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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인 나는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지만 평소 종교학, 신학서만큼은 가까이 하고 있다.  다음은 오늘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문동환 목사의 <예수냐 바울이냐>(*2015년, 삼인출판사)에 대한 조현 종교전문 기자의 리뷰인데, 연전에 M. 디벨류스와 H. 릿츠만이 쓴 <바울>(복음주의신학총서 17권)을 흥미있게 읽은 적 있어 문 목사의 책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문 목사의 바울 해석에 나는 공감하기도해서 한길문고에 책 주문을 한 상태다.   

 

참고로 문 목사는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민족주의 운동과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던 명동촌에서 성장하면서, 어려서부터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과 기독교 목사로서의 삶에 뜻을 두었다. 서울의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를 졸업한 뒤, 웨스턴신학교,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하트퍼드신학대학에서 종교교육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모교인 한국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서울의 수도교회에서 목회했다. 그러던 중에, 뜻이 맞는 청년들과 함께 ‘새벽의 집’을 열어 생명문화를 일구기 위한 공동체 생활을 했다. 한편 1975년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한국신학대학에서 해직된 뒤에, 해직 교수 및 민주 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실험교회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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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문동환 <예수냐 바울이냐>   -조현(한겨레신문 기자)

문동환(94) 목사는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만주의 대통령’으로 불릴만큼 존경 받던 규암 김약연이 함경도에서 130여명을 이끌고 정착해 민족 운동의 산실이 된 곳이다. 규암의 외조카 윤동주, 문 목사의 형 문익환, 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의 설립자 김재준, 향린교회 안병무, 경동교회 강원용 등 기라성 같은 개신교 인물을 낳은 그 땅이다. 

일제와 민족운동사, 민주화 등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온 선구자는 살아있었다. 허리는 굽었고 지팡이는 짚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한 기억력을 보였다. 그에게는 조선 유학의 대학자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기독교공동체를 일군 규암의 결기가 살아 있었다. ‘문제 의식’과 ‘시대 정신’이 시퍼랬다. 

 

미 프린스턴신학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모교 한신대에서 재직중 유신독재정권에 의해 해직당했던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한때 정계에도 투신해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서울 당산동의 자택을 찾은 날은 마침 5·18 35돌이었다. 

  

 

 

문동환 목사.
 

                                                          문동환 목사

 

 

그가 이번에 <예수냐 바울이냐>(삼인 펴냄)는 책을 내놓았다. 바울은 예수를 생전에 만나본 적이 없지만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13권이 그의 저서로 이뤄질만큼 ‘기독교’라는 제도 종교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인물이다. 로마 바티칸에도 초대 교황인 베드로와 같은 비중으로 바울의 상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문 목사는 ‘바울이 바로 예수의 본 정신을 망친 인물’이라고 질타하고 나섰다. 어떻게 이런 ‘과격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전쟁을 일으켜 이방인들을 죽이고 땅을 빼앗는 게 예수의 삶과 정신인가. 신대륙에 가서 원주민들을 몰살시키는 게 과연 예수의 가르침인가.”

 

노 목사이자 학자는 형용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유대주의자였던 바울이 가져온 ‘유대인들의 메시아신학’을 ‘첫번째 잘못 끼운 단추’로 꼽았다. 그로 인해 고아와 과부, 이방인 등을 가엾게 여기고 돌본 예수의 생명사랑이 사라지고, 강자의 종교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이다.

 

“기원 전 1300년 모세가 이집트의 바로왕 아래서 노예로 고통받는 이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300년간 그들의 야훼는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은 무력으로 역사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떠돌이(하비루)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올바른 가치를 향해 나아가 자기들의 역사를 스스로 창조하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왕이 없이 민중들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일구며 살았다. 바로 예수가 믿는 하나님 시대였다. 그러나 300년 뒤 절대군주인 다윗왕조가 등장했다. 그 왕조가 망하고 바빌론에 노예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메시아신학을 만든다. 야훼가 다윗을 사랑해 대대로 왕이 되게 하고,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를 보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만방이 이스라엘을 드높인다는 유대인들의 종교제국주의다. 야훼를 다윗 왕조의 수호신으로 만들고, 이방을 쳐부수는 전투의 신으로 만든 것이다.”

