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성 없는 소립자들
전경린 지음 / 섬앤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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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야지 하고 골랐는데, 많은 생각을 불러들인 산문집이다.

이디스 워튼이 초반에 언급되어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아무래도 읽는 행위는 사슬같아서 읽다보면 연결되고 연결된다는 것이 매력적이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
글 중 소개된 허연 시인의 <칠월>이라는 시가 너무 좋아서 연결의 사슬로 시집 한권을 사들였다.

다 읽지 않은 채로 여럿에게 이 책을 권했다.

그러니 새로움이란 얼마나 아픈 것인가. 또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다른 시간으로 건너가기 위해 우리는 늘 깎이고 잘리고 생채기가 나고 자기 상실을 겪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동시에 새로워지는 중인 것이다. - 작가의 말 중.

미국 여성 작가 이디스 워튼은 삼십 세 이후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이십 세기를 바라보는 작가로서 직면했던 도전의 일부였다고 말했습니다. 작가가 된 이후 나 역시 그런 도전 의식을 가졌으며, 여성의 내면적 역사에 관심을 가져왔어요.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시대와 여성적 삶의 구조 속에서 여성의 상황을 살며, 여성의 역할을 하고 여성으로서 대응하고 여성적 고뇌를 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죠. - 17

잔인한 봄인 줄 알면서도, 다시 움직이기 위해, 밭을 갈아엎고 욕망을 깨워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욕망이 아니고서는 이 잔인한 삶의 중력을 이기고 다시 가벼워질 방법이 없다. 욕망이란 다름 아닌 자기 안의 능동성이다. - 21

너의 정서에 맞게 결정하렴. 네 인생의 흐름에 맞게, 모든 관계는 예속을 가져오거든. 네가 얻는 만큼 그것에 대해 기여해야 하는 거야. 네가 가진 타인에 대한 용량은 얼마일까. 타인에 대한 너의 의존도는? 타인과의 적정한 간격은? 타인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탐닉이지. 타인이라는 존재도 알코올이나 도넛만큼 달콤하고 위협적이고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큰 받아야 하는 갈등을 가져오는 민감한 사안이거든. 더 많은 관계를 갖는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중요한 건 삶에 대해 갖는 자기만의 독특한 체계가 아닐까. 난 삶의 형태에 관해 우리가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도. - 65

시간은 찬란하던 기쁨의 빛도 사위게 한다. 삶이 낯선 여자의 생애처럼 점점 객관화되는 기분이다. 그 상실감은 나를 평화롭게 한다. 이젠 좀체 흥분할 일 같은 건 없을 것만 같다. - 96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곳이 저곳인지 알지 못하고 내가 당신인 것을 알지 못하고, 어제가 내일인 것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에, 모래 구멍 집에서 사력을 다해 달아났던 사내는 다시 그 구멍속으로 돌아온다. 삶이란 게 늘 미봉책일 뿐 이렇게도 방법이 없다. - 190

2018.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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