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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인 아침, 뒷뜰 손뼘만한 텃밭에 노란 배추꽃이 피다. 배추꽃, 하고보니 배추가 꽃이었나?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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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두어 평쯤되는 뒷란 텃밭에 배추를 심었다.  밭도 아니고 화단도 아닌 어중간한 곳이라 오래 돌보지 않던 곳이었다. 40여포기 임피 농협에서 배추 모종을 가져왔다. 면적이야 크던작던 과정은 별차이가 없다. 구시장에서 사온 검정비닐 씌우고 영양제도 주고.....,시골에서 자란 아내는 눈썰미있게 작은 밭고랑도 내고, 모종 주변을 흙으로 북돋아주기까지 했다.  

농사가 쉽지 않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40포기남짓 텃밭이 무슨 농사일까만은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게 아니었다. 가물면 물줘야지, 시도때도 없이 자라는 풀 뽑아야지......비만 내렸다하면 풀들이 쑥쑥자랐다. 뒷뜰, 한뼘 햇빛마저 사라지자 가을이 깊게 익어갔다. 덩달아 배추도 포기가 풍성해졌다. 어렵쇼! 제네들좀 봐, 잎사귀가  제법 푸르네, 덩치도 커졌고. 제법 배추밭 테가 났다. 아내와 나는 걸핏하면 그리운 연인 기다리듯 뒷뜰로 달려갔다.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자 아내의 얼굴에 희희락락 미소가 번졌다.  

- 올겨울은 저걸로 김장하자구요.

고시텔생이 있으니 100여포기는 해야 된다. 기껏 40포기로는 어림없지만, 암만 그래야지~ 호기롭게 맞장구를 쳤다. 올 김장은 우리 배추로 꼭 해보자구. 아내와 나는 굳게 결의까지 했다. 시나브로 가을이 가고 초겨울로 접어들자 배추잎에 벌레들이 생겼다. 하나둘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꼬물거렸다. 아내와 나는 일어나자마자 이쑤시개를 들고 텃밭으로 내달렸다. 희안한게 해만 뜨면 귀신 같이 벌레가 사라졌다. 워낙 작은 크기라 잘 보이지도 않고, 보호색이라 돋보기를 써야 겨우 보였다. 한 마리, 두 마리, 제법 많았다. 비가 내리면 배추도 커지고, 벌레들도 함께 몸집이 커갔다. 하루게 다르게 숫자도 많아졌다. 처음엔 녹색이더니 회색빛으로 굵어졌다. 그새 진녹색 짙푸르던 배추잎도 숭숭 구멍이 뜷리고 줄기가 앙상해졌다. 처음엔 한 두 포기더니 갈수록 상처투성이 구멍난 배추가 늘어났다. 큰일이었다.   
아내는 새벽이면 쏜살 같이 텃밭으로 달렸다. 몇 십포기 배추키우기가 이렇게 힘든줄 몰랐다. 벌레잡는다고 허리를 꾸부리니 점점 통증이 심하다고 했다. 실은 나도 그랬다. 결국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푸념이 나왔다.

- 까짓 몇 십 포기 사다먹지 뭐.

배추벌레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농약을 뿌리고 싶지만, 지난 두어 달 쏟은 정성을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와중에 풍성히 자란 푸르른 배추가 불쌍했다. 열심히 잡아보자구, 허리 아프다는 아내를 독려하며 아침이면 텃밭으로 갔다. 좋다. 너희들이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해보자. 벌레와의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겨우 40포기지만 고생한걸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팽팽한 긴장이 계속될무렵....

아내와 함께 2박3일 완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무슨 청승일까, 여행지에서도 은근히 구멍 숭숭뜷린 배추가 걱정이었다. 아이고, 징글맞은 배추벌레 우리 아까운 배추 다 갉아먹겠네. 배추잎 사각거리는 소리가 그 멀리까지 들려오는듯했다. 아내와 나는 배추 걱정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귀가하자마자 뒤란 텃밭부터 살폈다. 어허~ 불과 사흘인데 처참했다. 온곳에 구멍뚫린 배추가 나뒹그러져있었다. 더이상 볼게 없다. 늑달 같이 구시장으로 달려갔다. 좀 독한놈으로 주슈~ 배추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놈의 배추벌레만 사라진다면...... 한 뼘 텃밭에 물에 탄 농약을 마구 뿌렸다. 쥑일놈의 배추벌레 너죽고 나죽자, 사정없이 뿌려댔다. 제풀에 손가락만한 배추벌레 몇 마리가 꼬물꼬물 기어나왔다. 죽어라 이놈~ 그제야 화가 좀 풀렸다. 뒤란 맨땅에 털썩 주저앉은 우리는 잿더미 불난 집이라도 되는양 하얗게 농약가루 묻은 배추밭을 바라봤다. 저것 키우느라 고생 많았는데 하루아침에 거덜나는구나. 아, 인생이고 배추고 별것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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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분투했던 가을은 그렇게 지나가고, 어느새 초겨울 눈발이 날렸다. 슬슬 김장을 할 때가 되었다. 추워지기 전에 김장을 해야겠지? 발산 단골 농가에 절임배추 100포기를 주문했다. 아~ 40포기는 우리것으로 하려고했는데, 아쉬웠다. 꼭이 김장비를 절약해서라기보다 직접 키운 배추로 하면 얼마나 대견스러울까. 하지만 이미 기차는 저멀리 떠나버렸다.  

