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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가 금주 시작된다. 바라기는 류현진 14승 방어율 3.2(속구 구속 145Km), 강정호는 한창 때 수준인 타율 2할 7푼, 홈런 20개정도다.- 오늘자 미국의 유력 스포츠 매체는 2할 6푼, 홈런 13개를 예상했다 - 중간계투 오승환, 톱타자 추신수는 작년 수준만 유지하면 최선. 강정호 음주 댓글은 이제 그만 달음 어떨까. 그런 시간있음 자한당이나 도람푸에게 하던지.

EPL. 토트넘은 4강 유지정도고, 손흥민은 더 넣으면 좋고 안 넣으면 어쩔 수 없고. 희안한건 케인이 복귀한 후로 골이 안 터지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물론 케인에게 최전방 내주고 원래 위치로 갔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것 같다. 또 다른 골 경쟁자인 델리 알리도 아직 복귀전인데 대체 멘탈이 문제인지 뭔지. 챔피언스 리그는 8강 상대가 막강 맨시티여서 대진운이 별로다. 승률은 높여 잡아 4할정도.

국대 BTS 이승우, 백승호, 이강인 등에게 지나친 기대는 금물. 아직 새싹이니 얼마든지 시간이 있다. 메시, 호날두가 거저되는건 아니잖은가. 지난번 라리가 게임 때 이강인이 후반전 종료 직전 교체 멤버로 잠깐 들어갔을 때다. 오른쪽 코너 근처에서 센터링 한 후, 골문 바로 앞에서 공중볼 다투다 혼자 공중에 대고 물장구치는 퍼포먼스. 수비수도 없는 상태인데 헛발질 단독 퍼포먼스라 너무 짠했다. 세상에~ 열여섯살짜리가 얼마나 뛰고싶었으면, 얼마나 잘하고 싶었으면....이정도 열망만으로 이 아이는 충분히 클수 있겠다.

끝으로 메이저 해설. 각자 호불호는 있겠지만 허구연에 대한 비호감이 왜 그렇게 큰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반면에 메이저 전문가로 칭하는 송재우를 높이 평가들하는데, 허구연에 비하면 함량 미달이다. 송재우는 메이저 정보만큼은 따르르해도 야구 자체에 대한 심도있는 지식, 해설은 평균치다. 그 점에서 허구연이 단연 톱이라는건대, 야구는 야구 자체의 분석과 해설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점은 야구뿐 아니라 예술작품 분석도 마찬가지다. 가령 어떤 예술 작품을 분석할 경우, 작품 혹은 텍스트가 형성된 역사적 배경, 작가의 삶의 배경, 구구절절 온갖 정보 따위도 물론 중요하지만 텍스트 자체의 분석(이를테면 '본문비평')이 선행되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시청률을 목숨 같이 여기는 방송사거늘 엠비시에서 아무나 부르겠나. 다른 때는 몰라도 류현진이 던질때면 어김없이 허구연(요즘은 김선우와 동반해설)아니던가. 그것만으로 해설자의 수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건만 허구헌날 고놈의 '대쓰요 ~'타령이니. 내가 생각할때 허구연 담으로 투수 출신인 김선우나 정민철의 해설을 꼽을만 하다. 말솜씨 좋고,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어본 경험이 있어선지 투수 분석만큼은 허구연을 능가한다. 물론 허구연도 투수 출신이지만 특히 김선우의 분석은 투수 심리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해설이어서 한층 신뢰가 간다. 

해설자로서 허구연의 장점은 가령 투수 경우 던지는 볼의 성격, 구질, 투수의 폼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타자의 경우 타석에서의 태도, 타격폼 등을 디테일하게 분석하는데, 이를테면 예술작품을 분석할 경우 인상적인 내용 분석이 아니라 형식분석 쪽이다. 그런데 송재우는 메이저 소식 전하기 위주여서 그냥 메이저 정보를 알고싶다면 몰라도 게임 그 자체를 깊이 알기엔 부족하다. 그밖의 선수 개인에 관한 데이터, 정보는 허구연이나 송재우 모두 별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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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사회 비판적이라고해서 좋은 사람,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또한편 친절, 배려, 신뢰,사랑과 같은 구체적 삶의 태도가 진정한 진보를 식별하는 지표가 된다고 믿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진정한 진보라는 표현도 싫고, 무엇보다 이놈의 '진보'라는 표현 자체가 품고 있는 고약한 지점, 정치적 상상력보다 윤리가 앞선다는 암묵적 전제 자체가 싫다. 먼저 사람이 돼야지 같은 개똥철학에서 진보/보수의 수사법은 과연 얼마나 멀리 있을까?

