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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네마 두 번째 상영작은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1986년). 상영작 선정은 주로 여성 독서회 멤버들인 점을 우선 고려한다. 평소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영화 초보자여서 일단 이해하기 쉽고, 여성의 공통 관심사를 반영한 영화 위주로 선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의외로 에릭 로메로의 영화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잘 선정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이제 막 시작한 감상회라 무엇보다 영화보기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려면 이해하기 쉽고, 재밌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사실 <녹색광선>은 내가 먼저 보고싶은 영화였다. 과거 서너차례 감상했던 기억이 나는데, 감상평도 써봤고, 에릭 로메로 평전도 별도로 구입해서 읽기도 했으니, 특별히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나로서는 로메로에 대한 애정이 꽤 남다른 편이다. 로메로의 영화하면 얼른 홍상수 감독이 떠오른다. 그만큼 두 감독의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자, 그렇다면 나는 왜 로메로 영화에 관심이 많은가.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줄곧 영화에서 문제삼고 있는 '모럴'이라는 주제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물론 로메로가 뜻하는 '모럴'은 주로 '도덕 이야기' 연작에 해당하는데, 이 단어는 로메로 영화 전체로 확산해도 크게 어긋나지나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모럴'은 우리가 알고있는 도덕 개념과 약간 차이가 있다. 로메로는 어떤 인터뷰에서 자신이 쓰는' 모럴리스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모럴리스트는 도덕(moral)이라는 단어와 그다지 연관이 없다. 모럴리스트는 인간의 내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그는 정신과 감정의 상태에 관심이 있다.(...)도덕성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위 속에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는데, 이것이 가장 좁은 의미의 모럴이라는 단어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모럴은 또한 그들이 자신의 동기들,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유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그 영화들은 행동의 영화들, 즉 물리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영화가 아니고, 매우 극적인 영화도 아니며, 매우 특별한 감정이 분석되고 심지어 인물들 자신이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는 매우 내향적인 영화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이다."   - 문화학교 서울 엮음 <에릭 로메로> 

그러니까 나는 통상적 의미의 도덕 개념이 아닌 모럴리스트, 즉 인간 내부에 관심을 갖는 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는 모럴리스트에 대해 우선 관심이 끌리고 로메로 영화에 공감이 가는 것이다. 로메르가 말하듯 도덕은 자신의 행동을 다스리는 원칙이 아니라, 행동의 이유를 분석하는 사유의 작용이며 모럴에 의한 선택이고, 그러한 모럴리스트로서의 인물이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사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 로메르의 궁극적 관심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영화문법과 다른 로메로 특유의 영화방식, 즉 극적 전개와 비극성을 피하고, 에피소드 위주로 사건이 전개되는 점, 삶의 소소한 사건들을 주목하는 점 때문인데, 이것은 홍상수의 영화와도 상당히 흡사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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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회는 어느덧 1년반이 다 돼간다. 비록 회원이야 여 섯명에 불과하지만 평소 독서습관이 없는 회원들끼리 여기까지 온것만해도 얼마나 대견한가. 예상 밖으로 잘 따라가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자 슬슬 욕심이 생긴다. 영화도 함께 하면 어떨까. 쉽지 않겠지만 한 편 한 편 보다보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생길거고 따라 감상 실력도 늘겠지. 혹 다른 이들도 오지 않을까 했지만 아직 까지는 독서회 멤버인 서너 명뿐이다. 역시 영화도 독서만큼이나 쉽지 않다. 독서든 영화든 한 두편이라면 몰라도, 꾸준히 읽고 보려면 상당한 열정이 요구된다.

애초 생각은 영화따로 독서따로 했지만 독서회와 영화감상을 결합시키는것도 그럴듯하겠다. 그러니까 '영화와 문학' 형태로 변경해서 원작이 별도로 있는 영화만 감상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영화도 보고 책도 병행해서 읽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불과 엊그제까지만해도 로메르의 <녹색광선> 원작이 따로 있는지 몰랐다. 더욱 반가운건 원작인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의 국내 번역서가 이미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책도 함께 읽을까했지만 일단 이번만은 영화에 국한하기로 했다.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쥘 베른의 소설이 너무 빈약한듯싶어서다. 

막상 소설읽기는 포기했지만 아쉬움때문일까. 쥘 베른의 <녹색광선> 표지가 눈에 어른어른하다. 재밌는건 '녹색광선'이라는 출판사가 있고, 그곳에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을 출간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책의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흡사하다. 두 책 모두 표지 디자인이며 금박 글자, 장정이 아름다워 구입하고 싶지만 쥘 베른의 <녹색광선>은 독립출판사에서 출간한 것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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