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시 기상. 간밤에 눈이 5센티정도 쌓였다. 아내와 커피 한 잔. 식당에 고시텔생 아침식사 준비하다. 독서실, 화장실, 복도 청소하고 뒷뜰, 현관 계단에 쌓인 눈 치우다. 오전 9시 아침식사. 다시 커피 한 잔. 사무실로 내려와 오전 근무. 어제부터 D.H 로렌스의 장편 <사랑에 빠진 여인들>읽기 시작하다. 근일새 한길문고에 들러 주문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가져와야겠다.
오전 10시. 재직때 실습선 동료였던 후배 근환이가 문득 생각나 문자 보내다. 퇴직했을텐데 어찌 지내는지 소식이 궁금했다. 아이들 유치원때부터 알고지내는 이웃 유진씨 부부와 커피 한 잔 하기로 약속. 겨울 아침, 아내, 며느리, 손주 예준이랑 군고구마 먹다. 친구 남기두와 잠시 통화. <사랑에 빠진 여인들> 몇 쪽 읽다. 쓰레기 분리수거, 고시텔 계단청소.
오후 3시 지곡동 유진씨댁에 놀러가다. 솜씨좋은 유진씨가 직접 커피콩 볶아서 내린 예가체프 한 잔 마시다. 만나면 화제는 거의 비슷하다. 자식들, 애완견, 이웃들, 노후 대책, 병, 운동 등등. 대체로 60중반이면 누구나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기분도 따라 다운된다. 원인이 신체든, 경제적 문제든, 자식문제, 질병, 컨디션, 그밖의 어떤 것이든 체력 저하와 함께 우울감, 외로움이 커진다. 직장 퇴직에 자식들 장성하고 마땅히 일거리가 없는 상태에서 몸에 약간의 이상 징후라도 생기면 여지없이 기분이 다운되고, 스트레스도 따라 상승하는거다. 삶의 활력, 의욕도 감퇴되고. 이럴때 우울증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격의 없이 만날 수 있는 좋은 이웃은 힘이 된다. 나 혼자 겪는 병이고, 외로움이며, 힘겨움인가싶은데 알고보면 상대도 마찬가지다. 이럴수록 자주 만나고, 힘겨움도 토로해야한다.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 넉넉히 삶의 원동력되지만 나이들면 스스로 꾸려가는게 한계가 있다. 내킨김에 저녁까지 때우기로 했다. 유진씨가 직접 만든 토마토 캐챱 소스를 넣은 떡볶이로 저녁을 대신하다. 이런저런 애기로 안주삼아 겨울 오후를 즐겁게 보내다.
오늘 화제는 단연 애완견이었다. 우리사회에서 애완견은 이제 거의 가족과 동급으로 여겨진다. 왜 그토록 애완견을 좋아하는가. 우선 먹고살기 힘들때는 가족돌봄이 최상의 과제였다. 하지만 의식주가 해결됨에 따라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가족사랑은 애완견 사랑으로도 확대된다. 애완견 사랑만큼은 거의 서구 선진사회에 버금갈 정도다. 애완견 사랑의 이유를 꼽자면, 비단 의식주 해결만이 전부가 아니다.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공동체 사회의 와해, 현대인의 고독감, 극도의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심. 경쟁사회와 불신감, 상처에 대한 두려움 등도 한 요소다. 자기중심주의, 에고이즘은 내 자신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지독한 경쟁사회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낳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사랑만을 주는 애완견은 자기 주인에게 절대 상처를 주지 않는다. 사람과의 교감은 극도로 줄어들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싶지도 않고, 받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는 시대,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는 시대,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 없는 시대, 그토록 사랑을 그리워하지만 주지도 받을 수 없는 시대, 고독하지만 고독을 해소할 방법이 없는 시대, 바로 이런 시대가 애완견 산업이 극도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토대를 제공한다. 그래서 유진씨와 내가 내린 결론인즉, 우리사회가 그토록 애완견 사랑이 극단적이 된것은 일종의 병리적 현상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