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른 이름들 민음의 시 224
조용미 지음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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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싯구와 어떤 시 앞에서 망연하게 일종의 위로를 받는다.

커다란 자연에게 받는 위로와 조금 비슷한 감각이다.

- 고독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백 년을 거듭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츰 각자의 색을 갖게 되는 것이다 - 당신의 거처 중

- 낮이 길어지고 밤의 깊이와 너비가 줄어든다
계절은 왜 늘 비와 바람을 앞세우고 나타나는가 - 가수면의 여름 중

- < 봄의 묵서 >
당신은 몸뚱이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지요 살가죽의 고독, 눈꺼풀의 고독, 입술 가운데 주름의 고독, 엄지와 검지 사이 살이 구겨진 듯 오래 접혀 있을 때의 고독, 무너지지 못하는 등뼈의 고독, 종아리 속 정강이뼈의 고독, 뭉클뭉클 흘러나오는 어두운 피의 고독을

당신도 혹 이곳에 발붙이고 있어도 늘 저곳을 향하고 있는 마음이 따로 있진 않은지요 자의식 과잉의 먹구름이 늘 폭우를 동반하고 머리 위를 떠다닌다면 그 정신과 육체는 너무 습도가 높아 목까지 찰랑이는 슬픔이 그득 차 있겠지요

어떤 마음은 슬픔의 힘으로 무럭무럭 자라 꽃과 잎을 피우고 열매 맺고 스러져 갑니다 어떤 마음은, 몸속 어딘가에 깨알 같은 혹을 만들어 놓고 키웁니다 슬픔이 불러들인 미세한 파장으로 단단하게 뭉쳐진 혹은 몸 안에서 따뜻하고 서글프게 오래도록 머무빈다

생강나무에 물이 올라 노란 꽃이 맺쳤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도 꿰뚫어 보면 그 실체가 물질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노랑에서 분홍으로 봄이 자리를 조금씩 옮겨 가고 있습니다 아아, 몸이 달라지고 있는 봄입니다

늘 걷던 길이 햇빛 때문에 달라 보이는 시간, 봄볕에 발을 헛디딥니다 햇빛 때문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달라지다니요 꽃과 나무와 마음을 변화시키는 봄볕에 하릴없이 연편누독만 어합니다 부디, 마음 때문에 몸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그저 감각하기만 하면되는 것이다 그곳의 멈추었다 미끄러지는 모든 시간들을
순간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순간이 아무것도 아닌, 기이하고 아름답고 무서운 그런 풍경을 - 풍경의 귀환 중

- 기나긴 슬픔에 비해 파국은 지나치게 짧다 - 거울 중

2023. feb.

#나의다른이름들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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