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작은 목표라도 이루기 위해서는 덮어놓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을게 아니다. 우선 그것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면밀히 따져본 후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제 60중반 나이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세상사가 내 생각대로라면 뭘 못하겠냐만 현실은 냉정하다. 당장 눈앞의 고갈되는 체력이며 시간, 사그라드는 열정을 어쩔것인가. 그러니 매사 함부로 결정할게 아니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일이다.

 

는 지금은 순전히 클래식만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몸을 담고 있지만 과거에는 경음악 위주의 빅밴드를 한적이 있다. 그 시절 레인보우악단 동료였던 C형은 요즘 직장 일이 바쁘다보니 트럼펫을 거의 불지않는다고 했다. 악기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그 좋은 취미생활을 왜 안 하는지, 정작 본인은 무심한데 내가 더 몸이 달았다. 엊그제 마침 아리울 빅밴드에서 활동하는 학교 후배 G, 그리고 C형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 후 G의 권유로 커피는 아리울 연습실에서 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자연스럽게 C형 쪽으로 화제가 돌아갔다

 

연주를 다시 시작해봐라. 점점 나이드는데 이 보다 좋은 취미가 어데있겠냐. 좌고우면할 것 없이 당장 시작해라 어쩌고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분위기에 편승하면 감정이 훅~ 하는 급한 성미인지라 나는 C형에게 당장 시작하라고 다그치며 제안했다. 내가 지금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있지만 만약 C형이 아리울에 나간다면 따라가서 연주 괘도에 오를때까지 도와주마고 했다

 

제안은 순전히 C형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점잖은 클래식과 달리 발랄하고 감각적인 경음악을 연주하는 아리울빅밴드에 대한 나의 호기심도 한 이유다. 그러니까 표면에는 C형을 내세웠지만 내심 레인보밴드에 대한 향수가 발동했다. 두 군데서 연주활동을 하면 어때? 가능할까? 아마 가능할 것이다. 나의 장점인 뜨거운 열정, 불도저 정신이 있잖은가. 그러니 결국 내 제안은 C형만이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다그친 탓인지, 죽어라 버티던 C형의 생각이 결국 바뀌었다. 좋다. 내일 연습부터 당장 나가겠다. 잘 됐네, 그럼 내일 아리울에서 함께 만납시다. 뭐 일이 이렇게됐던거다. 그런데 막상 귀가해서 생각하니 은근히 고민이다. 만약 아리울에 나가면 양쪽 모두에서 연주를 해야하는데 그게 가능한가? 당장 내일 급한건 아리울 쪽 연주였다.

 

귀가 도중 아리울 트럼펫 주자인 L선생을 급히 찾았다. 내일 연주할 악보를 미리 봐둘까해서다. <아바 메들리> <베싸메무쵸> 등 모두 네 곡이었다. 급히 복사를 마친 후 집에 오자마자 트럼펫부터 꺼내들었다. 한시라도 연습이 급하다. 생각보다 곡이 쉽지 않다. 몇 번 불어보니 내 주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음 선율이 많다.

 

트럼펫을 연주하자면 어쨌거나 힘을 빼고 호흡만으로 연주해야하는데 나 같은 아마추어가 고음부를 연주하려면 어쩔수없이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면 어쩌다 소리는 낼 수 있어도 찌그러진 소리가 난다. 매끄러운 연주가 안 되는 것이다. 연습 부족이겠지. 몇 번 더 불어봤지만 시원잖다. 당장 내일 연주가 걱정이다.

 

단원들은 분명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나의 연주를 큰 기대감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고사하고 당장 곡 소화가 안 된다. 설사 한다하더라도 억지 소리를 내거나 별스럽지 않은 연주를 할 것 같다. 걱정은 또 있다. 아무리 C형을 위해서 한시적으로 아리울에 나간다지만 어떻게 몇 번 나가고 그만둬? 아리울 단원들은 제발로 찾아온 나를 단원으로 여길게 뻔한데 도중에 무슨 수로 그만두냐말이다. 미처 여기까지 생각을 못했다. 약속을 취소할까 아니면 몇 번 나가다 그만둬야하나. C형 생각한답시고 자청한 일이 예상치않게 고민을 안긴다. 경솔했나?

 

물론 무리하면 양쪽을 오갈수 있지만 이래서는 두 곳 모두 부실해질게다. 고심 끝에 결국 약속을 포기하고, 차후 모임은 석조, 칸투스, 독서회만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어설픈 열정, 불도저 같이 밀어만 붙이는 단순한 성미라 결정, 후회가 모두 한순간이다. 어쨌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좀 신중히 처신하도록 하자. 그나저나 실망시킨 C형과 후배 G에게 근일새 술 한 잔 사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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