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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는 시간 여유가 많으니 지적 생활을 왕성하게 할 수 있을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 않다. 특히 소일거리삼아 뭔가를 한다거나 재취업을 하면 더욱 그렇다. 지적 생활을 방해하는 가장 큰 주범은 열정, 게으름, 경제적 여건 따위가 아니라 분주한 생활이다. 독서실을 하다보니 여유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푸념하는 사이 애꿎은 시간만 쉴새없이 흘러간다. 줄창 생활탓만 할 수 없는 노릇. 뭔가 방법을 찾긴 해야할텐데....

 

일단 최대한 관심사를 기울이자. 가령 오케스트라 활동, 독서, 글쓰기 경우를 보자. 오케스트라 활동을 잘 하기 위해서는 매주 연습참여를 철저히 지키고, 하루 단 30분씩이라도 연습을 거르지 말자. 독서와 글쓰기 경우 자칫 하면 책과 글에서 멀어지기 쉬운데 이 역시 오케스트라 활동처럼 매일 조금씩이라도 독서, 글쓰기를 거르면 안 된다. 매일 독서를 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약간이라도 분주한 일이 생기거나 몸이 피곤하면 가볍게 여기거나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데 이쯤되면 책과 멀어지는건 순간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방해하는 함정은 일상 곳곳에 있음을 잊지 말아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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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되면 세상사 치루면서 온갖 경험을 하다보니 엔간한 일은 다 아는 양 착각한다. 그렇다보니 호기심, 지적욕망이 사라진다. 매사가 귀찮고 무료함, 게으름뿐이다. 어떻게 해야하나. 무조건 아무 책이나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 하루 한 자라도 써야한다. 단발마 비명을 지르듯, 이걸 하지 않으면 목숨이 끊어지는 심정으로 희미하게 남은 지적욕망을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온 힘으로 부여잡아야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 열정과 욕망은 그렇게 호락호락 우리 곁을 맴돌지 않는다. 맨땅을 기어가는 심정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부여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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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로부터 매달 용돈을 20만원씩 타는데 지난 달치는 거의 쓰질 않고 통장에 남아있다. 월초면 으레 책값으로 몽땅 빠져 나가기 마련이라 왠일인가 싶지만 사실은 서점에 들를수 없을큼 바빴다. 봄볕 따사로운 오후 오랜만에 한길문고에 들렀다. 사무실엔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여러 권 쌓여있지만 일일이 따지다간 되는 일이 하나 없다. 안 읽은 책은 언젠가 다시 들춰보면 될테니 우선 새 책을 사면서 그간 생활 언저리로 내몰린 지적 열정을 되살리는게 급선무다.

민음사에서 최근 출간된 개정판 김수영 전집중 1권 산문집, 진즉부터 읽으려고 주문했던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까치), 한강의 소설 <흰>, 이승우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 김승옥 단편집 <무진기행>,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권(문학동네, 박형규 역)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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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책을 읽었으니 노년기가되면 이해도가 달라질까, 그리고 빠를까? 물론 젊은시절에 비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양은 분명 커진다. 하지만 이것도 꾸준히 읽어온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니 젊은시절, 노년기 할것없이 결국은 꾸준히 읽고 쓰고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젊은시절은 열정하나에만 의지해도 글쓰기와 독서가 가능하다. 하지만 열정이 사라진 노년기는 독한 인내와 즐거움이라는 상반적인 단어가 함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하한 상황이라도 읽고 써야겠다는 독한 지적 의지, 동시에 이런 일이 즐겁지 않다면 굳이 뭐하러 해야할까. 분명 독한 의지가 요구는 되지만 저변에는 즐거움이 도사리고 있다. 책읽기, 글쓰기의 도저한 즐거움! 과연 이게 아니라면 평생을 줄기차게 추구해야할 이유도 없고, 해야할 이유가 없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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