농약뿌린 배추면 어때 잘 씻으면 되지. 시장에 나온 배추라고 다 농약 안 쳤을까. 포기가 탐스러운데 농약 안 치고 저렇게 키울리 만무하다. 아내와 나는 애써 위안했다. 문득 텃밭 볼품없는 패잔병 배추가 떠올랐다. 별것 아니지만 몇 포기 뽑아다 함께 해볼까? 텃밭 배추를 보자 사연 많던 지난 가을이 떠올랐다. 너희들 참 애썼다. 벌레들 틈바구니에서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오종종하니 손바닥만한 배추들이 역전의 용사처럼 대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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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고시텔 학생 등교 시킬때는 으레 FM방송을 켠다. 이즈음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봄'>이 자주 흘러나온다. 비단 음악뿐일까, 사위가 온통 봄냄새로 가득하다. 우리 집 봄은 독서실 계단에서 시작된다. 계단 벽돌 틈틈이서 얼굴 삐죽이 내민 풀잎들, 바야흐로 독서실 화단 연분홍 철쭉도 화사하게 피었다. 지난 주 아내와 함께 대야장에서 왕대추 한 그루. 대봉시 한 그루, 자두 나무 한 그루를 사왔다. 고놈 배추벌레 보기싫어 배추는 포기하고 대신 유실수를 심기로한거다.

겨우내 팽개쳤던 텃밭에 풀포기가 마구 자랐다. 지난 가을 배추벌레, 농약 살포로 몸살 앓던 배추도 풀과 함께 모두 뽑아버렸다. 모처럼 뒤란 텃밭으로 갔다. 그새 미뤘던 유실수를 심어야지. 비 개인날, 봄 햇살 화사하니 바람까지 간지럽다. 아지랑이 너울너울, 순간 눈에 들어온 노란 물결, 노란 꽃이파리~ 텃밭 귀퉁이, 풀과 함께 뿌리 뽑힌 배추에서 노란 꽃이 피어났다. 잔뿌리 몇 개 애써 땅에 의지하고 버틴 노란색 배추꽃. 아름다워라~ 볼품없던 네가, 마구 뽑아버린 네가 이렇게 예쁜 꽃이 되다니. 반가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비록 장미가 아니라도, 기품 가득한 수국이 아니어도, 그래 분홍빛 화사한 철쭉이 아니면 어떠랴! 지난 가을, 그리고 겨울내내 뿌리채 뽑힌 신세였지만 끝내 이겨내고 노란색 새생명으로 피아났구나. 

비개인 아침, 뒷뜰 손뼘만한 텃밭에 노란 배추꽃이 피다. 배추꽃, 하고보니 배추가 꽃이었나?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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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읽는데 한계가 있으니 욕심껏 사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느정도가 적당할까. 사상서나 두툼한 문학서들은 예외겠지만 일반적인 책들은 대략 3일~ 5일이면 읽을 수 있다. 따라서 한 달에 10권정도 구입하면 무난하겠다. 하지만 이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도대체 절제를 모르는 이 지독한 책 욕심, 지적 호기심을 어찌할것인가. 시간적 여유나 독해력으로보면 도저히 불가능한데도 대책없이 사고 또 산다. 서가에는 빈 공간이 없어 틈새에 찔러넣는다. 이윽고 서가 귀퉁이나 책상에도 쌓여간다. 서가, 책상, 서재에 널부러진 책, 책. 책들.....

 

 언제 읽을지, 읽는다고 이해가 되긴 할지,  호주머니 사정은 어떤지, 한데도 이것저것 따질것 없이 일단 사고본다. 최근 구입한 네 권 짜리 칸트선집이 그런 경우인데,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더라도 언젠가 읽어낼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구입부터하고 보는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하튼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지금 당장 안 읽어도 그냥 바라만봐도 좋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 한 번쯤은 했을법하다.

