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으로 휘몰아치는 단편들.읽으면서 점점 고조되는 기분은 상쾌하기까지 한데, 이야기의 내면들은 어두워서인지 그 둘 사이의 부조화가 더욱 긴장을 유발하는게 아닌가 싶다.악보상의 같은 음계라도 구병모 작가는 좀 더 세게 끊어치는 주법의 연주자같은 인상을 조금 더 갖게 된다. - 펜 끝에서 한 번 번져 나가기 시작한 말들이 그리는 궤적을 바라보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흘러가는 말들을 포착하여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은 물방울의 표면에 새겨나가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은 원래의 가장 올바른 자리로 돌아가기에, 그리고 말의 죽음을 맞이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일 뿐이다. - 39,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나는 왜 쓸까요.소설이 원래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인가요.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요.또는 반드시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 것인가요.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말해준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 270, 오토포이에시스 2018. d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