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시작한지 5개월째, 트럼펫 주자인 나로서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베토벤 <7번 교향곡> 전 4악장을 완주하는데 드디어 성공했다. 연주시간 약 40분. 물론 완성도면에서는 형편 없지만 가장 문제였던 주력을 어느정도 해결했다는 점에서 희망이 생긴다. 뭐니뭐니해도 주력이 먼저 확보돼야 사운드 질이며 박자, 앙상블, 나아가 디테일한 표현을 운운 할 수 있다. 문제는 완주할 수 있는 주력!  

10여년째 오케스트라를 하는동안 가장 힘든 곡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곡을 들 수밖에 없다. 1번과 5번<운명> - 2악장 트럼펫 솔로 부분 역시 만만치 않은 대목이다 - 도 연주해봤지만 7번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가령 7번은 첫 악장부터 진을 빼다보면 가장 난코스인  4악장 중간쯤에서 입술이 풀려버린다. 다음은 3악장 중간쯤 2옥타브 B음을 한 호흡으로 무려 13마디를 지속해야하는데, 아마추어 실력으로는 이게 도저히 불가능하다. 불가피하게 일곱 마디에서 따단~ 살짝 숨을 얼른 내쉬고 다시 따단~ - 관악 주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도둑 숨(호흡)이라고 칭하는 - 하는 식으로 다음 마디를 이어 나가야한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해야하는데 그러자면 상당한 테크닉이 요구되는거다.  

연주회는 아직 5개월쯤 남았으니 다소 여유가 있긴하다. 그때까지 과연 좋은 사운드를 낼 수 있을지. 아, 힘들고 힘든 베토벤 연주다. 하지만 이 곡을 끝내고나면 분명 실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테니, 이 생각만을 하면서 연습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최근 베토벤 <교향곡 7번>에 대한 나의 탐구는 두 방향으로 맞춰있다. 즉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쫒는 일인데, 하나는 오케스트라연주고, 다른 하나는 곡 분석이다. 두 가지 모두 금년 연주회 날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쉽지 않은데도 굳이 두 가지를 하려는건 식지 않은 열정을 믿기 때문이다. 잘 될까? 모르겠다. 될지 안 될지는 나중 일이고, 여하튼 그냥 해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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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사회 비판적이라고해서 좋은 사람,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또한편 친절, 배려, 신뢰,사랑과 같은 구체적 삶의 태도가 진정한 진보를 식별하는 지표가 된다고 믿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진정한 진보라는 표현도 싫고, 무엇보다 이놈의 '진보'라는 표현 자체가 품고 있는 고약한 지점, 정치적 상상력보다 윤리가 앞선다는 암묵적 전제 자체가 싫다. 먼저 사람이 돼야지 같은 개똥철학에서 진보/보수의 수사법은 과연 얼마나 멀리 있을까?

 

이 진보/보수라는 윤리적 표현, 백번 양보해도 '정치공학'적 표현을 정치적 가치 판단이라고 호도하는 모든 표현, 행동, 권유가 나는 몹시 불편하고 당황스럽다. 성격이 개차반이라도 노동의 가치, 노동자라는 주체를 복원하거나 방어하는데 힘쓰는 사람은 좌파고, 안 친절, 안 배려 안 사랑해도 여성의 주체화에 기여하고 있다면 여성주의자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진보/보수의 구분법은 정치적으로 졸라 무기력한데, 정치공학적 게임으로 이를 벌충하는 정치적 지진아들에게 제공되는 환타지에 가깝다. (물론 그 환타지 게임은 다양한 대의 정치의 이해관계를 위해 기획되었지만, 결정적으로 어떤 정치 주체도 생산하지 못한다) 그 비슷한 버전으로 휴머니즘 등등 여러가지 자매품들이 있고.

 

정치는 상식, 도덕 같은 윤리에 개입해 그것이 다양한 이해관계의 메트릭스라는 사실을 추궁하는 데 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면 여성주의도, 맑시즘도 사회적 관성, 상식, 도덕, 심지어 공동체의 윤리에 개입할 때 비로소 정치이고, 정치적 발화다. 그런데 진보/보수라는 수사는 이 같은 정치적 상상력, 의지를 너무자주 훼손한다.(...) " 

                                                                                          - 이글루  A cousin of human being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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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 사람만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오랜시절 밴드에서 함께 활동했던 C형, 지금도 악단 활동을 하는 G씨. 나이가 엇비슷한 우리 셋은 주말이면 으레 회동이다. 오늘도 만났다. 대개는 C형이 불러모으는 편인데, 먼저 단골 순대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슬슬 사정동 악단 연습실이나 C형 집으로 간다. 그러곤 한산 소곡주 한 병 까놓고, 반주기에 맞춰 트럼펫 연주를 한다. 고향무정, 돌아와요 부산항에, 광화문 연가....끝없이 이어지는 가요 메들리. 셋 모두 악기를 하니 공통 화제는 시종일관 음악이다.