 

애초 발단은 왕은철 교수가 엮어 펴낸 <조지프 콘래드>(동인) 때문이었다. 며칠전 우연히 한길문고에서 호주 태생의 작가이자 비평가인 클라이브 제임스의 에세이집 <죽음을 이기는 독서>(민음사, 쏜살문고)를 발견했다. 독서가 죽음을 이긴다? 제목이 묘하게 끌렸다. 백혈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저자가 병상에서 쓴 에세이집인데, 조셉 콘라드의 소설을 세 번이나 언급했다. 콘라드라, 그렇잖아도 언제 시간되면 읽어보려던 차였다. 나 역시 반평생을 뱃생활을 한지라 선장생활까지 한 콘라드의 전력만으로도 족히 끌릴 수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전작을 읽어? 이미 그의 소설 몇 권과 연구서 등을 갖고있는 터지만, 혹 다른 번역서가 더 있을지 모른다. 중고도서 전문 '북코아'를 검색하던 중 왕은철 교수(전북대 영문과)가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을 엮은 <조지프 콘라드> 를 발견했다. 특이한것은 양장본 400여쪽에 이르는 이 책의 정가가 28,000원인데비해 판매가는 불과 7,000원이었다. 아무리 중고도서라지만 명색이 학술서인데 이렇게 저렴할 수 있나? 그러다 이 책을 판매하는 북코아의 '나눔마켓책방'이라는 서점에 동인출판사에서 간행한 영미문학 관련서들이 상당수 있는 것까지 알게되었다. <조지프 콘라드>뿐 아니라 대부분의 책들이 전문 학술서치고는 너무 저렴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나눔마켓'은 이곳저곳 기증받은 도서의 판매 수익금으로 사회봉사를 하는 기독교 봉사단체였다.  

 

각설하고. 나눔마켓의 보유도서 중 내 관심은 딱 하나. 영미문학 전문 출판사인 '동인'의 간행 도서뿐이었다. 몇 권만 구입하지 하다가 권 당 평규가격이 불과 4,000~5,000원 내외라니 도저히 자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꾹 참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꼭 읽을 책 몇 권만 구입하자. 아니지 쓸만한 책이면 나중에 읽기로하고 그것까지만 구입하자. 아니지....이것만, 딱 이것 한 권만만 더 어쩌고 하면서 슬슬 장바구니를 채워나갔다. 실탄은 충분했다. 지난 달 지인에게 중고 트럼펫을 넘기고 받은 일금 백만 원이 착실히 통장에 있는터였다. 여하튼 구입은 나중 문제고 일단 장바구니에 넣고보자. 급기야 장바구니 옆구리가 터지고 쭈그러들건만 개의치 않고 넣고, 넣고 또 넣는다. 이쯤이면 됐지? 한것이 결국 아래의 목록이다.  

 

대부분 신간서나 다름없는 새 책들 총 100권에 구입비 47만원. 권당 4,700원이니 문고판 한 권 값도 안 되는 미안할정도로 저렴한 가격이다. 에라 모르겠다, 장바구니 클릭! 주문한지 불과 이틀만에 책이 도착했다. 대형 박스로 세 개. 30중반인 아들 녀석이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이게 대체 뭐여~ 책 아녀? 임마, 너 아뭇소리 말아. 엄마 알면 나 맞아죽는다.

 

방에 풀어놓으니 책 부피가 어마무시했다. 아흐~ 판타스틱! 무지개, 서산에 걸린 오색빛 찬란한 무지개~ 이게 꿈이여 생시여~ 내 나이 60중반이니 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건만 철부지 마냥 설레이고 또 설레였다. 

 

그나저나 한 두 권도 아닌 이 많은 책들을 읽어낼 수는 있을까? 과용한건 아닐까? 아내가 알면 어떻게하지? 피 같은 돈을 함부로 써버린건 아닐까? 아이고, 아내에게 커피 한 잔도 못사면서 이게 뭔짓이란 말인가.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내린 마지막 결론. 에이, 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데, 뭔 소리여. 지금 즐겁고 행복하면 되지. 평생 마누라, 자식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이 지경인데 이깟것으로 무신, 게다가 트럼펫 판 돈 아닌가. 나팔 모셔놓는거나 책 모셔놓은거나 그게 그거지 뭐. 여하튼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다. 그나저나 이 책들 언제 다 읽지? 그러다 다시 내린 결론. 

 

아니, 샀다고 다 읽으란 법 어딨남? 내키면 읽고 안 내키면 안 읽고, 그냥 쓰다듬어도 좋고, 바라만 봐도 좋은 그대, 사랑스런 그대! 슬쩍 슬쩍 몇 쪽 읽어보다, 이 책도 펴보고, 저 책도 펴보고.....숲 속 산책하듯 느릿느릿 걸으면서 이 책 한 문장, 저 책 한 문장 음미하면 또 어떤가. 나는 지금 어린아이가 무지개 바라보듯 방 가운데 쌓인 책들을 바라보며 설레이고 설레일뿐이다. 다만 바라건대, 무심하고 덧없는 세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만, 초라한 내 머리 한 올 한 올 백발로 덮여갈지라도 한 권이라도 더 읽고싶은 욕망이, 하나라도 더 알고싶은 지적 호기심이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항상 솟아오르기만을 간절히, 간절히......