 

이 진보/보수라는 윤리적 표현, 백번 양보해도 '정치공학'적 표현을 정치적 가치 판단이라고 호도하는 모든 표현, 행동, 권유가 나는 몹시 불편하고 당황스럽다. 성격이 개차반이라도 노동의 가치, 노동자라는 주체를 복원하거나 방어하는데 힘쓰는 사람은 좌파고, 안 친절, 안 배려 안 사랑해도 여성의 주체화에 기여하고 있다면 여성주의자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진보/보수의 구분법은 정치적으로 졸라 무기력한데, 정치공학적 게임으로 이를 벌충하는 정치적 지진아들에게 제공되는 환타지에 가깝다. (물론 그 환타지 게임은 다양한 대의 정치의 이해관계를 위해 기획되었지만, 결정적으로 어떤 정치 주체도 생산하지 못한다) 그 비슷한 버전으로 휴머니즘 등등 여러가지 자매품들이 있고.

 

정치는 상식, 도덕 같은 윤리에 개입해 그것이 다양한 이해관계의 메트릭스라는 사실을 추궁하는 데 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면 여성주의도, 맑시즘도 사회적 관성, 상식, 도덕, 심지어 공동체의 윤리에 개입할 때 비로소 정치이고, 정치적 발화다. 그런데 진보/보수라는 수사는 이 같은 정치적 상상력, 의지를 너무자주 훼손한다.(...) " 

                                                                                          - 이글루  A cousin of human being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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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 '여.순항쟁'과 '4. 3 항쟁'에 대한 전문가들의 강연과 책자를 접하면서 역사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길사에서 간행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송남헌의 <해방 3년사> 등을 읽으면서 그동안 애매하게 알았던 해방 전후사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새롭게 안 사실인데, 해방 전후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및 한국전쟁의 기원의 첫 번째 요인은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물론 한국전쟁의 기원과 '여.순항쟁', '제주 4. 3항쟁' 모두 그것이 촉발된 계기는 여러 복합적 요인일테지만, 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친일파 청산이 무산된 점을 꼽는다. 친일파 문제와 관련해서 김지석의 칼럼 <시대의 담론>(한겨레신문)중 일부를 인용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좌우합작 운동은 1947년 초 결국 좌초한다. 의견 대립의 핵심 사안이 토지개혁과 친일파 처벌이었던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특히 친일파 문제는 이후에도 민주주의 발전에 최대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된다.

(...) 신탁통치 문제는 단독정부 수립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게다가 친일 세력은 힘들 게 없는 반탁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민족주의자로 변신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즈음 우리 의도와 무관하게 미-소 냉전이 시작될 조짐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남쪽 정치세력이 그 분위기를 활용하며 분단을 고착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잘못이다. 이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왜곡해 반탁운동을 벌인 것에 못잖게 외세 의존적이며, 이런 분단 고착화 추세의 연장선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단정이라는 한계 속에서 법적인 형태로 분명한 민주공화국이 출범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행태는 애초부터 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194810월 여수·순천사건을 계기로 한 국가보안법 제정과 무리한 확대 적용, 소장파 의원들을 제압하기 위한 19495~8월 국회프락치사건, 19496월 친일 경찰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 습격, 19494월 국민보도연맹 결성과 한국전쟁 발발을 계기로 한 연맹원 학살 등은 전형적인 독재정권의 모습이다."

'빨갱이'라는 단어의 기원 역시 배후에 민족 갈등을 의도한 일제의 농간으로 비롯되었고 - 당시 사회주의자는 일제에 항거한 지식인들이다 -  이 단어가 우리사회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여순항쟁' 때부터다. 특히 여순항쟁은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을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친일파 청산의 실패는 이승만 정권때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이들은 친미,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보수정권의 이데올로기, 혹은 권력 유지를 위해 '빨갱이'라는 단어를 우리사회에 고착화시키는데 골몰했다.

어제 문 대통령의 3. 1절 기념 경축사에서 관심을 끈 대목은 일제하 친일 청산의 무산과 그로인한 '빨갱이'라는 단어의 유래, 또 이것이 오늘날 어떻게 변형되어서 계속 판을 치고 있는지 언급한 점이었다. 