 

문 목사는 정작 예수는 메시아가 되기는 커녕, 메시아를 완전히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다윗 왕조도 철저히 거부했고, 그 때문에 유대교 대사제에 의해 로마군에 던져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바울 당시 로마는 유럽과 영국까지 장악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스스로를 신이라 했다. 신전을 짓고 이를 뒷받침하는 황제신학을 만들었다. 로마 문화를 잘 알면서도 골수 유대인이었던 바울은 유대인들의 예수를 메시아로 만들고, 황제신학체계를 이용해 기독교 신학체계를 만들었다. 아우구스투스를 이기기 위해 죽지 않는 부활과 심판론을 만들었다. 그때 ‘속죄’니 ‘중죄’니 하는 황제신학이 기독교에 들어왔는데, ‘대속 제물’이란 예수의 언행과는 맞지 않다. 예수는 제물을 못 바쳐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유대인들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며 마음을 편케 해주었다.”

 

그는 “바울신학을 배운 바 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서기 325년 기독교를 국교화한데는 하나님이 권위가 있을수록 국가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며 “그 이후로 신학은 ‘힘의 논리’인 권력과 야합해 식민지 쟁탈 전쟁에도 선교사들이 동참하게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문 목사는 “지금 한국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런 유대교”라고 한탄했다. ‘메시아와 왕조, 절대권력, 권위주의, 선민의식 등을 거부한 예수와는 정반대의 신학을 정립한 바울의 기독교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한명 한명의 생명력을 살려 역사의 주체로 세우려한 예수운동의 싹을 잘라버린 게 바울로부터 비롯됐고, 메시아만을 기다리며 죄를 고백만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갈 것이라는 ‘대망(기다림)교회’를 만들어, 민중(하비루) 주체 역사와 예수의 정신을 거세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은퇴 뒤 사회복지운동을 한 부인(페이문)의 고국 미국으로 되돌아갔던 그는 72살이던 그때부터 성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신학을 탐구해왔다. 그는 “새 책을 보고 한 신학자가 늘 의문을 가져오면서도 말로 꺼낼 수 없던 것을 얘기해줘 용기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강자의 논리,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산업주의를 넘어선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생명문화의 물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생명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젊은이들과 대화모임을 하고 싶다.” 구십청춘의 꿈은 여전히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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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엘리스라는 미국의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과거 '정의구현사제단'이 이른바 인권과 민주화, 민생을 위해 일했는데 정말 당신들이 뛰어서 교회가 변했느냐고 묻더라. 2000년 전에 예수님은 당시 정통 유대교에 맞서 싸우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여러분이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사제라면 문제 많은 이 가톨릭교회를 떠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당신들이 없으면 미성숙한 교회가 빨리 망할텐데 당신들이 자꾸 수혈해주니까 안 망한다고 질타했다. 또, 예수님은 브로커 없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는데 그동안 생겨난 것은 온통 브로커뿐이라고 하더라.

(...)우리 시대 교회는 자본주의와 손잡고 있지 않나. 조금 과한 표현으로 하자면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나 노예가 됐다. 교회가 자본주의를 정화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로 먹고 살고 있다.

(...) 가톨릭이 19세기 말의 사상가였던 칼 마르크스를 껴안았더라면 아름다워졌을 텐데 안타깝다. 가톨릭이 마르크스를 배척했던 이유로 내세운 것은 그가 무신론자라는 거였는데 명분만 그랬고 실제로는 공유(共有)사상 때문이었다. 만약 마르크스의 공유사상을 가톨릭이 껴안았더라면 세상은 많이 바뀌었을 거다. 이것은 여러 신학자들이 한 애기이기도 하다.

