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독서는 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발터 벤야민, 다른 하나는 조셉 콘라드, 마지막으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이다. 벤야민을 시작한건 세 달 전이다. 일단 세 단계로 진행할 계획인데, 첫 단계인 발터 벤야민 관련 강좌 수강은 대충 끝냈다. 계속해서 2차서와 평전읽기를 하는 중이다. 사진에서 보듯, 요즘은 베른트 비테의 <발터 벤야민> 전기와 문광훈 교수의 <가면들의 병기창>을 읽고 있다. 

왜 벤야민인가? 딱히 뚜렷한 이유는 없다. 다만 일전에 어느 글에서 말한대로 유물론과 신학을 결합한 독특한 발상이 호기심을 끌었던게 첫 번째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읽으면서 알았는데, 19세기 파리를 대상으로 한 그의 주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구성 또한 워낙 특이한것 같다. 몽타주, 남의 글 인용으로 뒤범벅한 이 책이 풍기는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다. 그밖에도 이미지적 글쓰기를 비롯해서 문학, 철학, 사회, 역사, 사진, 신학, 매체학, 영상 등 전방위적인 관심과 글쓰기 또한 관심을 끈다. 뭐니뭐니해도 19세기 파리와 전혀 다를것 같지 않은 한국의 서울 역시 자본주의의 온갖 폐해가 고스란이 드러난 곳이기 때문에 그의 글과 사상은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것 같다.

조셉 콘라드는 우선 해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쓴데다 직접 선장까지 한 이력이 호기심을 끌었다. 물론 허먼 멜빌이나 헤밍웨이도 바다를 소재로 한 바 있지만 비중으로 치면 조셉 콘라드가 단연 위다. <로드 짐>에서 알수 있듯 그의 뱃생활 경력은 그의 소설을 단순한 소재 차원으로 국한하지 않고, 바다와 배를 중심으로 한 고립된 인간들의 삶의 앙태를 묘사하는데 큰 강점으로 작용케 한다. 

과거 국내 소설가 중에 원양어선 선장생활을 했던 천금성이라는 이가 있었지만 전형적인 소재주의 작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셉 콘라드는 단지 바다와 배를 소재로 했달뿐이지 그의 문학에서 바다와 육지는 전혀 다르지 않다. 즉 바다나 배는 인간군상이 살아가는 장소에 불과할뿐 육지나 다를바 없다는거다. 그래서 나의 계획은 다른 작가라면 몰라도 조셉 콘라드만큼은 전작 읽기를 시도할 작정이고, 나아가 평전, 2차서까지 모두 완독해볼까한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의 고독>이야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뛰어난 작품임은 자타가 공인하는바다. 나는 과거 문학사상사에서 출간한 안정효 번역판으로 읽은바 있지만, 그때만해도 이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뛰어난 소설, 현대의 고전이라도 예찬했지만 도무지 왜 좋은 소설인지 알아보질 못한거다. 그만큼 나의 문학 이해력은 형편없었다. 최근 다시 도전한 마르케스의 소설은 역시 최고의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절반쯤 읽은 상태인데, 이 정도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단박 매력을 느꼈으니 이 한 편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칸투스 독서회 토론작으로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선정했다. 아무래도 독서회 회원들의 독해력으로는 <백 년의 고독>보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좀 수월할 것 같아서다. 더욱이 마이크 뉴웰 감독의 동명 영화가 있어 함께 감상할 기회도 갖을겸 아쉽지만 이 책을 읽기로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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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하게 되고싶으면 여러분은 절제를 해야 한다. (...) 몸을 부지런히 놀리는데서 지혜와 순결이 온다. 나태로부터는 무지와 관능이 온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관능은 마음의 게으른 습성이다. 깨끗지 못한 사람은 열이면 열 게으른 사람이며, 난로 옆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며, 해가 떠 있는데도 누워 있는 사람이며, 피곤하지도 않는데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다. 깨끗지 않음과 온갖 죄악을 피하려거든 외양간의 청소라도 좋으니 부지런히 일을 하도록 하라.” - H. D. 소로 <월든>, 김석희 역, 열림원 338쪽 

 

늦으막 시작한 독서실 업무는 때로 심신 모두가 과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적당한 긴장과 절제감은 물론이고, 규칙적인 일과와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인해 신체 건강이라는 부수적 잇점이 따른다. 특히 소로의 말대로, 노동의 피로로 인한 욕망, 관능의 저하는 최상의 혜택이 아닐 수 없다.