 

1. 왕은철 외 <조지프 콘래드> 동인

2. 황은주 <윌리엄 포크너>

3. 전남대영미문학연구소 <더블린의 하프(아일랜드문학읽기)>

4. 소수만 <어니스트 헤밍웨이>

5. 버지니아 울프 학회 <버지니아 울프. 2>

6. 권성진 <탈식민 정치학(D. H. 로렌스의 소설)>

7. 변재길 <제임스 조이스 모더니즘 식민주의(율리시즈)>

8. 윤영필 <D. H. 로렌스의 소설과 타자성>

9. 조일제 <D. H. 로렌스 문학과 종교적 상상력>

10. 심상욱 <J. D. 샐린저 생애와 작품>

11. 권오경 <현대 미국소설의 이해>

12. 김구슬 <T. S 엘리엇과 브레들리 철학>

13. 정혜옥 <나타니엘 호손의 단편과 주홍글자>

14. 문학과영상학회 <영미문학 영화로 읽기>

15. 로라 젭슨 <고전에서 셰익스피어로> 동인, 이영순 역

16. 고영란 <하디와 로렌스 다시읽기> 동인

17. 루홍스, 슈샤오밍 <차이나 시네마(중국영화 100년의 역사)> 동인, 김정욱 역

18. 장정호 외 <여행하는 이론(포스트모더니즘, 문학비평)>

19. 양영수 <산업사회와 영국소설>

20. 공영수 <미국소설 다시읽기>

21. 변재길 <영상시대의 문화코드>

22. 박정미 <변혁기의 종교체험과 현대소설>

23. 윤천기, 강관수 <영미소설과 상호텍스트성>

24. 이순구 <조지 엘리엇과 빅토리아조 페미니즘>

25. 민태운 <조이스 문학강의/젊은 예술가의 초상>

26. 배종언 <조셉 콘라드의 문학세계> 경북대출판부

27. 장 프랑스와 리오타르 <말로(위대한 작가)> 책세상, 이인철 역

28. 제프리 메이어스 헤밍웨이/2<책세상>, 이진준 역

29. 베른트 비테 <발터 벤야민> 역사비평사, 안소현 외 역

30. 나영균 <조셉 콘라드 연구> 이대출판부

31. 김붕구 <보들레르> 문학과지성사

32. T. S 엘리엇학회 <T. S 엘리엇 시, 사회 예술>

33. 신겸수 <르네상스 영국희곡 표지연구>

34. T. S 엘리엇학회 <T. S 엘리엇 시극>

35. 나희경 <자연과 문명의 분계>

36. 최영승 <시극작가로서의 엘리엇>

37. 강문애 <실비아 플라스 신화시 연구>

38. 양균원 <1990년대 미국시의 경향>

39. 강옥선 <19세기 영국 여성의 글쓰기>

40. 신원철 <20세기 영미시인 순례>

41. 장정희 <SF장르의 이해>

42. 안중은 <T. S. 엘리엇과 상징주의>

43. 고전르네상스드라마학회 <그리스 로마극의 세계> 2

44. 한국현대드라마학회 <뉴 밀레니엄 시대의 영미 극작가 동향>

45. 워즈워즈 <묘비명 글쓰기> 동인. 김명복 역

46. 한국문학과종교학회 <문학 연구의 종교적 상징>

47. 이향만 <미국 소설과 영화의 만남>

48. 정진농 외 <미국 소수민족 문학 : 중심에서 주변으로>

49. 김성곤 외 <미국문학으로 읽는 미국의 문화와 사회>

50. 피터 차일즈 <현대시에 비친 20세기> 동인, 최영승 역

51. 수잔 바스넷 <번역> 동인, 윤선경 역

52. 로만 알바레즈 <번역. 권력. 전복> 동인, 윤일환 역

53. 루이즈 폰 플로토우 <번역과 젠더> 동인, 김세현 역

54. 수잔 바스넷 <번역의 성찰> 동인, 윤선경 역

55. 이은숙 <번역의 이해> 동인

56. 레이너 슐테 외 <번역이론> 동인, 이재성

57. 장정희 <빅토리아 시대 출판문화와 여성작가>

58. D. H. 로렌스 <생명의 불꽃 사랑의 불꽃> 동인, 허상문 역

59. 이경순 <서사와 문화>

60. 존 드라카키스 <셰익스피어 비극> 동인, 최영 역

61. 디오니소스 드라마연구회 <셰익스피어 현대영미극의 지평>

62. 김미경 <셰익스피어와 여성>

63. 박우수 <셰익스피어와 인간의 확장>

64. 김한 <셰익스피어의 인간과 세상 이야기>

65. 홍기영 <스토리텔링으로 본 문학과 인생>

66. 스티픈 앨 해리스, 글로리아 플래츠너 공저 <신화의 미로찾기. 2> 동인, 이영순 역

67. 이영철 <아프리카계 미국문학의 노예서사>

68. 김성환 <에드워드 2>

69. 조애리 <역사속의 영미소설>

70. 영국르네상스 드라마학회 <영국 르네상스 드라마의 세계> 2

71. 새한영어영문학회, 부산대인문학연구소 공저 <영문학 연구의 최근 동향>

72. 김희진 <영화로 읽는 셰익스피어>

73. 이경수 <예이츠와 탑>

74. 이순구 <오스카 와일드 데카당스와 섹슈얼러티>

75. 이정호 <욕망 그리고 텍스트>

76. 김봉률 <이안 와트의 소설발생론과 장르 정치학>

77. 스티븐 스테판쳅 <전후 미국시 평설> 동인, 최영승 역

