

-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논리적 오류가 진짜 오류나 실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게 언어의 본 모습, 진정한 내면 아닐까. 말은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고 그 의미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 같지만, 실은 단지 말이 말을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언어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언어는 분명 뭔가를 전달한다. 다만 나는 그것이 내용이나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 말이 뭔가 라팔리사드의 하나처럼 들린다면 그건 맞다. 물론 그렇다고 의미가 전달됐다는 건 아니다.) - 작가의 말 중

2024. jan.

#스크롤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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