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읽어버리는 게 아깝기도 하고 워낙 쌓여있는 책이 많기도 해서 시리즈 마지막 권이 출간되고서야 경찰 살해자를 읽는다.

이제 아는 사람 같은 친근감도 있는 데다, 이들의 냉소에 가까운 유머 코드는 정말이지 애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미건조함 속에, 진절머리 나는 현실 속에 경찰로서의 당면한 의무에 성실한 이들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소설 같은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감정적인 면을 배제한 채 흘러가는 이야기 스타일 덕에 기대치 않은 불행한 사건이 일어날까 솔직히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폴케 벵트손은 분명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관료주의적이고 성과주의에 매몰된 사법당국에 의한 인권 침해를 받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팽배한 권위에 대한 불신과, 그 권위를 가진 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면을 충분히 그려내고 있다. 그건 스웨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은 보편의 모습인지라 충분을 넘어서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마이 셰발, 페르 발뢰의 사회주의자적 관점의 많은 부분에 동의하는 지점.

시리즈의 시작인 로재나를 읽을 때만 해도 이런 템포와 감성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어떤 범죄 시리즈 보다 사랑하게 된 마르틴 베크.

마지막 권도 바로 읽기 시작해야겠다.

- 예전부터 콜베리는 경찰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을 간간이 내비쳤고, 최근에는 그 충동을 실행에 옮길 결심이 점점 더 굳어지는 듯했다. 마르틴 베크는 콜베리를 응원하기도 말리기도 싫었다. 경찰에 대한 콜베리의 결속감이 바닥났다는 것을 알았고, 콜베리가 양심의 가책을 점점 더 많이 느낀다는 것도 알았다. 한편 콜베리가 이만한 대우에 만족스러운 직업을 새로 구하기가 몹시 어려우리라는 것도 알았다. 젊은이들에게 특히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대학 졸업자에 경력까지 있는 전문가들조차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고실업 시대에 쉰 살 전직 경찰관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이기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콜베리가 남기를 바랐으나, 마르틴 베크는 별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콜베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들지도 않았다. - 34

- 비행장은 법으로 보호되는 자연경관을 망쳤다. 광범위하고 회복 불가능한 파괴는 생태학적으로 극악한 행위였다. 정부가 '더 인간적인 사회'라고 자칭하는 이 나라가 갈수록 반인도주의 사회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였다. 사실 '더 인간적인 사회'라는 모토 자체가 워낙 냉소적인 것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 38

- 문득 요즘 사람들이 나라의 현 상태에 불만을 토로할 때 쓰는 표현이 떠올랐다. '스웨덴은 썩은 나라이지만 아주 예쁘게 썩은 나라다.' 누가 말 혹은 글로 쓴 표현이었겠지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 94

- 법치라는 단어는 이미 썩을 대로 썩은 단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에 올리기를 꺼리거니와 누군가 진지하게 저 말을 하는 걸 들으면 놀라서 입을 헤벌렸다. 스웨덴에 법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정부와 체제가 법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늘 그렇듯이 시민들만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 158

- 사법제도 내부의 소통은 보통 지루하고, 장애가 많고, 각종 서류 작업과 관료주의적 요식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과정이 아예 없는 듯했다. 누군가 전화를 들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 208

- 카스페르는 자기 삶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웨덴의 다른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듯, 그는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부만이 개인의 가치를 재는 잣대인데다가 젊은이들에게 정직하고 비교적 보람찬 일자리를 제공하지도 못하는 사회질서에 아무런 충성심을 느낄 수 없었다. 죄의식의 문제는 이렇게 해소되었고, 이제 그는 다른 많은 또래들과 같은 의견을 품고 있었다. 자신은 시민들에게 거짓과 기만을 주면서 그들에게 연대감을 요구하는 이 염세적 정치체제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또 부끄럽게 여겨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나라의 운영자들이라고 생각했다. - 331

- 몬손이 앞에 놓인 보고서 중 하나를 보았다.
"네, 반사회적 타입. 사회에 저항하는. 교육을 다 받지 않았고 직장을 가졌던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폭력 범죄로 형을 산 적도 없어요. 이따금 무기를 소지하기는 했던 모양이지만. 터프하게 보이고 싶었겠죠. 또 약물의존자였습니다."
콜베리는 한숨을 쉬었다. 이른바 복지국가에 이런 타입의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 개개인을 추적하여 관리하기란 불가능했다. 더 나쁜 점은 그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 356

- 세상에는 평범하고 정직한 노동을 최고로 훌륭하고 행복한 것으로 여기는 나라들도 있는 듯했지만 ,여기서는 그런 말을 삼년에 몇 주씩, 즉 선거 기간에만 들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위선적이고 고상 떠는 용어로 이야기되었고, 그 속은 거짓과 배신으로 가득했다. - 430

-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기분이 어때, 렌나르트?"
"나빠. 하지만 덕분에 뭔가 깨달은 것 같아. 어쩌면. 아무튼, 우리 동료라는 자들이 어떤 인간인지."
"엿 같은 은직업이지." 군발드 라르손이 말했다. - 446

2024. jan.

#경찰살해자 #마이셰발 #페르발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