78. 정형철 <종교적 이미지의 형상적 기능>

79. 이정호 <주이상스의 텍스트>

80. 김현아 <중심과 주변의 정치학>

81. 장정훈 <중심에 선 경계인>

82. 정헤옥 <찰스 브록덴 브라운 소설 연구>

83. 전남대영미문화연구소 <초국가 시대의 역사, 인종, 젠더>

84. 사공철 <토마스 하디의 소설과 시 다시 읽기>

85. 박은정, 박인찬 공저 <토머스 핀천>

86. 톨스토이 <톨스토이가 싫어한 셰익스피어> 동인, 백정국 역

87. 이현우 <한국 셰익스피어 르네상스>

88. 정문영 <해럴드 핀터의 영화 정치성>

89. 박익두 <호손과 역사의 시학>

90. 프랭크 터너 <예일대 지성사강의> 책세상, 서상복 역

91. 발터 뫼르스 <꿈꾸는 책들의 도시> 2권 들녁, 두행숙 역

92. 이규명 <영미시와 철학문화>

93. 이재호 <문화의 오역>

94. 이숙희 <아시아계 미국문학과 주체성>

95. 주혁규 <워스워즈와 시인의 성장>

96.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문학동네

97. 전홍실 <파운드 시와 시론연구>

98. 김현숙 <영미소설 속의 여성결혼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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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후반 수산학교 졸업무렵, 배 타려면 항해사 면허장을 취득해야 한다. 그런데 시험과목인 운용학이니 해사법규, 항해술은 도통 재미가 없어 철학, 문학, 역사 책만 줄창 읽어댔다. 와중에 밴드부까지 하느라 공부는 뒷전인채 허구헌날 나팔 불고, 엉뚱한 책만 읽어댔으니 대체 배를 타겠다는건지 말겠다는건지... 아니나다를까 면허장 시험에 그만 미역국을 먹고 말았다. 믿었던 장남이 시험에 떨어지자 아버지의 충격이 컸다. 이래선 안 되지, 작심하고는 삼학동 어느 골목집에 몇 달 공부하러 들어갔다.

슬레이트 집 방 두 칸에 여섯 남매. 도저히 집에서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 친구 분이 자신의 집 뒷방을 잠시 공부하라고 내줬던 거다. 삽작문을 열고 어깨를 구부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두어 평 크기의 응달집. 습기눅눅하고 하루종일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까짓 집이야 작고 허름하지만 대수인가. 어데서든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그래, 얼른 합격하고 원양어선을 타자. 백수인 아버지는 무능했다. 장남인 내가 가족들을 책임져야하는 가장 아닌 가장이었다. 그 시절은 나뿐 아니라 모두가 그랬고, 오로지 돈을 벌어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시험공부한답시고 집에 있던 장서를 모조리 리어카로 옮겼다. 700여권, 당시 학생 신분치고는 상당한 분량의 장서였다. 중고책에 낡디낡은 책이 대부분이라 보잘것 없었지만 한 권 한 권 소중한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하루종일 학교 주변 개울을 치우고 받은 일당, 명산동 어느 대서방에서 몇 달 심부름, 문화동 카디날 장갑공장에서 노가다로 뛰며 번 돈, 신문배달 등 갖은 고생과 땀으로 일군 책들이었다. 그러니 책이 아니라 내 분신이나 다름없어 평생을 동고동락해야할 운명이었다.   

학교 졸업하고 마침내 원양어선에 승선했다. 사회생활이 시작된거다. 출항하기전 낡은 배를 수리하고, 선원들을 모집할때까지 당분간 부산생활을 해야한다. 하숙집은 영도고 수산회사는 건너편 충무동이었다. 수산회사를 가려면 영도다리를 건너 자갈치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 시장을 지날 때마다 구수한 꼼장어 냄새가 허기진 뱃속을 괴롭혔다. 하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못해 단 한번 꼼장어를 먹어보지 못했다. 돈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책 사느라 호주머니는 먼지만 풀풀날렸다. 영도다리 아래 국밥집, 자갈치 시장 꼼장어를 맘껏 먹어보는게 늘 꿈이었다. 그러나 단호히 유혹을 떨쳐내고 그곳을 통과했다.