조만간 캄보밴드 하나 만들어 쿵쿨대회 열어보자고 했다. 봉동이 고향인 C형의 꿈이 하나 있으니 언젠가 시골 고향에서 쿵쿨대회를 열어보는 거란다. 까짓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들어 줄까. 그렇게 음악을 안주로 권커니 잣커니 하다보면 주말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G씨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인생 별것 없슈~".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제아무리 후벼파고, 요리조리 뒤집어본들 인생 별것 없다. 희로애락! 꺽어진 60중반 나이에 뭘 어쩌겠는가. 좋던 궂던 애달플것 없으니 술렁술렁 잘도 넘어간다. 

햇빛 따스한 주말 하오. 낮술 몇 잔에 불콰하니 흥남동 사거리 지나 신호등 앞. 룰루랄라~ 휘파람 낮게불며 골목길 돌아 이윽고 집에 도착한다. 한나절 사무실 지키던 아내왈. "종일 친구하고 놀다오니 좋기도 하것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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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루이스 스티븐슨의 에세이집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민음사)은 읽기에 은근히 까다로운 책입니다. 저자가 18세기 작가인데도 문장은 17세기 형식을 사용하고, 문학적 수사가 빈번해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던져버리기 딱 좋다는거죠.   

전체를 통독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2부 '사랑과 결혼의 미로'(61쪽~132쪽)만큼은 꼭 읽기 바랍니다. 이 글을 중심으로 토론할 예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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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책이 늦게 도착한 바람에 설사 읽지 못하신 분이 계셔도 모임날은 꼭 나오세요. 책과 관련된 주제는 정하되, 여러분들의 평소 생각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하겠습니다.  

토론 주제는 사랑, 결혼, 노년과 청춘, 행복, 인생 등등입니다. 기혼자들께서는 각자 결혼생활을 바탕으로 한 경험담을, 미혼자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관에 대해 생산적인 의견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아울러 노년기와 청춘기를 비교하고, 차이점을 토론해 보겠습니다. 토론 중간 중간 책을 소개할텐데, 주요 문장을 돌아가며 읽어보도록 하죠. 아마 내일 모임은 그 어느때보다 즐거운 시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설사 아직 못 읽으신 분이라도 그동안 살아온 인생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불꽃튀는 토론 가능하리라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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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음악이론 강좌 소개합니다. 제목은 <꼭 알아야하는 실용음악 이론>입니다. 가득뮤직출판사에서 기획한 강좌인데, 포탈사이트에서 출판사 검색해도 청취 가능하죠. 회당 강좌 시간은 대략 7분~20분 내외이고, 기초편 24강 상급편 40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지난번 말씀드린 <베토벤 교향곡 깊이 이해하기> 프로그램은 저로서 무모한 도전이지만, 스티븐슨의 견해에 기대면, 우리에게 중요한건 뭔가 꼭 알고싶다는 열망, 결과야 어찌되든 과정이 중요하니 일단 시도해보는 일일것 같습니다. 오늘도 토론에 임하는 여러분의 적극적인 모습 보기 좋았습니다. 특히 단무장님 백주아샘까지 전원 참석하셔서 그 어느때보다 뜻깊은 시간이었죠. 

여러분 요청으로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은 한번 더 읽기로 하였습다. 그리고 영화는 다음 주 금요일 상영인데, 모임 시간이 독서회와 같은 시간대인 오전 10시로 변경된거 잊지 마세요. 베토벤 공부는 4월에 시작할 예정이니 갖고 계신 악보에 마디 수 미리 표기해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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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에서 저자 루이스 스티븐슨이 말한 '엘도라도'는 유토피아거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인데, 단순한 희망이라기보다 각자가 처한 현실, 즉 간단치 않은 인생길을 염두에 둔 희망이라는 점에서 공감이 갔습니다.

희망을 말하기에 앞서 결혼하려는 사람에겐 나름 결혼생활의 험난한 실상을, 노년기에 처한 이들에겐 솔직하게 변화해가는 노년기의 실상을 먼저 제시한점도 호감이 가더군요. 여하튼 각자 처한 현실이 녹녹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여정을 포기하지 말라는 권유가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간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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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네마 두 번째 상영작은 프랑스 예술영화의 거장 에릭 로메르 감독의 <녹색광선>입니다. 고독한 현대인들의 일상의 단면을 그려낸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델핀은 혼자 우울한 여행을 떠나죠. 사회적 성공만이 자신의 고독감을 해소해 줄 수 있을것이라 여긴 그녀에게 한순간 운명을 송두리째 바뀔 뜻밖의 사건이 다가옵니다. 누구도 쉽게 보지 못한다는 희망의 상징 녹색광선을 보게되는데, 그 순간 꿈에 그리던 한 남성이 그녀에게 다가옵니다.

한 가지 재밌는 소식 전합니다. 인터넷 검색하다 알았는데, 영화 <녹색광선>의 원작이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이더군요. 이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본데, 소수 영화전문 서점을 통해 판매된다고 합니다. 아직 가보진 않았습니다만 군산 신흥동에 바로 그런곳이 있더군요. <마이 페이 보릿>이라고 혹시 누구 가본분 게신지요?

