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너무 힘겹게 지나간다. 하루하루가 피곤함의 연속인데 한가하게 독서라니 글쓰기는 언감생심이다. 분주한 하루하루, 연이은 한파에 제설작업, 오케스트라 연습, 난방기 콤포교체, 동파 배수관 수리. 책상 해체와 전기배선, 도배, 겨우내 그치지않는 기침, 독서실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수리, 하루가 멀다고 막힌 화장실 뜷기, 독서회 진행, 예준이 돌보기....어느것 하나 만만한게 없다. 무엇보다 큰 고민은 이 작은 동네에 독서실이 너무 많다는것. 하지만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퇴직 후 소일거리로 여기자는것. 그래야 어깨가 좀 가벼워질테니.....

책을 손에서 놓은지도 꽤됐다. 시간은 쉬지않고 어영부영 지나간다. 은근히 걱정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로 전전긍긍할 때, 부대끼는 삶, 단지 분주한 일상이라는 이유로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할 때, 정신 따로 몸 따로, 심지어 정신은 사라지고 몸만 남을 때가 있다. 하여 일상잡사로 번민이 깊어질 때 함께 자괴감이 들곤한다. 삶에 대한 숙고, 사색이라는게 여건이 되어야만 가능하다니....이게 생활인의 정체란 말인가? 결국 걱정없고 한가해야 비로소 책을 펼칠 수 있다면 나에게 책이란 대체 무엇인가. 기껏 심심풀이 땅콩에 불과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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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시 기상. 간밤에 눈이 5센티정도 쌓였다. 아내와 커피 한 잔. 식당에 고시텔생 아침식사 준비하다. 독서실, 화장실, 복도 청소하고 뒷뜰, 현관 계단에 쌓인 눈 치우다.  오전 9시 아침식사. 다시 커피 한 잔. 사무실로 내려와 오전 근무. 어제부터 D.H 로렌스의 장편 <사랑에 빠진 여인들>읽기 시작하다. 근일새 한길문고에 들러 주문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가져와야겠다.

오전 10시. 재직때 실습선 동료였던 후배 근환이가 문득 생각나 문자 보내다. 퇴직했을텐데 어찌 지내는지 소식이 궁금했다. 아이들 유치원때부터 알고지내는 이웃 유진씨 부부와 커피 한 잔 하기로 약속. 겨울 아침, 아내, 며느리, 손주 예준이랑 군고구마 먹다. 친구 남기두와 잠시 통화. <사랑에 빠진 여인들> 몇 쪽 읽다. 쓰레기 분리수거, 고시텔 계단청소.  

오후 3시 지곡동 유진씨댁에 놀러가다. 솜씨좋은 유진씨가 직접 커피콩 볶아서 내린 예가체프 한 잔 마시다. 만나면 화제는 거의 비슷하다. 자식들, 애완견, 이웃들, 노후 대책, 병, 운동 등등. 대체로 60중반이면 누구나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기분도 따라 다운된다. 원인이 신체든, 경제적 문제든, 자식문제, 질병, 컨디션, 그밖의 어떤 것이든 체력 저하와 함께 우울감, 외로움이 커진다. 직장 퇴직에 자식들 장성하고 마땅히 일거리가 없는 상태에서 몸에 약간의 이상 징후라도 생기면 여지없이 기분이 다운되고, 스트레스도 따라 상승하는거다. 삶의 활력, 의욕도 감퇴되고. 이럴때 우울증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격의 없이 만날 수 있는 좋은 이웃은 힘이 된다. 나 혼자 겪는 병이고, 외로움이며, 힘겨움인가싶은데 알고보면 상대도 마찬가지다. 이럴수록 자주 만나고, 힘겨움도 토로해야한다.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 넉넉히 삶의 원동력되지만  나이들면 스스로 꾸려가는게 한계가 있다. 내킨김에 저녁까지 때우기로 했다. 유진씨가 직접 만든 토마토 캐챱 소스를 넣은 떡볶이로 저녁을 대신하다. 이런저런 애기로 안주삼아 겨울 오후를 즐겁게 보내다.

 

