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은희경 지음 / 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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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 정리 중이어서 온갖 버릴 물건들과 마주하고 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물건을 버리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지만,
뭔가 타이밍이 맞는 독서였달까.

집 정리하는 일에 도움은 안되었지만 ㅋㅋ,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많은 산문집이다.

- 오래된 물건들 앞에서 생각한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서 내가 되었구나. 누구나 매일 그럴 것이다. 물건들의 시간과 함께하며. - 11

-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 44

- 초등학교 6학년 때, 읍내의 문화원에서 동급생과 함께 2인 동시전을 연적이 있었다. 전시를 구경 왔던 한 남자 고등학생이 방명록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시심은 천심이란다. 어렵니? 나도 어렵다.” 나에게 그 문구는 충격이었다. 정말로 어려웠던 것이다. 교복을 입은 그 까까머리 남고생이 나에게 준 충격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시를 경외하게 만든다. - 65

-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리냐. 라고 속삭이는 엄마에게 나는 말했다. 엄마, 작가가 되도록 나를 내버려뒀잖아. 그게 얼마나 큰 뒷바라지인데. 그러니까 내 말은...... 그때 어쩐지 목이 메었다. 작가한테는 반대도 방해도 하지 않고 가만히 혼자 두는게 제일 큰 뒷바라지야, 라고 농담을 하려고 했는데. - 83

- 그게 왜 필요한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려고 애쓰지 말길 바란다. 어차피 설득은 어렵다. 상대는 실용성과 효율을 근거로 묻는 것이지만, 나는 매우 사적으로 기분상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쓸모없어 보이는 사소한 물건을 사는 데에는 미묘한 사치의 감각이 있다. 그것은 하염없이 경치를 바라본다거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찻집에 앉아 있는 때처럼, 내가 기능적 인간에서 벗어나 고유한 개인이 되는 듯한 기분과 비슷하다. 내가 되는 기분,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그래도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면, 일단 물건을 산 다음에 생각해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214

- 오래 좋아했던 작가의 책을 읽으며, 이제 그만 작별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그중 어떤 작가는 신간이 나오면 여전히 다시 찾게 된다. 그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점이 유지되면, 비록 나와 맞지 않는 점이 발견되더라도 다음 책을 또 사리라 마음먹는다. 그 작가가 주는 것을 다른 작가에게서는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런 작가가 몇 명 있다. 그 작가의 작품을 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두말없이 그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 224

- 사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고 각자의 환경과 조건, 기질에 따라 누구나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완고함, 그걸 깨닫고도 합리화해버리는 이기주의와 안이함은 타인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편견은 부끄러움의 영역이지만 폭력이 되면 그것은 범죄인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 238

2023. sep.

#또못버린물건들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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