요즘 교회가 물신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나 이슬람, 여성 등 약자를 구박하고, 혐오하는데 앞장서기까지 한다. 그것은 기독교나 불교 등 종교의 신앙 수준이 아직도 좀 미숙한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모두 약자에 관심을 가진 분들인데 오늘의 종교 책임자들은 그 핵심을 놓치고 있다. 대신 종교 자체를 기업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교회세습까지 하고 있다. 공동체 원리를 망각하고, 상업적 논리만을 따라간다.      - 함세웅 신부 인터뷰(한겨레신문. 2018.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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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에 의하면, 종교개혁기에 기독교는 자본주의의 흥기에 유리한 여건을 마련했다기보다, 기독교 자체가 자본주의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순전히 제의로만 이루어진, 교리도 없는 종교라고 한다. 서구에서 자본주의는- 칼뱅주의에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정통 기독교 교파들에서도 입증되어야겠지만 - 기독교에 기생하여, 끝내는 기독교의 역사가 그것의 기생충인 자본주의의 역사가 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는 거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본주의 교리의 신자이고, 이 신자는 이윤창출이라는 제의를 신성하게 받들면서 돈벌이를 한다. 하지만 빚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하는 만큼 돈을 받을 수 없고, 설령 받는다고 해도 소비의 양이 임금보다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소비체제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도록 부추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임금과 소비, 노동과 욕망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자리한다. 바로 이 간극이 빚을 영원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문제는 자본주의의 종교적 성격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여 자본주의로 변형되어버린 기독교, 또는 기독교마저 흡수한 자본주의이고, 기독교화한 자본주의 신화다. 기독교의 근대적 역사는 자본주의의 발생의 역사다."  -  문광훈 <가면들의 병기창>(한길사) 304~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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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신론자로 자처하지만 나는 30대 후반까지만해도 열렬한 크리스천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군산복음교회는 교인수가 300명정도 되는 비교적 작은 교회였지만 교회 크기에 비해 목사님은 사회적으로 저명한 분이었다. 조용술 목사. 이 분은 내가 교회에 다니던 80년대초에 KNCC 회장을 역임하셨고, 1990년에는 범민족대회 공동본부장으로 베를린에서 북쪽 대표들을 만난 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노구를 이끌고 민주·통일 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목사님은 KNCC 내에서도 작은 복음교단 소속이었지만 애큐메니칼운동과 독재정권에 투쟁하는 기독교연합운동을 이끌었고, 생애 마지막에는 민간통일운동 지도부로 일하신 훌륭한 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좋은 교회에서 좋은 목사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다

 

당시 목사님은 군산의 한 여고에서 영어교사를 하다가 나중에 한신대를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도시 교회 분위기는 한가하니 어슷비슷한데, 교회 주변이 가난한 달동네다보니 교인들은 평범한 소시민이거나 빈곤층들이 대부분이고, 노인, 부녀자들도 많았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흔한 교회 중 하나였던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별한 것은 목사님의 설교였다.

 

설교는 시국과 관련한 정치, 사회적 이슈들이 대부분이었고, 평신도들에게는 이해가 쉽지 않은 철학자, 신학자, 혹은 문학작품들이 종종 언급되었다. 가령 키에르케고르, 폴 틸리히라든가, 하비 콕스, 칼 바르트를 비롯해서 도스토예프스키, 카뮈, 그밖에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들을 설교와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설교의 또 다른 특징은 요즘 교회들의 흔한 단골메뉴인 축복, 성령의 은사, 믿음천국 불신지옥, 십일조, 헌금, 순종, 전도 따위의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보다는 오히려 당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비판, 남북분단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 자주 언급되었고, 구약성경의 인용구는 비민주적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마치 시국강연이나 교양강연을 연상케했다나는 매주 듣는 목사님의 설교가 워낙 익숙해선지 원래 목사님들은 다 저렇게 설교하는 것으로만 알았고, 다른 교회들 역시 항상 이런 식의 설교를 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돌이켜보면 과연 당시 교인들이 목사님의 수준높은 설교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싶은데, 기이하게도 교인들의 정치관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대부분 사회 비판적이었다. 물론 그들이 카뮈나 칼 바르트를 알았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최소한 기복적, 성령은사 일변도 신앙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장로, 집사, 주일학교 교사할것없이 목사님의 영향탓인지 신앙과 인문학적 지식 수준이 상당했다. 더불어 청년층, 주일학교 고교생들은 인문적 교양을 덤으로 갖추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요즘 교회 설교는 한결같이 축복, 성령의 은사, 믿음천국 불신지옥, 십일조, 헌금, 순종, 전도 등의 단어가 대부분이고, 신학적인 문제, 정치, 사회 비판적 문제들은 전혀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는커녕 설교가 중학생 수준이나 알아들을정도의 유치하고 저급한 단어들이 주종을 이룬다. 심지어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만담가 목회자가 인기 스타마냥 시도때도 없이 TV에 등장하고, 교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수준을 어떻게 알고 있기에 저 따위로 설교를 해대는지 화가 다 날정도다. 대체 왜 교회는 이렇게 변했을까. 왜 이렇게 저급한 수준으로 타락했을까.