대신 발걸음은 자갈치 시장 골목길, 국제시장을 지나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향했다. 국밥 한 그릇, 교통비를 아껴 사모은 책들, 비록 먹지 않고 허기져도 책만 있으면 배가 불렀다. 사방에 책이 있으니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아, 평생 책만 읽고 살 수 있다면...그러나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얼른 돈벌어 가족들을 먹여살려야한다. 꼼장어, 국밥의 유혹 정도야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지만 책 욕심을 버리기가 너무 힙들었다. 그 시절, 그렇게도 먹고싶던 꼼장어를 마침내 딱 한 번 먹을 기회가왔다.   

출항을 하루 앞두고 군산에서 부모님이 내려오셨다. 그날 저녁 부모님과 함께 자갈치 시장에 갔다. 하지만 막상 꼼장어 맛은 기대했던것보다 별로였다. 실은 맛이 없다기 보다 오랜세월 집을 떠나려고보니 어린 동생들, 부모님 생각으로 그만 입맛을 잃었던거다

날이 새자 드디어 부산항을 출항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에 있는 장서를 어떻게 해야하나. 소중한 내 분신, 내 사랑하는 연인들...가슴이 먹먹했다. 모든것을 놓고 떠냐야한다니 눈물이 다 나왔다. 대서양 뱃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자나깨나 집에 두고 온 책을 잊을 수가 없었다.  

원양어선을 타면서도 오로지 집에 두고온 책 생각뿐이었다. 오죽하면 꿈에 다 나왔을까. 안되겠다싶어 편지를 썼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눈으로 보면 좀 위로가 되겠지. 이윽고 항구에 입항하자 편지와 함께 사진이 도착했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듯 반가웠다. 아쉬운대로 머리맡에 두고보니 조금은 서운함이 덜어졌다.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어데 한 두 가지인가. 늦은밤 동인천 역 어느 서점에 들렀다. 불문학자 김붕구 교수의 <보들레르> 연구서가 눈에 확~ 들어왔다. 책값을 따져보니 교통비까지 몽땅 투입해야 했다. 아, 어떻게해야지. 망설이던 끝에 결국 책을 사들고 연안부두 그 먼길을 두 시간 가까이 걸어 온 일. 결혼 후 아내 결혼 반지며 목거리 모조리 팔아 책을 사고 그것도 부족해 월급봉투 축내는건 예사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속이 없는 한심한 작자였다.

비록 이해할 수 없지만 장정이 아름다워 구입한 책도 있다. 어떤 책은 들고 다니는것만으로 자랑스럽고 폼이 났다. 평민사에서 출간한 R 프리덴탈의 <괴테-생애와 시대>가 바로 그런 경우다. 베이지색 커버, 견고한 하드케이스 장정이 고상하다못해 품위까지 있었다. 내 지적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지만 언젠가 읽을 수 있겠지 하며 구입한 책도 있다. 두툼한 분량의 제임스 조이스 전집이다.  

며칠전 한겨레 신간 서평란을 보니 칸트전집을 발간한다는 소식이 있다. 오래 전 아카넷에서 출간한 바 있는데 한길사에서 새 전집을 번역한다. 어렵쇼, 그렇다면 두 군데서 발간되는게 아닌가. 아직 한길사는 시작 단계고, 아카넷은 이미 상당수 출간되었다. 그리고 아카넷에서는 칸트전집 발간 15주년 기념으로 한정판으로 '칸트선집'을 출간한다는 소식도 있다. 선집은 모두 네 권인데, 전체 2,800여쪽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전집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어차피 칸트는 이해 안 될 책이니 그냥 소장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사진으로 봐도 멋진 칸트선집, 저걸 꼭 소장해야겠다. 한길사 전집은 나중으로 미루고...... 

사실 나는 철학에 흥미가 있어 딴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시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아쉬웠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원저를 읽어낼 능력이 없어 철학사나 철학개론, 2차 해설서나 읽는 정도였다. 다른 철학자에 비해 제법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칸트는 더욱 난해한 편에 속했다.

진즉 칸트 전공 1세대 격인 최재희 교수의 박영사판 <순수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을 구입했지만 아예 읽을 엄두를 못냈다. 지금까지 읽은 칸트라고해봐야 고작 이화여대 신옥희 교수가 번역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가 유일하고 2차 해설서 두 세권이 고작이다. 그래도 퇴직하면 도전해봐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던참에 오늘 아침 칸트전집 출간소식에 다시 발동이 걸린거다. 

내 비록 이해할 수는 없어도 머리맡에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족히 행복할 것 같다. 누가 아랴, 자꾸 쳐다보면 언젠가 본전 생각나서 읽고 싶을 때가 있을줄. 아니면 70, 80이 돼서 읽을수도 있겠지. 못읽으면 어때 서문만이라도 읽지. 일금 15만원. 하지만 저 돈을 만들려면 아내를 구슬려야한다. 옛날이야 반지팔고, 월급 축내고 내 맘대로였지만 이제는 단 한 푼 아내 허락없이 불가능하다.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다 오늘 아침, 결국 아내에게 눈치도 없이 칸트선집 어쩌고 하다 댓바람에 머퉁이만 먹었다.

