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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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풍경은 크게 다른 게 없다고 해도.
극한의 현실성이 느껴지면 읽으면서 피로도가 크게 상승한다.
대재앙에 대한 상상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인류에게 딱히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진절머리 내며 읽다가 결국 뭔가 마음속에 남는 것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 대한 것이 한 줌 남았기 때문이다. 

최진영의 소설은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건조한 정서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너나 나나 몹쓸 인간이라는 자조와 책망이 눈빛에도 말투에도 깃들어 있었다. 안다. 불행해서 그렇다는걸. 죽음에 억눌려 있다는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고 미래를 전망하기도 힘들어서라는 걸. 그래서 난 더더욱 불행을 닮아 가고 싶지 않았다. 삶을 업신여기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나 삶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을 어떤 잘못이나 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는 엄마의 죽음도 나의 삶도 견뎌 낼 수 없다. - 37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 55

봄이 오면 땅과 강이 녹고 세상은 푸르게 변할 것이다. 꽃은 피고 햇볕이 내리쬐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인간끼리 아무리 총을 쏘고 파괴하고 죽이고 죽여도 자연은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할 것이다. 나는 머물러 봄을 맞고 싶었다. 나무와 꽃과 청량한 강이 있는 곳에서 내가 사람인지 바람인지 모른 채 살고 싶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를 만나고 싶었다. - 112

밤의 적막은 낮의 그것과 한참 달라서 한번 무서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정신병에 걸린 듯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해민을 껴안았다. 해민을 껴안는 방법으로 나를 안았다. 단과 해민이 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두 사람이 아주 먼 우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곁에 있어 걱정과 온기를 나누지만 오직 그뿐, 각자의 두려움과 고통을 껴안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인 머나먼 우주. - 145 

2024. jan.
#해가지는곳으로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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