에릭 로메르 감독의 <녹색광선>은 박명주샘. 김유월샘. 김향림샘 등 세 분과 함께 잘 감상했습니다. 낮 시간이라 좀 여유가 있어서 영화 끝나고 잠깐 감상담을 나누기도 했죠. 다음 감상작은 롤랑 조페 감독의 <주홍 글씨>입니다. 나타니엘 호손의 소설이 원작인데요, 담주 독서회 토로작인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에 이어 읽을 예정입니다. 여러분 의견 들어본 후 최종 결정하겠습니다만, 되도록 영화와 독서를 결합해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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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네마 두 번째 상영작은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1986년). 상영작 선정은 주로 여성 독서회 멤버들인 점을 우선 고려한다. 평소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영화 초보자여서 일단 이해하기 쉽고, 여성의 공통 관심사를 반영한 영화 위주로 선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의외로 에릭 로메로의 영화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잘 선정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이제 막 시작한 감상회라 무엇보다 영화보기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려면 이해하기 쉽고, 재밌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사실 <녹색광선>은 내가 먼저 보고싶은 영화였다. 과거 서너차례 감상했던 기억이 나는데, 감상평도 써봤고, 에릭 로메로 평전도 별도로 구입해서 읽기도 했으니, 특별히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나로서는 로메로에 대한 애정이 꽤 남다른 편이다. 로메로의 영화하면 얼른 홍상수 감독이 떠오른다. 그만큼 두 감독의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자, 그렇다면 나는 왜 로메로 영화에 관심이 많은가.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줄곧 영화에서 문제삼고 있는 '모럴'이라는 주제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물론 로메로가 뜻하는 '모럴'은 주로 '도덕 이야기' 연작에 해당하는데, 이 단어는 로메로 영화 전체로 확산해도 크게 어긋나지나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모럴'은 우리가 알고있는 도덕 개념과 약간 차이가 있다. 로메로는 어떤 인터뷰에서 자신이 쓰는' 모럴리스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모럴리스트는 도덕(moral)이라는 단어와 그다지 연관이 없다. 모럴리스트는 인간의 내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그는 정신과 감정의 상태에 관심이 있다.(...)도덕성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위 속에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는데, 이것이 가장 좁은 의미의 모럴이라는 단어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모럴은 또한 그들이 자신의 동기들,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유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그 영화들은 행동의 영화들, 즉 물리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영화가 아니고, 매우 극적인 영화도 아니며, 매우 특별한 감정이 분석되고 심지어 인물들 자신이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는 매우 내향적인 영화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이다."   - 문화학교 서울 엮음 <에릭 로메로> 

그러니까 나는 통상적 의미의 도덕 개념이 아닌 모럴리스트, 즉 인간 내부에 관심을 갖는 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는 모럴리스트에 대해 우선 관심이 끌리고 로메로 영화에 공감이 가는 것이다. 로메르가 말하듯 도덕은 자신의 행동을 다스리는 원칙이 아니라, 행동의 이유를 분석하는 사유의 작용이며 모럴에 의한 선택이고, 그러한 모럴리스트로서의 인물이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사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 로메르의 궁극적 관심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영화문법과 다른 로메로 특유의 영화방식, 즉 극적 전개와 비극성을 피하고, 에피소드 위주로 사건이 전개되는 점, 삶의 소소한 사건들을 주목하는 점 때문인데, 이것은 홍상수의 영화와도 상당히 흡사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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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회는 어느덧 1년반이 다 돼간다. 비록 회원이야 여 섯명에 불과하지만 평소 독서습관이 없는 회원들끼리 여기까지 온것만해도 얼마나 대견한가. 예상 밖으로 잘 따라가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자 슬슬 욕심이 생긴다. 영화도 함께 하면 어떨까. 쉽지 않겠지만 한 편 한 편 보다보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생길거고 따라 감상 실력도 늘겠지. 혹 다른 이들도 오지 않을까 했지만 아직 까지는 독서회 멤버인 서너 명뿐이다. 역시 영화도 독서만큼이나 쉽지 않다. 독서든 영화든 한 두편이라면 몰라도, 꾸준히 읽고 보려면 상당한 열정이 요구된다.

애초 생각은 영화따로 독서따로 했지만 독서회와 영화감상을 결합시키는것도 그럴듯하겠다. 그러니까 '영화와 문학' 형태로 변경해서 원작이 별도로 있는 영화만 감상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영화도 보고 책도 병행해서 읽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불과 엊그제까지만해도 로메르의 <녹색광선> 원작이 따로 있는지 몰랐다. 더욱 반가운건 원작인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의 국내 번역서가 이미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책도 함께 읽을까했지만 일단 이번만은 영화에 국한하기로 했다.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쥘 베른의 소설이 너무 빈약한듯싶어서다. 

막상 소설읽기는 포기했지만 아쉬움때문일까. 쥘 베른의 <녹색광선> 표지가 눈에 어른어른하다. 재밌는건 '녹색광선'이라는 출판사가 있고, 그곳에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을 출간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책의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흡사하다. 두 책 모두 표지 디자인이며 금박 글자, 장정이 아름다워 구입하고 싶지만 쥘 베른의 <녹색광선>은 독립출판사에서 출간한 것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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