- 이봐욧~ 당신 대체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요 뭐요, 하이고 옛날에 내가 순진했지, 이젠 어림 한푼 없수, 암만 어림도...

아내는 엔간한 건 다 너그러운데 고놈의 책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꿈을 버릴수가 없다. 60평생 경험에 의하면 뭔가 간절히 소망하면 반드시 이뤄진다. 글쎄 자랑인지 바보짓인지 몰라도 갖고싶은 책은 기어이 내 수중에 들어와야 직성이 풀린다. 당장은 살 수 없으니 그 옛날 원양어선에서 그랬듯 우선 사진이라도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 잠깐 위쪽 사진을 보시기 바란다. 어떤가. 아흐 저 푸른빛 은은한 감동이여, 아우라여~ 얼마나 기품있는가, 얼마나 아름다운 선집인가! 여하튼 내 기필코 칸트선집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때만을 떠올리며 나는 가슴 두근대는 소년처럼 오늘을 보낸다. 꿈이여 제발 이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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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목표라도 이루기 위해서는 덮어놓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을게 아니다. 우선 그것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면밀히 따져본 후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제 60중반 나이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세상사가 내 생각대로라면 뭘 못하겠냐만 현실은 냉정하다. 당장 눈앞의 고갈되는 체력이며 시간, 사그라드는 열정을 어쩔것인가. 그러니 매사 함부로 결정할게 아니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일이다.

 

는 지금은 순전히 클래식만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몸을 담고 있지만 과거에는 경음악 위주의 빅밴드를 한적이 있다. 그 시절 레인보우악단 동료였던 C형은 요즘 직장 일이 바쁘다보니 트럼펫을 거의 불지않는다고 했다. 악기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그 좋은 취미생활을 왜 안 하는지, 정작 본인은 무심한데 내가 더 몸이 달았다. 엊그제 마침 아리울 빅밴드에서 활동하는 학교 후배 G, 그리고 C형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식사 후 G의 권유로 커피는 아리울 연습실에서 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자연스럽게 C형 쪽으로 화제가 돌아갔다

 

연주를 다시 시작해봐라. 점점 나이드는데 이 보다 좋은 취미가 어데있겠냐. 좌고우면할 것 없이 당장 시작해라 어쩌고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분위기에 편승하면 감정이 훅~ 하는 급한 성미인지라 나는 C형에게 당장 시작하라고 다그치며 제안했다. 내가 지금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있지만 만약 C형이 아리울에 나간다면 따라가서 연주 괘도에 오를때까지 도와주마고 했다

 

제안은 순전히 C형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점잖은 클래식과 달리 발랄하고 감각적인 경음악을 연주하는 아리울빅밴드에 대한 나의 호기심도 한 이유다. 그러니까 표면에는 C형을 내세웠지만 내심 레인보밴드에 대한 향수가 발동했다. 두 군데서 연주활동을 하면 어때? 가능할까? 아마 가능할 것이다. 나의 장점인 뜨거운 열정, 불도저 정신이 있잖은가. 그러니 결국 내 제안은 C형만이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다그친 탓인지, 죽어라 버티던 C형의 생각이 결국 바뀌었다. 좋다. 내일 연습부터 당장 나가겠다. 잘 됐네, 그럼 내일 아리울에서 함께 만납시다. 뭐 일이 이렇게됐던거다. 그런데 막상 귀가해서 생각하니 은근히 고민이다. 만약 아리울에 나가면 양쪽 모두에서 연주를 해야하는데 그게 가능한가? 당장 내일 급한건 아리울 쪽 연주였다.

 

귀가 도중 아리울 트럼펫 주자인 L선생을 급히 찾았다. 내일 연주할 악보를 미리 봐둘까해서다. <아바 메들리> <베싸메무쵸> 등 모두 네 곡이었다. 급히 복사를 마친 후 집에 오자마자 트럼펫부터 꺼내들었다. 한시라도 연습이 급하다. 생각보다 곡이 쉽지 않다. 몇 번 불어보니 내 주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음 선율이 많다.

 

트럼펫을 연주하자면 어쨌거나 힘을 빼고 호흡만으로 연주해야하는데 나 같은 아마추어가 고음부를 연주하려면 어쩔수없이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면 어쩌다 소리는 낼 수 있어도 찌그러진 소리가 난다. 매끄러운 연주가 안 되는 것이다. 연습 부족이겠지. 몇 번 더 불어봤지만 시원잖다. 당장 내일 연주가 걱정이다.