 

나는 현재 한국의 교회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교회가 더 이상 선교나 성장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목사의 설교를 무조건 추종한나머지 비판이 사라지고, 순종으로 일관하는 교회 현실과  인문학 수준이 교인들만도 못한 목회자가 수두룩한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순진하고 어리석은 교인들도 문제지만 당장 목회자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영영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글은 시간주간지 '한겨레 21'(1194호)에 게재된 서울 후암동 중앙루터교회 말테 리노 목사와 루터학자인 최주훈 목사와의 대담 중 일부인데 평소 내 생각과 같은 내용이 많아 옮긴다. 

 

 1

교회가 너무 크거나 작을 때, 문제가 생긴다. 명성교회처럼 너무 크면 욕심이 생기는반면 너무 작아서 목사 월급을 제대로 못 주는 교회도 많다. 그런 교회의 목사들이 은퇴 뒤 생계를 위해 교회 부동산을 매각하는 일도 벌어진다. 작은 교회들이 협력해야 한다. 교회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

 

 2

교회 내부에서도 안과 바깥을 나누는 안팎 사상이 심하다. 경계선을 그어두고 안과 바깥을 나누는 교파주의 도그마에 빠져 있다. 우리 교회만 교회이고, 경계선 바깥의 다른 교회는 비판한다. 이제 선교의 시대, 교회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새 시대를 끌어갈 새 개념이 코이노니아(일치, 공동체라는 뜻으로 도그마의 반대 개념)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하면 진리와 가까워질 수 없다. 견해가 다른 쪽과도 대화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3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묻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다. 목사가 이야기하면 다 먹혀들었다. 이제는 묻는 시대다. 교인들이 목사보다 더 똑똑하다. 목사도 교인도,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교인 각자가 질문하고 옳은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설교 내용도 문제다. 순종하라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

 

 4

일반 대학을 졸업한 뒤 신학대학원 3년 만에 목사가 되는 지금의 교육제도가 엉터리 목사를 양산한다. 지식 수준 높은 교인들이 이제는 스스로 성서를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한다. 상호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다. 목사의 역할은 위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간에 일치(코이노니아)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신학 말고도 인문학 등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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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문학비평의 애독자로 자처하는 나는 간혹 인상비평 수준의 글을 쓴다. 본격적으로 비평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문학이론은 비껴가고 대신 작품의 본문만을 꼼꼼히 읽은 후 느낀바를 이렇게 저렇게 서술한다. 뭐 독후감 쓰기나 다를바 없는데 좀 자세히 말하면, 먼저 작품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서술한 후, 서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거기에 맞는 본문의 일부를 인용한다. 아울러 인용한 문장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피력하면서 앞서 거론한 소감에 부피를 더하는 식이다.

