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 여유가 있어야하고, 가능하면 일상 잡사로인한 근심 걱정이 없어야 한다. 물론 몽상을 할 수 있는 한가함까지 가능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글쓰기의 필수 요소인 풍요로운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
완연한 봄날씨, 하지만 차 안은 거의 한여름이다. 아침 일과 끝내고 아내와 대야 5일장 가다. 포장마차에서 도넛 2개로 입가심하고, 점심은 장터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하다. 양파 한 포, 채소 조금 사다. 은별이가 두통이 심해 걱정이다. 가게를 비우지 않으려고 하기에 절대 휴식이 필요하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쉬라고 당부하다. 안과에 갔는데 특별한 건 없다고. 금주 금요일쯤 신경외과에 갈 예정. 자식 걱정은 커도 마찬가지다.

3
아내의 제안으로 올 한 해 책 구입은 중지하고 대신 트럼펫을 구입하기로 했다. 물론 새 트럼펫이 생기니 싫지는 않지만 과연 1년이 다가도록 책을 구입 안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4
아들 지훈이 내외한테 생일선물로 노트북을 받았다. 그동안 예준엄마가 학생시절에 쓰던 낡은 노트북을 사용했다. 나야 아무 불편이 없었지만 저희들 보기에 맘이 걸렸나 보다. 가격이 제법 나갈텐데 무슨 돈이 있다고..... 아내는 걱정하는 나에게 “자식들 성의이니 고맙게 받고 담은 당신이 해주면 되지요” 그런다.

5
퇴직 전 꿈이 있었다. 느긋하게 시간보내면서 산책, 글쓰기, 독서와 영화, 음악을 즐기는 것. 곰곰이 생각해도 그리 거창한 꿈은 아니다. 퇴직했으니 이만한 것도 못누리랴!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독서실이 문제다. 대충할 수도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다. 엉거주춤, 분주할 수록 푸념만 늘어갔다. 이게 아닌데....언제까지 해야하나. 그러구러 3년이 흘러갔다. 지금도 뾰족한 수가 없어보인다.

역시 글쓰기와 독서는 시간이 널널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중된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잠깐 잠깐 일 도중에 책장 넘기고, 글도 써야하는데 말이 그렇지 무슨 잡일도 아니고, 하고싶다고 뚝딱 되는 일이 아니잖은가. 그렇다고 하염없이 푸념만 할 수 없는 노릇. 주어진 현실 그대로 인정하고 뭔가 돌파구를 찾는 수밖에. 이런때 떠오르는 적절한 문구가 있다.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 <섬>에 나오는 문장이다.

"어쩔도리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의 은신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행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오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도 또 들판이 있고, 사막을 지나가도 또 사막이 있으리. 나는 영원히 그 여행을 끝내지 못할 것이고, 마침내 나의 둘씨네를 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어느 누군가가 말하듯이, 이 좁다란 공간 안에 그 오래고 긴 희망을 가두어 두어야 하리! 마죄르 호숫가의 자갈밭과 난간을 따라가며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 그러한 영광의 대용품들을 찾으면서 사는 수밖에!"

사실이 그렇다. 전문 글쓰기는 열정도 열정이려니와 실력이 없어 불가능하다. 트럼펫 연주든 글쓰기든 어차피 아마추어 노릇인데, 되지도 않을 거창한 꿈 접고 주어진 환경에 맞추자. 물론 열정이 보다 강하고, 꿈 또한 누가 꺽을 수 없을정도로 컸다면 환경을 박차고 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눈앞의 현실로 보자면 이상일뿐이다. 그렇다면 얼른 현실과 타협하고 이런 환경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만큼 하면 되지 않겠는가.

 

6

아내, 손주 예준이랑 처가 다녀오다. 한여름 같은 봄날, 산과 들에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만발이다. 예준이 앞세우고 아장아장, 느릿한 걸음으로 시골길을 걷다. 논둑 이름모를 풀꽃들, 예준이 머리결을 스치는 따스한 바람, 아지랑이, 멀리 까치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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