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횡행하는 시대일수록 인문학은 천대받는다. 게다가 안보-국방이 지상 최대의 가치로 떠받들여지는 나라다보니 정치, 사회는 물론이고 학계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의 처지는 차마 목불인견이다. 하지만 요즘 정치판을 돌아보면 역설적이게도 인문학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가령 브로커, 칠푼이, 강남 아줌마 수준인 이명박, 박근혜-최순실 일당을 위시로 당시 권력 주변을 맴돌며 떡고물을 욕심내던 자들, 명색이 야당 대표라는 자의 언행을 보면 정치기술만 고도로 발달되었지 인문학은 커녕 기본 교양조차 찾아볼 수 없다.  내뱉는 말마다 뒷골목 깍두기 수준이니 이들에게 인문학을 요구하기란 차마 연목구어나 다름없겠다. 터무니 없는 가정일 수 있는데, 이들이 하다못해 정약용의 <목민심서>나 사마천의 <사기>, 나아가 그리스-로마 고전을 단 한 줄이라도 읽어봤다면 이런 식의 무식하고 저열한 행동, 언어를 구사했을까? 어쩌다 테레비에 등장하는 이자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 참 무식하구나!" 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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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 지난 2005년 조용필의 평양공연 실황 동영상을 보았다. 무표정하니 경직된 관객들, 와중에 열창을 이어가는 가수 조용필. <모나리자> <돌아와요 부산항> <한 오백년><간양록> <꿈의 아리랑> <홀로 아리랑> 등으로 이어지는 열창을 들으며 자막의 가사를 읽었다. 북한 공연이라는 특별함때문일까, 이곳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법한데 가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의미심장한 가사 하나하나 읽어가며 노래를 듣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지구상 유일하게 분단된 남과 북. 원래는 그러지 않았을텐데 노랫말 모두가 마치 남과 북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오늘은 마침 남측 가수들이 북한 공연을 하는 역사적인 날. 비록 공연 실황이 생중계가 안되고, 제한된 인원에다 선별된 관객이겠지만 통일에 작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쪼록 공연이 성황리에 이뤄지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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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MBC에서 방영한 우리 가수들의 평양 공연 녹화방송을 봤다. 장면 하나하나가 콧날이 찡하도록 감동이 컸다. 특히 여러 가수들의 노래도 노래지만 나이 젊은 한 여성가수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난생 처음 북한땅을 밟은것도 신기한데, 공연이 끝나자 뜻밖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자기 앞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가수들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사진까지 찍었다. 그러니 이 가수가 얼마나 놀랐을까.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TV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기분이었다고. 그도 그럴것이, 불과 엊그제만해도 미사일이 공중을 날고 핵실험을 하느니, 4월 위기니 6월 위기니 어쩌고하며 금방 전쟁이 터질것 같잖았는가. 그런데 북한에서 공연이 열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났으니 이게 어찌 현실감이 있었겠는가.

 