그런데 글을 쓸때마다 종종 경험하는 것은 과연 내가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쓴건지 내 스스로가 의아하거나 자신이 없을 때가 있다. 중언부언 그럴듯하게 써내긴하지만 과연 내가 쓴 글이 작품이 지닌 의미를 객관적으로 전달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해의 결과란 글쓰는 이의 주관적인 결과물이라지만 과연 작품이 지닌 의미를 객관적으로 타당하게 전달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무신론자인 나는 가끔 교회 다니는 이들을 만나면 성경을 인용하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다그침을 받곤한다. 대개는 오래 교회에 나갔거나 신앙심이 깊다는 분일수록 더 그러는데, 그때마다 적당한 성경귀절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 붙인다. 아마 이게 형식을 갖추고 발전하면 목회자의 설교문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저들이 말한 성경 인용이 과연 본문을 맞게 해석한것인지 따져보고싶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언제 성경을 가져다놓고 따질것이며, 성경 해석을 제대로 한것인지 별도로 주석을 참고해야할텐데 이 복잡한 일을 언제 한가하게 따질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그들의 열변에 찬 말을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교인들은 매 주일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다. 목회자는 설교 때 으레 성경의 일부 본문을 인용한 후 거기에 맞춰 설교를 하는데, 이때 신도들은 목회자의 설교를 일체 의심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누구 한 사람 목회자가 지금 성경 본문 해석을 제대로 한것인지, 잘 못 해석한것인지, 그래서 지금 하는 설교가 인용한 성경 내용과 맞는지, 맞지 않는지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아니 감히 할 수가 없다. 무조건 아멘, 무사 패스다.

나는 개인적 호기심으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발간한 60권짜리 성서주석을 구입한적이 있다. 나중에 안 것인데, 성서이해는 단순히 성서주석이 있다고해서 다 해결되는게 아니었다. 그에 앞서 목회자가 어떤 신학교 출신이며 거기서 어떤 신학을 공부 했는지, 다시 말해 보수적인 신학을 했는지 진보적인 신학을 했는지에 따라 성경 해석이 달라진다. 왜냐면 성서주석이 여러 가지고 이때 주석을 기술한 신학자가 진보적이냐 아니면 보수적이냐에 따라 그 성서해석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자 한겨레신문에 ‘책지성팀’ 김지훈 기자의 < 오늘의 기독교 묵상> 이라는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기독교 묵상’이라고 하기에 어느 목회자거나 성서학자겠지 했는데 책지성팀 기자의 글이라 더욱 호기심이 갔던거다.

"오늘날 사탄은 부모에게서 청년을, 남편에게서 아내를, 주님에게서 교회를 독립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어느 지인으로부터 그가 다니는 교회 목사가 ‘오늘의 묵상’이라며 쓴 글을 받았는데, 이 목사의 ‘묵상’에서 인용한 성서 본문은 히브리 성서(구약) 중 <에스더서>의 서두에 나오는 와스디 왕후의 이야기였다고 한다. 다음은 칼럼의 일부 내용이다.

“주전 5세기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로 추정되는 아하수에로 왕 즉위 3년. 왕이 모든 귀족과 신하들을 불러모아 180일 동안 성대한 잔치를 열고, 그 잔치가 끝난 뒤 다시 7일간 도성에 있는 백성들을 왕궁 안뜰로 불러 잔치를 열었다. 잔치 마지막날 왕은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 와스디 왕후를 불렀다. 왕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왕후는 왕의 부름을 거절하고 왕에게 가지 않았다. 성서에서는 왕후가 이를 거절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성서에 왕후가 부인들끼리 잔치를 열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왕후 역시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한 상태로 배짱을 부렸다든지, 잔치를 오래 치르느라 피곤했다든지 추측만 해볼 뿐이다.

이 본문을 가지고 목사는 <와스디는 한 사람의 아내로서 왕이 춤추라고 하면 춤추고, 오라고 하면 순종하면 됩니다. 오늘날 ‘해방이다 자유다 민주화다'라는 말만 내걸면 나이든지 성별이든지 상관없이 그저 막무가내로 날뜁니다! 질서가 다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혼돈의 세력을 분별하려면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쪼개 주어야 합니다!>고 설교를 했단다. 일간지 기자가 엔간한 성서학자보다 성서지식이 더 많은듯해서 놀라웠는데, 계속해서 칼럼을 쓴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에스더서>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믿음과 타국에 포로로 끌려간 모순적인 상황에서 신앙과 민족적 동질감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 승리’를 목적으로 창작됐을 짧은 이야기다. <에스더서> 전체 이야기는 페르시아 땅에서 유대민족을 멸절하자는 한 신하의 청을 아하수에로가 승인하는데, 유대민족 출신의 새 왕후 에스더가 이를 저지해 대반전을 일으키는 내용이다.일 년 중 하루를 정해 유대민족을 죽이려 했던 이들의 일가족을 몰살하고 재산을 빼앗을 수 있게 했다는, 현대인의 관점에선 문제적인 대목도 있다. 이런 성서를 2000년간 섬세히 발전해온 기독교신학 체계의 도움 없이 읽고 해석하는 목사와 신도들의 태도는 무지하고 무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 개신교의 특징 중 하나인 이런 반지성주의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악영향을 끼치고, 자신들의 존립도 위태롭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맞불집회 참여를 독려했고, 어떤 목사들은 집회에 나와 대형 십자가를 이끌고 퍼레이드를 벌였다. 장로교회 중 세계 최대 규모인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는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면서도 담임목사직을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세습해 일부 교인들마저 반발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와 반지성주의의 관계,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서 다룬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와 존 셸비 스퐁의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를 권한다.“ 며 칼럼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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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 바르트