 

2

분명한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젊은이보다 더 나은 선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게 더 많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사려가 깊어지고, 인생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나 신념이 생기는 줄 알았다. 사실 60중반이면 적지 않은 나이다. 그동안 쌓은 세상 경험도 적지않고 이것저것 본 것도 많으니 제법 아는게 많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 살고 경험한게 많다고 해봤자 세상의 지극히 일면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그것도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실상은 어설프고 피상적이다. 아는건 고사하고 오히려 험만 더 크고 편협한 기질만 더욱 강화되는 것 같다. 나이들면 꼰대가 된다더니 정말 남의 애기가 아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지도 못한채 어정쩡한 상태로 인생을 살아갈뿐 기껏해야 안정, 현실안주만을 떠올리며 변화와 모험을 기피한다.

 

3

인생의 가치가 최저로 하락한 노년기에 확실치 않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돈벌이로 소진하는 사람을 보면, 훗날 고국에 돌아와 시인의 삶을 살겠다며 인도로 돈을 벌러 떠났던 어느 영국인이 생각난다. 그는 인도로 가는 대신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부터 썼어야 했다.” - 71

 

그러기에 살아오면서 뭔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글쓰기, 어떤 책을 완독하겠노라는 계획, 그밖의 마음 속에 오래 간직한 소소한 꿈들을 이루기 위해 지금 당장 계획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므로 언젠가 독서실을 정리한 후 시간이 한가해질 때 하겠다는 생각은 부질없는 희망일뿐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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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2018. 1. 5) 한겨레신문에 <2018년, 이 책 찜했어>라는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국내 40개 출판사별로 올 해 출간할 책 중 대표적인 책 한 권씩을 추천받아 소개하는 내용인데, 이른바 ‘적폐의 성역’ 한국교회의 문제를 파헤친 김진호 외 공저<권력과 교회>(창비)를 비롯 소설가 윤흥길의 대하장편 <문신>(문학동네), 이정우 <세계철학사 2권>(길) 등 몇 권의 책에 관심이 갔다. 특히 이정우의 <세계철학사>는 이미 1권을 읽은바 있어 ‘아시아세계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단 2권 출간 소식은 반가웠다.

나에게 철학자 이정우(경희 사이버대 교수)라는 이름은 이미 낯익다. 젊은 나이에 서강대 교수직을 사임한 그는 수유리에 ‘철학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 철학 사설교육을 시작했고, 이후 디지털 강좌 시스템으로 유명한 ‘아트 앤 스터디’에 이르기까지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다. 나는 초기 철학아카데미 때부터 그의 강좌를 여러 과목 청취한 경험이 있다.

그 시절, 지방에 거주하는 나는 현장 수강을 할 수 없어 부득이 카셋테이프를 이용해야했다. 하지만 워낙 명강의라 육성 청취만으로도 이해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물론 그의 저서도 여러 권 구입하고 읽기도 했다. 가령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낸 푸코 연구서 <담론의 공간>을 비롯, 철학개념어 사전인 <개념-뿌리>에 이르기까지 상당 수의 저서를 구입해서 읽었다.

'지중해세계의 철학세계철학사'라는 부제를 단 1권은 지난 2004년 출간되었는데, 서양의 고대에서 중세까지 다룬 고중세철학사에 해당하고, 올해 출간 예정인 2권은 아시아세계의 철학, 3권은 근현대 서양철학사다. 참고로 이정우의 <세계철학사> 시리즈는 그동안 이뤄졌던 강의록을 뼈대로 내용을 보완한 것으로 짐작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저술된 철학사들은 대개 세계철학사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적 테두리를 전제한 철학사들이었다. 철학사의 대부분이 ‘서양 철학사’이거나 ‘중국 철학사’, ‘한국 철학사’, ‘일본 철학사’, ‘인도 철학사’ 등이었던 것이다. 특정한 지역이나 언어권을 다룬 철학사가 대부분이며, 세계철학사는 드물었다.(…)‘세계철학사’라는 제목을 달고서 나온 저작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비서구 지역의 철학 전통을 서구 철학사의 한갓 전사 정도로 보았을 뿐이었다. 『세계철학사』 3부작은 다음과 같은 구도를 취하려고 한다. 우선 철학이라는 행위가 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진행되었고 근대 이전에는 동과 서의 철학 전통이 따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1권을 ‘지중해세계의 철학’에 그리고 2권을 ‘아시아세계의 철학’에 할애했다. 그 후 마지막 3권에서는 지리적 기준이 아니라 시대적 기준에 입각해‘근현대 세계의 철학’을 살펴보려 한다.” 라고 말하는데, 저자는 서구 편향적인 철학사를 지양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놓고서 보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철학사를 보려 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힌다.