 

단원들은 분명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나의 연주를 큰 기대감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고사하고 당장 곡 소화가 안 된다. 설사 한다하더라도 억지 소리를 내거나 별스럽지 않은 연주를 할 것 같다. 걱정은 또 있다. 아무리 C형을 위해서 한시적으로 아리울에 나간다지만 어떻게 몇 번 나가고 그만둬? 아리울 단원들은 제발로 찾아온 나를 단원으로 여길게 뻔한데 도중에 무슨 수로 그만두냐말이다. 미처 여기까지 생각을 못했다. 약속을 취소할까 아니면 몇 번 나가다 그만둬야하나. C형 생각한답시고 자청한 일이 예상치않게 고민을 안긴다. 경솔했나?

 

물론 무리하면 양쪽을 오갈수 있지만 이래서는 두 곳 모두 부실해질게다. 고심 끝에 결국 약속을 포기하고, 차후 모임은 석조, 칸투스, 독서회만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어설픈 열정, 불도저 같이 밀어만 붙이는 단순한 성미라 결정, 후회가 모두 한순간이다. 어쨌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좀 신중히 처신하도록 하자. 그나저나 실망시킨 C형과 후배 G에게 근일새 술 한 잔 사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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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인공의 섬세한 의식세계를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언어 형식으로 끌어낸 제임스 조이스. 어떤 특정한 사물을 보는 순간, 그 사물과 연관되어 잊혀져 있던 과거의 여러 사건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세계를 연상케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른 조이스의 소설을 통해, 한 등장인물의 심리적, 내면적 갈등,은밀한 개인적 사고와 가치관, 생각 따위들을 낱낱이 알 수 있습니다. <더블린 사람들>에 나타난 온갖 계층의 더블린 시민들. 더블린 시민들이 영위하는 무감각한 일상과 영혼의 마비, 도덕성의 상실을 그려낸 이 소설에서 조이스가 목표로 했던 것은 오랫동안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시달리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전통의 구습과 향수에만 매달려 있는 조국 아일랜드 국민들에 대한 염려와 비난때문이었습니다.

한데, 이러한 상황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소시민인 리오폴드 블룸의 사소한 일상과 행동을 통해, 그의 내면에 도사린 복잡하고 다면적인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면서, 전통과 권위에 끊임없는 도전을 감행한 <율리시즈>, 식민지 치하에서의 서울 서민층의 애환을 묘사한 박태원의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카페 여급과 실직 인텔리. 그런데 실직자들은 공부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취직을 하지 못합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실직자들에 대한 강한 연민은 개인만이 아니라 타인, 나아가 식민지 조국이 처한 가난과 슬픔으로 확대되게 됩니다.

쉼표를 계속 사용한 장거리 문체의 박태원.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여진 <율리시즈>의 마지막 장은 블룸의 아내 몰리의 의식에 의해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은 마침표없이 무려 40페이지가 계속해서 한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M씨의 <어제와 오늘 사이, 구보의 패러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오후2시에서 이틑날 2시. 블룸과 똑같이 하루동안 일어난 M씨의 내면풍경 들여다 보기.

1.어제의 블룸과 오늘의 구보가 어떻게 비슷한 느낌이 들 수 있는가를 골똘히 느낀다.(왜? 이들의 비교를 통해 나의 소설을 다시 상기해 보고 싶어서)

2.구보가 친구를 만날 때 마다 신맛 나는 홍차, 아니면 커피를 마시는 향수를 나도 느끼기 위해, 나도 (....) 아프리카의 표범같은 몸매를 한 그의 날렵한 육체를 사진으로 더듬으며, 고소해 한다.

3.따분한, 오직 도시 안에서만 맴도는 그의 지겨운, 일상의. 다람쥐 챗바퀴 도는 소설가의 하루를 그려 보다가, 아니야, 이건 뭔가 아니야, 하다가 조이스의 개성에 찬 문체가 선망하게 한다.

4.<소설가 구보의 일일>의 문체에서 나는 끊임없이 제임스 조이스의 흔적을 엿보고 또 엿보며 흐믓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신기하다. 국경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문제의식이 달랐을 터인데, 그들은 어째서 똑같이 쉼표를 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비슷한 문체에 도달한 걸까)

5.보리죽도 못먹던 그 시대에 구보가 누리던 (소설적 기법의?)근대의 세련됨은 어디서, 도대체 비롯된 것일까.

6.(나 역시 구보와 마찬가지로)물질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레스토랑에 들어가 선선히 음식을 시킬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다. (그런데도 내 문체는 왜 구보만도 못한걸까?) 7. 치기어리고, 속물적인 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느끼는 상대적 열등감은 어떻게 해야 보상받을까?

* ( )는 저의 상상력으로 채운 내용입니다. 제 생각이 맞나요? 저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오래전에 김종건 선생이 번역한 범우사판 전집을 구입해 놓고도 워낙 난해해서 몇 번 중도하차하고 말았지요. 그래서 여전히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정도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M씨의 재미있는 글을 계기로 한번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아무튼 제임스 조이스를 화제로 삼았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반갑습니다.요즘은 글쓰는 이들까지도 독서를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내내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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