무신론자인 내가 왜 신학에 관심을 갖는가. 이유는 철학이나 역사처럼 신학도 인문학의 한 범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학을 좋아하고, 철학서를 읽듯이 단지 지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거다. 신학서를 가까이한 때문인지, 간혹 교회에 다니는 친척들, 이웃들은 나를 예배당으로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신론을 자처하는 터에 겨우 신학서 몇 권 읽는다고 교회에 나갈수 있을까?

무신론자인 내가 볼때, 칼 바르트의 하나님론(신론), 그리고 예수론(기독론), 교회론은 서구형이상학이 그렇듯 완벽한 픽션이다. 단지 오랜세월 공을 들인 정교한 허구적 체계, 지적체계의 산물이라는 것. 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설사 칼 바르트가 제 아무리 방대한 조직신학 체계를 세웠더라도, 문학적 상상력과는 유형이 다른 허구적 언설체계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내가 조직신학, 즉 어떤 종교라는 이름아래 체계화된 논리들, 특히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 등에 관심을 갖는건, 한 지식인의 진지하고 정교한 종교적 상상력의 세계를 엿보고싶고, 그 상상력의 결과가 어떤 글로 나타나는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적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서다.

2.도그마적 신앙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까하고 참가한 스터디 모임에서 어느 독실한 크리스천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를 보세요. <터미네이터>도 마찬가지인데, 그것들은 모두 요한계시록을 말하고 있거든요. 바로 지구의 종말인 거죠. 그렇습니다. 혹 시간이 되면 꼭 이 영화들을 보세요. 신이 세상을 심판하는 엄숙한, 이런 무서운 광경을! "
신앙은 그토록 진지하게 수행하는 세상의 모든 지적노력을 한순간에 유희 차원으로 전락시킨다. 대체 신앙 앞에서 무슨 토론이 가능할 것이며 지적 탐색이 이뤄지겠는가.

기이한 것은 한 인간에게 신앙과 인문적 지식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인데, 이러한 도그마적 신앙에 따른 모순성은 일면 아마추어리즘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결국 내가 모든 형태의 신앙을 거부하는 것은 일순간에 판단정지케 하는 그 단순성, 맹목성 때문이다.

과장한다면, 절대적 믿음(신앙)에 의해 무오류, 무조건적인 안락을 기대하는 신앙은 어떤 의미에서 생활인의 아마추어리즘과 흡사하다. 일체의 회의가 배제된 일상의 쾌락! 상식, 관습, 안락, 보편적 평균성을 강요하는 일상!  


3. 종교의 자유


종교는 그 성격상, 아울러 그 말의 어원이나 그 체제의 역사상, 워낙 자유가 없는 곳이다. 그곳은 자유의 반납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특이한 종류의 쥬이상스를 체계의 맹점으로 지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는 사실상 종교와 종교 사이의 자유, 요컨대, 종교가 없는 빈 곳 속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는 게 낫다.