요즘 남북의 급속도 화해무드는 과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라 나 역시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다. 모든게 전광석화 같다. 그러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어도 될까반신반의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 우리 민족의 특별한 저력을 경험한 바 있기에 요즘의 남북 해빙무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아이엠에프 때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한 일을 놀랍게 이뤄냈었다. 온 민족이 거국적으로 동참한 금 모으기도 그중 하나다. 나는 장차 4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예기치 못할정도의 급속한 진전, 엄청한 성과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이런 나의 믿음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아이엠에프 사태 해결에 비춘다면 전혀 근거가 없는게 아니다. 그래서 분명 꿈 같은 일이 벌어질거라고 확신하는거다. 이런 나의 기대가 꿈이 아니기를, 신바람 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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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빈센트 반 고흐의 서간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북스, 박홍규역) 를 읽고 있다. 독서회에서 이 책을 택한건 진즉 구입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읽지 못한 것도 한 이유고, 오케스트라 멤버이기도 한 회원들에게 고흐의 광기에 찬 열정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서간집과 함께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중 한 권인 파스칼 보나푸의 <반 고흐-태양의 화가>(시공사)와 고흐의 전기로 유명한 어빙 스톤의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테멘, 오효진 역)를 함께 읽었다. 오늘 오전 독서회에 가려고 하는데 마침 겨레 신문에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이 기고한 <고흐의 증례>라는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아래 글은 칼럼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세계가 허망하기에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것, 이 시대가 죄스럽기에 존중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사회가 위선이기에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 인간들이 포악한 존재이기에 선의가 피어나야 한다는 것, 삶이 고통스럽기에 유머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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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 여유가 있어야하고, 가능하면 일상 잡사로인한 근심 걱정이 없어야 한다. 물론 몽상을 할 수 있는 한가함까지 가능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글쓰기의 필수 요소인 풍요로운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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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날씨, 하지만 차 안은 거의 한여름이다. 아침 일과 끝내고 아내와 대야 5일장 가다. 포장마차에서 도넛 2개로 입가심하고, 점심은 장터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하다. 양파 한 포, 채소 조금 사다. 은별이가 두통이 심해 걱정이다. 가게를 비우지 않으려고 하기에 절대 휴식이 필요하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쉬라고 당부하다. 안과에 갔는데 특별한 건 없다고. 금주 금요일쯤 신경외과에 갈 예정. 자식 걱정은 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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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제안으로 올 한 해 책 구입은 중지하고 대신 트럼펫을 구입하기로 했다. 물론 새 트럼펫이 생기니 싫지는 않지만 과연 1년이 다가도록 책을 구입 안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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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지훈이 내외한테 생일선물로 노트북을 받았다. 그동안 예준엄마가 학생시절에 쓰던 낡은 노트북을 사용했다. 나야 아무 불편이 없었지만 저희들 보기에 맘이 걸렸나 보다. 가격이 제법 나갈텐데 무슨 돈이 있다고..... 아내는 걱정하는 나에게 “자식들 성의이니 고맙게 받고 담은 당신이 해주면 되지요”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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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전 꿈이 있었다. 느긋하게 시간보내면서 산책, 글쓰기, 독서와 영화, 음악을 즐기는 것. 곰곰이 생각해도 그리 거창한 꿈은 아니다. 퇴직했으니 이만한 것도 못누리랴!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독서실이 문제다. 대충할 수도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다. 엉거주춤, 분주할 수록 푸념만 늘어갔다. 이게 아닌데....언제까지 해야하나. 그러구러 3년이 흘러갔다. 지금도 뾰족한 수가 없어보인다.

역시 글쓰기와 독서는 시간이 널널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중된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잠깐 잠깐 일 도중에 책장 넘기고, 글도 써야하는데 말이 그렇지 무슨 잡일도 아니고, 하고싶다고 뚝딱 되는 일이 아니잖은가. 그렇다고 하염없이 푸념만 할 수 없는 노릇. 주어진 현실 그대로 인정하고 뭔가 돌파구를 찾는 수밖에. 이런때 떠오르는 적절한 문구가 있다.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 <섬>에 나오는 문장이다.

"어쩔도리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의 은신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행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오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도 또 들판이 있고, 사막을 지나가도 또 사막이 있으리. 나는 영원히 그 여행을 끝내지 못할 것이고, 마침내 나의 둘씨네를 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어느 누군가가 말하듯이, 이 좁다란 공간 안에 그 오래고 긴 희망을 가두어 두어야 하리! 마죄르 호숫가의 자갈밭과 난간을 따라가며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 그러한 영광의 대용품들을 찾으면서 사는 수밖에!"