내 경우 이정우의 철학사 강좌는 복잡한 서양철학을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일목요연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이 돋보였다. 또한 강의 시간내내 물흐르듯 막힘이 없이 강의가 이뤄졌고, 전혀 강의록을 보지 않은채 자유롭게 강의하는것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과거 버드란트 러셀을 필두로 렘브레히트, 슈퇴릭허, 유물론 관점으로 기술된 세계철학사 등 몇 종의 철학사를 접한바 있는데, 국내 학자가 쓴 철학사는 이번 이정우의 <세계철학사>가 유일하다. 그의 철학사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어떤지 몰라도 나와 같은 철학 딜레탕트에게는 최상의 길잡이다.

과거 수강 청취한 철학사 강의를 비롯 <세계철학사> 1권을 읽은 소감을 말한다면, 무엇보다 그의 강의는 흔히 말하는 명강의라는 점이다. 가령 아무리 복잡한 내용이라도 그는 쉽고 투명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나와 같은 철학 비전공자, 특히 일반 수강생들이 이해하는데 용이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우리의 주체적인 관점으로 강의를 하기 때문에 설사 유명한 철학자라하더라도 우리의 시각에서 과감하게 평가절하 했고, 또 어떤 경우는 한 철학자에게 과대하게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 주관적인 해석이 아닐까하는 의아심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이해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 그는 서양철학사 강의중에도 중국의 사상서들을 적재적소에 소개함으로써 수강생들이 비교철학적 관점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동양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피상적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강의를 듣는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과거 도올 김용옥이 동양철학자면서도 자유자재로 서양철학을 언급하며 강의를 펼친것도 같은 방식일 터인데, 그런점에서도 더욱 서양철학자로서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다룬 <세계철학사> 2권의 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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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전 어문각에서 출간한 제임스 조이스 전집 사진이다. 호화 양장본에 걸맞게 두 권짜리 전집 가격이 무려 130,000원. 하지만 책값이 워낙 비싸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엊그제 6월 16일은 불룸스데이. 세계문학사상 최대의 걸작이라 칭하는 <율리시스>의 주인공 블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벤트다.

호메르스의 <오딧세이아>는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두고 벌어진 트로이 전쟁을 그린 이야기다.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연합군의 장군 오딧세우스(라틴어 이름은 율리시스)는 10년간에 이르는 머나먼 귀향길에 오른반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현대의 영웅이자 오쟁이진 남자 '블룸'은 단 하룻동안의 귀향(귀가)길에 오른다. 우리시대의 영웅이자 소시민인 블룸의 이야기, 그리고 난해하기로 악명높은 <율리시스>. 내 평생 다섯 번 가까이 도전 했지만 결국 통독하지 못했다. 뭐 때가 되면 이해할 수 있겠지....

아마도 이게 병이지싶다. 시도때도없이 광고 사진이 아른거린다. 우선 전집만이라도 사둘까? 하지만 오래 전에 구입한 여섯 권짜리 '범우사판' 전집이 있다. 게다가 '생각의나무'에서 출간한 1,300쪽짜리 단권 <율리시스>도 있잖은가. 이거 괜한 허영이지? 전전긍긍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만만치않은 책값도 책값이려니와 주구장창 책 사들이느라 아내에게 카드를 압수당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대로 포기 할 수 없다. 다음은 오늘 아침 궁리한 책구입 시나리오.

일단 한길문고에 책 주문한다. 오케스트라 회식 핑계로 카드를 타낸다.(오케스트라 쪽은 대략 믿는 눈치다.) 그 다음 한길문고에 들러 카드를 긋는다. 결재일, 카드명세서는 어떻게 하냐고? 이미 엎지러진 물, 건 그때가서 해결하면 되니까, 어차피 나중 일은 나중 일이니까. 까짓 이런 일 내가 한 두 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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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독서보다 테레비 뉴스에 더 몰입했습니다. 저에게 책읽기는 삼시세끼나 다름없는 일상이지만 요즘 뉴스는 책 보다 훨 드릴넘치고 재미지다보니 어쩔 수 없군요. 아마 여러분도 그러지싶은데 요즘 우리사회는 영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자고나면 깜짝놀랄 기상천외한 사건으로 차고넘치니 이거 도저히 테레비를 안보고는 살수 없을지경이네요.   

