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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문학적 호기심을 벗어난 작가의 근대적 사실주의.
도련님은 동경을 떠나 짧은 교직생활로 거쳐야할 진통이 있었던 걸까?
도련님은 끝까지 정직했을까? 솔직했을까?
고지식하고 순진하달까... 여튼 그런 청년의 모험?에서 문득 영화 <이끼>가 떠오른 것은 부임해간 시골의 학교를 구축하고 있는 극단적인 인간 관계망 때문이다.
순수하게 정의롭고 의리를 중시하는 도련님 주위엔, 남을 속여 잇속을 채우고, 미인을 얻기 위해선 뒤가 구림 꼼수를 쓰고, 타인을 배척하는 폐쇄되어 있는 순수한 악의.
인간은 관계를 맺지 않고 살기 힘든 외로운 존재지만 차라리 외롭고 말지 싶은 군상들 속에 있다보면, 도련님에게 기요의 존재가 얼마나 의지가 되고 위안이 되는지 납득이 된다. 부모 형제 조차 의심스러운 미래를 점치는데 이유없이 자신을 믿어주는 존재라니, 그런 존재를 통해 더욱 정의롭고 싶어진 것일테다.
‘나’는 매우 삐딱한 존재면서 내면은 올바름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그의 투덜거림에 그럴바엔 숨도 참고 쉬지 말지? 싶은 마음이다가도 너무나 익숙한 그의 투덜, 불만, 불용의 자세를 보면... 아차... 이건 나랑 매우 비슷하다..라는 기분이 된다. 그래서 차마 싫어지지 않는지도 모를 캐릭터다.
그러고 보니, 수상쩍은 시골 사람들에게서 뭔가 있어... 수상해... 느낌이 좋지 않아... 살인이 벌어질거야...라는 생각과
기요가 베푸는 애정을 보면서는 뭔가 있어.... 친모가 아닐까... 불륜인 것이다... 라고 생각한 나를 돌아보며 웃음이 났다.
그 시대를 너무 복잡하고 미묘한 현대에 끌어와 과한 상상을 한 것이다. 온갖 현란한 시나리오에 노출된 환경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결국 기요와 한집에서 짧지만 행복하게 살게 된 것에 안도했다. 집 장만도 채 하기 전에 그녀가 죽을까봐 노심초사했다. 이 또한 나의 이상한 감상이다.
- 하지만 기요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완전히 사랑에 빠져 있음에 틀림없다. 원래 지체있는 가무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육을 받지 못한 할멈이라 어쩔수가 없다. 단지 이것만이 아니다. 호의적인 눈은 무서운 것이다. 기요는 내가 장래에 출세하여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공부를 하는 형은 얼굴만 허여멀거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거라고 혼자 단정짓고 있었다. 이런 할멈이고 보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영락할거라 믿고 있다. 나는 그때부터 특별히 뭐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기요가 “될 거다, 될거다”하는 바람에 역시 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스럽다. - 21
- 학생의 모범이 되라는 둥 학교의 사표로서 존경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둥 학문 이외에 덕으로 학생들을 교화하지 못하면 교육자가 될 수 없다는 둥 터무니 없는 주문을 마구 해댔다. 그렇게 훌룽한 사람이 월급 40엔을 받고 이렇게 먼 촌구석까지 올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인간이란 대개 비슷하다. 누구든 화가 나면 싸움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함부로 입도 놀리 수 없고 나다닐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어려운 역할이라면 채용하기 전에 이러저러하다고 미리 알려주었어야지. 나는 거짓말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속아서 온 거라며 포기하고 이쯤에서 과감하게 거절하고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 32
- 간혹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 이라는 둥, 애송이라는 둥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윤리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지 마라, 정직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큰 맘 먹고 학교에서 거짓말하는 법이라든가 사람을 믿지 않는 비법, 또는 사람을 이용하는 술책 등을 가르치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해서도, 당사자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빨간셔츠가 호호호호 하고 웃은 것은 나의 단순함 때문일 것이다. 단순함이나 진솔함이 비웃음을 사는 세상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기요는 이럴 때 절대 웃는 법이 없다. 무척 감동하며 들어준다. 기요가 빨간셔츠보다 훨씬 훌륭하다. - 76
2018. d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