사실이 그렇다. 전문 글쓰기는 열정도 열정이려니와 실력이 없어 불가능하다. 트럼펫 연주든 글쓰기든 어차피 아마추어 노릇인데, 되지도 않을 거창한 꿈 접고 주어진 환경에 맞추자. 물론 열정이 보다 강하고, 꿈 또한 누가 꺽을 수 없을정도로 컸다면 환경을 박차고 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눈앞의 현실로 보자면 이상일뿐이다. 그렇다면 얼른 현실과 타협하고 이런 환경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만큼 하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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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손주 예준이랑 처가 다녀오다. 한여름 같은 봄날, 산과 들에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만발이다. 예준이 앞세우고 아장아장, 느릿한 걸음으로 시골길을 걷다. 논둑 이름모를 풀꽃들, 예준이 머리결을 스치는 따스한 바람, 아지랑이, 멀리 까치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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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는 시간 여유가 많으니 지적 생활을 왕성하게 할 수 있을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 않다. 특히 소일거리삼아 뭔가를 한다거나 재취업을 하면 더욱 그렇다. 지적 생활을 방해하는 가장 큰 주범은 열정, 게으름, 경제적 여건 따위가 아니라 분주한 생활이다. 독서실을 하다보니 여유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푸념하는 사이 애꿎은 시간만 쉴새없이 흘러간다. 줄창 생활탓만 할 수 없는 노릇. 뭔가 방법을 찾긴 해야할텐데....

 

일단 최대한 관심사를 기울이자. 가령 오케스트라 활동, 독서, 글쓰기 경우를 보자. 오케스트라 활동을 잘 하기 위해서는 매주 연습참여를 철저히 지키고, 하루 단 30분씩이라도 연습을 거르지 말자. 독서와 글쓰기 경우 자칫 하면 책과 글에서 멀어지기 쉬운데 이 역시 오케스트라 활동처럼 매일 조금씩이라도 독서, 글쓰기를 거르면 안 된다. 매일 독서를 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약간이라도 분주한 일이 생기거나 몸이 피곤하면 가볍게 여기거나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데 이쯤되면 책과 멀어지는건 순간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방해하는 함정은 일상 곳곳에 있음을 잊지 말아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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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되면 세상사 치루면서 온갖 경험을 하다보니 엔간한 일은 다 아는 양 착각한다. 그렇다보니 호기심, 지적욕망이 사라진다. 매사가 귀찮고 무료함, 게으름뿐이다. 어떻게 해야하나. 무조건 아무 책이나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 하루 한 자라도 써야한다. 단발마 비명을 지르듯, 이걸 하지 않으면 목숨이 끊어지는 심정으로 희미하게 남은 지적욕망을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온 힘으로 부여잡아야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 열정과 욕망은 그렇게 호락호락 우리 곁을 맴돌지 않는다. 맨땅을 기어가는 심정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부여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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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로부터 매달 용돈을 20만원씩 타는데 지난 달치는 거의 쓰질 않고 통장에 남아있다. 월초면 으레 책값으로 몽땅 빠져 나가기 마련이라 왠일인가 싶지만 사실은 서점에 들를수 없을큼 바빴다. 봄볕 따사로운 오후 오랜만에 한길문고에 들렀다. 사무실엔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여러 권 쌓여있지만 일일이 따지다간 되는 일이 하나 없다. 안 읽은 책은 언젠가 다시 들춰보면 될테니 우선 새 책을 사면서 그간 생활 언저리로 내몰린 지적 열정을 되살리는게 급선무다.

민음사에서 최근 출간된 개정판 김수영 전집중 1권 산문집, 진즉부터 읽으려고 주문했던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까치), 한강의 소설 <흰>, 이승우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 김승옥 단편집 <무진기행>,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권(문학동네, 박형규 역)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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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책을 읽었으니 노년기가되면 이해도가 달라질까, 그리고 빠를까? 물론 젊은시절에 비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양은 분명 커진다. 하지만 이것도 꾸준히 읽어온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니 젊은시절, 노년기 할것없이 결국은 꾸준히 읽고 쓰고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젊은시절은 열정하나에만 의지해도 글쓰기와 독서가 가능하다. 하지만 열정이 사라진 노년기는 독한 인내와 즐거움이라는 상반적인 단어가 함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하한 상황이라도 읽고 써야겠다는 독한 지적 의지, 동시에 이런 일이 즐겁지 않다면 굳이 뭐하러 해야할까. 분명 독한 의지가 요구는 되지만 저변에는 즐거움이 도사리고 있다. 책읽기, 글쓰기의 도저한 즐거움! 과연 이게 아니라면 평생을 줄기차게 추구해야할 이유도 없고, 해야할 이유가 없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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