 

대체 우리시대 정치, 사회 주변을 관통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이보다 더 흥미로울수 있을까요. 시쳇말로 머리좋고 많이 배우고, 또 일류 대학 출신이거나 권력깨나있다고 다 사람되는게 아니라는 평범한 진실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누가 기본마저 결여한 저질의 인간인지, 반면에 진정한 품격과 실력이 어떤것인지.....


세상 살면서 그 어떤것도 공짜로 얻을수 없듯, 아무리 열심히 따라하고 교과서를 착실히 배워도 민주주의는 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알겠습니다. 비록 더디지만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제도로 정착되어가는지도. 


글쎄 소시민의 심정이 이럴정도이니 이즈음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 권력자들의 주변에서 기생하는 무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은 필경 소설쓰는 분들에게 최상의 소설꺼리거나 공부가 되리라 짐작됩니다. 


어젯밤 트럼펫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길문고에 잠깐 들렀습니다. 근자 이런저런 일로 분주하다보니 서점 나들이도 쉽지가 않은 형편이네요. 

 

퇴직하면 꼭 읽어보려한 했던 책이 몇 권 있었습니다. 이른바 중국의 4대奇書니 6대奇書니 하는 책도 그중 하나인데, 우선 <삼국지연의><금병매><홍루몽>만큼은 꼭 읽어보려 했지만 그동안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금병매>는 몇 종의 기존 번역서가 있습니다만, 원전 번역이 아니어서 믿을만하지 못한 형편이지요. 그나마 원전을 완역한 강태권 교수의 솔출판사본이 낫다해서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절판 중이라 구할수 없다는군요. 어쩔수 없이 과거 60년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김동성 번역본을 찾아봐야겠는데 이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니 원~  


<삼국지연의>와 <홍루몽>은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편입니다. <삼국지연의>야 워낙 유명해서 이문열, 황석영 등 소설가들도 번역을 한터라 비교적 종수가 많은 편인데, 명번역은 재야학자인 김구용 선생의 솔출판사본을 최고로 치고 있군요. 문제는 분량이 워낙 많아 잠시 미루고 우선 호기심을 끄는 <홍루몽>쪽으루다가...

                      

 

              

 

 

 오랫동안 <홍루몽>을 연구했던 고려대 중문과의 최용출 교수의 번역서가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전 6권으로 구성된 <홍루몽> 중 우선 1, 2권과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칭해지는 구니기타 돗포의 단편집 <무사시노>을 사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한길문고를 나섰습니다. 뭐 그렇다고 당장 뉴스를 안볼수 없겠습니다만, 한동안 테레비 뉴스와 병행해서 <홍루몽>의 재미를 만끽해야겠군요.


"<홍루몽>은 중국어로 씌어진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작품"   - 클리프턴 패디먼, 존 메이저 공저 <평생의 독서계획>

 

"<홍루몽>은 18세기 중반에 나온 중국 최고의 명작소설 (...) 인간의 감성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낸 소설로서 인생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이 작품은 인간에게 사랑의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찬란한 봄날의 환희로부터 시작하여 활짝 피어난 모란꽃 같은 찬란한 여름이 지나고 낙엽지고 비 내리는 늦은 가을로 접어드는 삶의 행로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홍루몽>은 아마도 우리에게 영혼의 안식처를 마련해주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미로들을 따라가다보면 인생의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고 인간관계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될것이다."   - 나남판 최용철 역자 해제

 

* 우연히 파워블로거이자 서평가로 유명한 이현우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전의 마오쩌둥은 <홍루몽> 을 애독하고 높이 평가했다는데, 다음은 <마오의 독서생활>(꿍위즈 외 저, 글항아리)을 소개한 로쟈의 글 일부입니다.  


마오는 <홍루몽>을 ‘역사’로 읽었다. 봉건사회의 계급투쟁을 묘사한 소설로 간주하며 호평했다. 그는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이 살던 시대는 “소설 속 가보옥처럼 봉건제도에 불만을 가진 인물들의 시대”라며 <홍루몽>에서 묘사된 4대 가족의 쇠망을 통해 봉건통치계급의 쇠망을 이해하려 했다. 마오는 <금병매>도 높이 평가했지만 “다소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홍루몽>과는 달리 “주로 암흑을 폭로하기만 했”다고 비교한다. 그는 조카손녀에게 “네가 <홍루몽>을 읽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봉건사회를 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마오의 이론서나 역사서 탐독은 당연했겠지만 문학작품에까지 애착을 보인 건 왜일까. <홍루몽>처럼 봉건사회의 구체적 생활상을 묘사한 문학작품을 읽어야 봉건사회에 대해 세밀하고 생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이론서 같은 것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다고 <마오의 독서생활>의 저자는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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