오늘 화제는 단연 애완견이었다. 우리사회에서 애완견은 이제 거의 가족과 동급으로 여겨진다. 왜 그토록 애완견을 좋아하는가. 우선 먹고살기 힘들때는 가족돌봄이 최상의 과제였다. 하지만 의식주가 해결됨에 따라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가족사랑은 애완견 사랑으로도 확대된다. 애완견 사랑만큼은 거의 서구 선진사회에 버금갈 정도다. 애완견 사랑의 이유를 꼽자면, 비단 의식주 해결만이 전부가 아니다.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공동체 사회의 와해, 현대인의 고독감, 극도의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심. 경쟁사회와 불신감, 상처에 대한 두려움 등도 한 요소다. 자기중심주의, 에고이즘은 내 자신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지독한 경쟁사회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낳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사랑만을 주는 애완견은 자기 주인에게 절대 상처를 주지 않는다. 사람과의 교감은 극도로 줄어들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싶지도 않고, 받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는 시대,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는 시대,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 없는 시대, 그토록 사랑을 그리워하지만 주지도 받을 수 없는 시대, 고독하지만 고독을 해소할 방법이 없는 시대, 바로 이런 시대가 애완견 산업이 극도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토대를 제공한다. 그래서 유진씨와 내가 내린 결론인즉, 우리사회가 그토록 애완견 사랑이 극단적이 된것은 일종의 병리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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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로 진행하는 독서회가 사정으로 두 번이나 미뤄졌다. 금주 토론할 작품은 이청준의 장편 <당신들의 천국>. 흔히 우리 독자들은 외국소설에 비해 한국소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특히 최인훈, 이청준의 소설이 대표적인데 무엇보다 지식인 소설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지식인 소설이라는 것은 등장인물 혹은 소설의 내용이 꼭 지식인이거나 지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더라도 작중 화자나 내레이터가 대체적으로 지적 성향이 강한 지식의 전달자라는 의미이다. 이들의 소설은 대체로 대화, 지문이 논리적이고 촘촘해서 마치 지식인 간의 대화, 사유를 방불케한다든가 심지어 철학적 에세이 같은 부분이 자주 나타난다. 

가령 <당신들의 천국>에 등장하는 1부의 주인공 이상욱 보건과장, 2부의 주인공 조백헌 대령, 3부의 주인공 이정태 기자 등은 주요 지식 전달자인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적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며 지식의 전달이 주인공의 직접적인 직접화법을 비롯, 간접화법, 내적 독백의 형식, 즉 내레이터 자신이 요약하고 농축시킨 언어를 빌어서 이뤄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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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모임 형식을 좀 바꿔봐야겠다. 그동안 사전에 진행자료를 꼼꼼히 준비한 후 가능한 한 준비한 자료 중심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자료 내용을 모두 전달할 수 없을뿐 아니라 자료 위주가 되다보니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모임이 활발하려면 구성원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하고, 진행자와 참여자간에 상호 대화가 부단히 이뤄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행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에 못지않게 토론 분위기가 자유롭고 대화하기에 편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준비하는 나나 회원 모두 융통성 없는 빽빽한 자료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또한 자료 작성하는 내 입장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하기에 매번 부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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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주어진 90분동안 작품 토론보다 회원들의 개인사, 주변사에 비중을 둔다. 두 번째, 대화 분위기, 대화 내용모두 즉흥성을 살린다. 그래서 설령 화제가 작품을 벗어나더라도 제지하지 않고 적당히 흘러가게한다. 셋째, 진행자의 발언 비중을 줄인다. 즉 작품의 요점만을 간략히 전달하고, 회원들이 작품 이해에 다소 미흡하더라도 굳이 나서서 설명하지 않는다. 넷째, 모임의 목적, 효용성을 좀 긴 관점으로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도 편하고, 둘도 편해서 절대 모임에 부담이 없어야한다. 즉 즐거운 독서회가 되어야 하는데, 설사 내가 가장 경계하는 친목모임과 유사해지더라도 당분간 방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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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 회원들에게 방금 메시지 전달했다.  "내일은 별도 진행자료 준비하지 않습니다. 오랜만의 모임이니 작품은 쬐금만 이야기하고 신나게 수다나떨어보자구요.^^"

작가 소개, 등장인물 소개, 작품 줄거리 소개. 주요 등장인물 중심으로 대화 진행(캐릭터의 삶, 가치관, 성격 등). 6,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정치적 알레고리로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만 암시. 작품의 주제, 즉 '당신들의 천국'은 무엇을 뜻하는가, 에 대해 가장 비중있게 다루고 대화할것. 이번 한 차례 모임으로 작품의 모든것을 이해하지 않도록 할것. 그러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다음 독회때 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한국문학 작품과 외국문학 작품을 대한 각자 느낌 소개. 과거 한국문학 작품을 읽은 경험담, 감명깊게 읽은 작품 소개. 그동안 읽은 다른 소설과 이청준의 소설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떤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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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할때라야만 신명이 났다. 평범한 시간은 팽팽한 활시위마냥 긴장을 유지했다. 설사 그것이 어떤 글이든....오랜 시간 집중이 필요한 장문의 글을 쓸때는 더욱 그랬다. 마치 글이 전부고 삶의 목적이라도 되는양 매달렸던 시절. 40 중반에서 50초반쯤이었을테니 대략 17, 8년전이다. 그래봐야 소수 한 두명이었지만 누군가 댓글이라도 달면 얼마나 고마웠던지.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밝히고, 주고받는 일처럼 설레이는 일이 또 어데있을까. 영화 <패터슨>에 등장하는 아마추어 시인 패터슨은 아내가 유일한 독자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쓴 글 나 혼자 읽으며 나 혼자 생각한다. 혼자, 누가보지 않는 길 터벅터벅 걸어간다. 딜레탕트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기껏 몇 명에 불과한 독자,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으니 어느덧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가?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김영호는 그 시절, 티 없이 순수했고 행복감으로 가득차 있던 젊은시절을 향하여 외친다. " 나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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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목표라도 이루기 위해서는 덮어놓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을게 아니다. 우선 그것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면밀히 따져본 후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제 60중반 나이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세상사가 내 생각대로라면 뭘 못하겠냐만 현실은 냉정하다. 당장 눈앞의 고갈되는 체력이며 시간, 사그라드는 열정을 어쩔것인가. 그러니 매사 함부로 결정할게 아니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일이다.