오늘자 한겨레신문 역시 이 점을 부각하고 있는데, 특히 조선일보 선대 사주 방응모와 동아일보 선대 사주인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거론하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오늘자 한겨례신문의 사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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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1운동 100주년 경축사에서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하는 과정에서 빨갱이란 말이 생겨났다’며 ‘좌우의 적대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정치적 공격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분단 현실의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매우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분단과 냉전은 친일파들이 활개칠 수 있는 음습한 토양을 제공해왔다. 최근의 ‘5·18 망언’은 물론 역대 선거 때마다 되풀이돼온 색깔론은 곳곳에 뿌리박은 친일 잔재의 또다른 몰골이다. 이런 색깔론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친일 청산은커녕 친일파의 후예들이 정치·언론·군·학계 등 우리 사회 기득권 체제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미를 폄훼하는 뉴라이트적 건국 사관이 판쳤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일부 보수언론이 여기에 중심적 구실을 하고 있는 사실은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조선일보>의 선대 사주 방응모와 <동아일보> 김성수는 정부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2009년 11월까지 4년여 조사 끝에 확정한 1006명에 포함됐고 후손들이 소송까지 걸었으나 대법원은 이들을 친일행위자로 확정 판결했다.

그럼에도 두 언론사는 1985년 서로의 친일행적을 둘러싸고 이전투구의 논쟁을 벌였을 뿐 한번도 국민과 독자 앞에 진지하게 사죄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계기마다 한때의 ‘항일’만 부각하고 홍보할 뿐 ‘친일’의 부끄러운 역사는 여전히 감추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섣불리 ‘김성수 재평가’ 운운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선대의 ‘항일’ 공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발언에 신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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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영화가 아니다!

               

어떤 지인이 그런다. "문재인이도 결국 똑같여~  바꿔봐야 그게 그거라니께". 당장 경제 지표가 별로이니 문제인이고 뭐고 다 똑같다는 것. 그러면서 추가 한 마디. "주변 사람 심으려다 이렇게 된거여~" 

살림살이만 펴지면 누가 정권 잡아도 문제될게 없는겨? 미사일이 공중을 날든 말든, 일촉즉발 총부리를 겨누든 말든 내 살림살이 펴지면 만사형통이라는겨?  나만 부자되고 잘먹고 잘살면 그만인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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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결국 6월 12일 현지시간 9시로 최종 결정되었다. 한때 결렬 직전까지 간 바있기에 이제 회담결과는 우리뿐 아니라 지구촌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당시 회담 결렬 이유로 트럼프 최측근인 볼턴과 펜스를 향한 김계관, 최선희의 강성 발언을 지목한 적 있다. 나중에 이는 표면상 이유고 실제는 미국내 사정임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볼턴과 펜스는 트럼프의 강성 측근이라는 점에서 차후 협상에 따른 불안감을 내장하고 있다. 


나는 일단 이번 싱가포르 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의 통큰 결단에 따라 일괄타결되지 않을까 희망적인 예상을 해보는데, 설사 타결되더라도 세부적인 문제에서 단계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필연적으로 재협상이 이뤄질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걸림돌은 볼턴과 펜스 같은 트럼프의 강성 측근들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려주는 기사를 최근 발견했다. 


6월 4일자 한겨레신문 칼럼 중 <북-미 데탕트의 진정한 장애물>이라는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이 글인데, 그는 이 칼럼에서  북-미 데탕트의 장애물로 댄 코츠 국가정보국 국장,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등 워싱턴의 외교 정책 기득권 층을 지목한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데탕트가 이뤄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외교 정책 기득권층이다. 1970년대 중국과의 화해 과정에선 헨리 키신저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강력한 주도로 대외 정책 기득권층의 무조건적인 반공산주의 정서를 극복했다. 엄청난 이익을 기대하는 미국 재계의 지지도 전문가층의 저항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렇다면 중-미 데탕트의 헨리 키신저가 없는 이번 북-미 데탕트는 어떨까. 존 페퍼는 한국의 존재를 거론하면서 "한국은 위험을 떠맡거나, 북한과의 관여가 실용적 측면에서 효과가 있음을 보여줄 수 있고, 미국 기득권층을 설득할 수 있다. 한국의 도움이 있다면, 미국의 대외 정책 기득권층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지지 쪽으로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 고 지적한다. 


며칠전 문대통령이 트럼프와의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뜬금없는 회담결렬 소식이 전해지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기다렸다는듯 '코리아패싱'과 '왕따'를 들먹이면서 '운전자론' 폐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존 페퍼의 칼럼에 따르면 오히려 문대통령의 운전기술과 역활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과장일지 모르겠는데, 나는 장차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운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활약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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