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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왜 레몬, 왜 노란 원피스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 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상실을 대변하는 색이 되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
많은 것이 동시에 떠올랐다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당신을 상상한다는 말이 다른 의미로 소름이 오소소 돋는 말일 수도 있다는 것.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불행과 불안의 느낌으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의 권여선의 이야기와는 꽤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포자기라는 것을 배제한 것 아닐까 싶게.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젊음이 암울할까?
어쩌면 그럴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여튼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이야기.
- 나지막하지만 상냥하지는 않은 목소리였다. 학생주임이나 담임이 처벌해야 할 학생을 호명하는 식의 딱딱한 말투. 그것은 단단한 적의가 되어 그의 가슴 한복판에 꼿혔다. 정확하게 실현될 참혹한 운명같다, 고 나는 생각한다. - 10
- 어떤 삶은 이유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 145
- 돌이킬 수 없는 일 앞에서 혼란에 빠지는 건 당연해요, 라고 다언이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럴까, 하고 나는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에요, 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 저쪽,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든 초라하든, 한 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 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단호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 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언은 책을 읽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래 다져진 땅 같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다언의 관념은 곱씹고 또 곱씹어 어떤 날도 들어가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노인들의 그것보다 더 무섭고 더 죽음에 가까운 듯 보였다. - 178
2019.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