 

는 지금은 순전히 클래식만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몸을 담고 있지만 과거에는 경음악 위주의 빅밴드를 한적이 있다. 그 시절 레인보우악단 동료였던 C형은 요즘 직장 일이 바쁘다보니 트럼펫을 거의 불지않는다고 했다. 악기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그 좋은 취미생활을 왜 안 하는지, 정작 본인은 무심한데 내가 더 몸이 달았다. 엊그제 마침 아리울 빅밴드에서 활동하는 학교 후배 G, 그리고 C형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 후 G의 권유로 커피는 아리울 연습실에서 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자연스럽게 C형 쪽으로 화제가 돌아갔다

 

연주를 다시 시작해봐라. 점점 나이드는데 이 보다 좋은 취미가 어데있겠냐. 좌고우면할 것 없이 당장 시작해라 어쩌고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분위기에 편승하면 감정이 훅~ 하는 급한 성미인지라 나는 C형에게 당장 시작하라고 다그치며 제안했다. 내가 지금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있지만 만약 C형이 아리울에 나간다면 따라가서 연주 괘도에 오를때까지 도와주마고 했다

 

제안은 순전히 C형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점잖은 클래식과 달리 발랄하고 감각적인 경음악을 연주하는 아리울빅밴드에 대한 나의 호기심도 한 이유다. 그러니까 표면에는 C형을 내세웠지만 내심 레인보밴드에 대한 향수가 발동했다. 두 군데서 연주활동을 하면 어때? 가능할까? 아마 가능할 것이다. 나의 장점인 뜨거운 열정, 불도저 정신이 있잖은가. 그러니 결국 내 제안은 C형만이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다그친 탓인지, 죽어라 버티던 C형의 생각이 결국 바뀌었다. 좋다. 내일 연습부터 당장 나가겠다. 잘 됐네, 그럼 내일 아리울에서 함께 만납시다. 뭐 일이 이렇게됐던거다. 그런데 막상 귀가해서 생각하니 은근히 고민이다. 만약 아리울에 나가면 양쪽 모두에서 연주를 해야하는데 그게 가능한가? 당장 내일 급한건 아리울 쪽 연주였다.

 

귀가 도중 아리울 트럼펫 주자인 L선생을 급히 찾았다. 내일 연주할 악보를 미리 봐둘까해서다. <아바 메들리> <베싸메무쵸> 등 모두 네 곡이었다. 급히 복사를 마친 후 집에 오자마자 트럼펫부터 꺼내들었다. 한시라도 연습이 급하다. 생각보다 곡이 쉽지 않다. 몇 번 불어보니 내 주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음 선율이 많다.

 

트럼펫을 연주하자면 어쨌거나 힘을 빼고 호흡만으로 연주해야하는데 나 같은 아마추어가 고음부를 연주하려면 어쩔수없이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면 어쩌다 소리는 낼 수 있어도 찌그러진 소리가 난다. 매끄러운 연주가 안 되는 것이다. 연습 부족이겠지. 몇 번 더 불어봤지만 시원잖다. 당장 내일 연주가 걱정이다.

 

단원들은 분명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나의 연주를 큰 기대감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고사하고 당장 곡 소화가 안 된다. 설사 한다하더라도 억지 소리를 내거나 별스럽지 않은 연주를 할 것 같다. 걱정은 또 있다. 아무리 C형을 위해서 한시적으로 아리울에 나간다지만 어떻게 몇 번 나가고 그만둬? 아리울 단원들은 제발로 찾아온 나를 단원으로 여길게 뻔한데 도중에 무슨 수로 그만두냐말이다. 미처 여기까지 생각을 못했다. 약속을 취소할까 아니면 몇 번 나가다 그만둬야하나. C형 생각한답시고 자청한 일이 예상치않게 고민을 안긴다. 경솔했나?

 

물론 무리하면 양쪽을 오갈수 있지만 이래서는 두 곳 모두 부실해질게다. 고심 끝에 결국 약속을 포기하고, 차후 모임은 석조, 칸투스, 독서회만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어설픈 열정, 불도저 같이 밀어만 붙이는 단순한 성미라 결정, 후회가 모두 한순간이다. 어쨌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좀 신중히 처신하도록 하자. 그나저나 실망시킨 C형과 후배 G에게 근일새 술 한 잔 사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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