강군이 싸우는 문제는 미션계 대학들에서도 똑같이 재론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교수들조차 그 강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물론 한국의 종교사회와 그 엘리트 관료들은 이 10대의 소년이 성취한 정신적 자유와 결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종교의 자유를 '내가 내 종교를 믿을 자유'로 해석하는 짓을 넘어설 때도 되었다. 우선적으로 그것은 '내 이웃들이 내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 김영민(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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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살아가자면 온갖 유형무형의 폭력을 감수해야 한다. 가령, 강압적인 종교 권유도 그중 하나인데, 가까이는 가족, 친척, 이웃들로부터, 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까지 시도때도 없이 교회에 나가라고 성화다. 올해 일흔 나이인 고모님은 만났다하면 오만상 찌뿌리며 일갈한다.

"얼른 교회 나가야지, 집안을 구원해야 할 장남이 이게 무슨 짓이냐. 죽으면 지옥 갈텐데 두렵지도 않냐? 아이구, 너 통도 크다!" 그러고는 짐짓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마무리한다. "결국 큰 일을 당해야 교회 나갈거야. 요즘 네 얼굴빛이 평화롭지 않고 우울해보인다. 다 교회 안 나가는 탓이지".

아래 층 K 목사로부터 거의 석 달동안 교회 나오라 권유받다 이제 겨우 끝났다. 으~ 지겨운 인간! 어느 날 의료원에 문병다녀오다 황당한 일을 당했다. 문병을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 막 도착할 무렵,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앞을 턱 가로막더니,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할렐루야!" 라며 귀에대고 속삭였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깜짝 놀랐다. 병원 문을 나서려니 나도모르게 볼맨소리가 나왔다. "별 미친놈 다봤네!"

사실 종교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 곳은 바로 가정이다. 상당수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고교생들까지 부모들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 "교회 가봐야 어차피 졸다가 와요" "가기 싫은데 엄마가 강제로 떠다밀어요" " 엄마 몰래 피시방에 있다가 교회 끝나는 시간에 집에 가거든요" 등등. "그래, 조금만 참아라, 대학생이 되면 그때는 안 나가도 되니까?" 이쯤되면, 지금 우리 학생들은 입시지옥과 종교지옥이라는 두 개의 지옥(감옥) 속에 갇힌 형국이 아닐까. 짜샤! 내가 좋으면 너도 다 좋은거야,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나쁜짓 시키겠냐. 잔말말고 디립다 믿어, 믿고 천당가라구! 


4.신의 숭배형식  


고대 그리스의 신의 대한 숭배는 '예술적 이야기하기'(비극 공연)를 통해 이뤄졌다. 가령 디오니소스 신의 숭배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하는데, 하나는 먹고마시고 취하는 카니벌적 축제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이야기하기, 즉 비극공연이다.

오늘날 한국사회 역시 신의 숭배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금연, 금주 등 금욕적인 '극기훈련'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 등 '돈을 바치는 행위'를 통해서다 .


5.십일조


N은 나이롱 신자인데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반 강제로 교회에 나간다. N과 나는 이 말 저 말 끝에 십일조가 화제에 올랐다. 당신도 십일조를 내남? 하고 묻자 그는 소태씹은듯 상을 찌뿌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글쎄, 우리 형편에 무슨 십일조냐며 투덜대도 그의 아내는 끄덕도 하지 않는단다. 이유인즉, 자녀들의 안녕 때문이라는 것. 그러니까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외면할게고, 결과적으로 자녀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부부가 내는 십일조는 자녀를 위한 '생활안녕보험'쯤 될까? 월 납부액이 많은만큼 만기 환급금 역시 많을게고 따라서 천당까지 보장되는 보장성 생활안녕보험!

6. 샤머니즘과 한국종교

모든 형태의 고등종교는 사람을 좀 외롭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멀리 호메르스의 신화적 세계를 비롯해서 기독교든 불교든 보편적인 종교들은 불가피하게 합리적, 이지적이어서 그로부터 심정적 위로를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보편적인 고등종교와 달리 샤머니즘은 사람들에게 심정적 위로와 공감을 쉽게 주는대신 인간들의 야수적인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유교할것없이 그 어떤 종교든 샤머니즘이라는 블랙혹 앞에 완벽히 무릎을 끓고 말았다. 샤머니즘! 그것은 온갖 반동적인 것의 근저에 똬리를 틀고 있으며, 노예적 세계관에 기생하거나 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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